수필

코빤을 살려준 의사의 말 한 마디 이

거북이3 2016. 12. 25. 22:12

  그동안 모 단체에서 출판을 하려고 하는 '위인 50인'이라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글의 첨삭, 교정을 하느라고 바빠서 블로그를 조금 방치하고 지냈습니다. 이제 그 작업이 끝났기에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써서 올릴 계획입니다. 제 블로그 "사람들"을 찾아주시는 여러 분들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 보다 성실하게 블로그를 운영해 나가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블로그 주인 거북이 올림.       


코빤을 살려준 의사의 말 한 마디.hwp



  코빤을 살려준 의사의 말 한 마디 

                                                                                                         이 웅 재

   고등학교 선생으로 지낼 때의 일이다. 고2 학생들을 인솔하여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수학여행은 학생에게만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교사들에게도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광을 대해 본다는 것은 기대해 볼 만한 일이었다. 해서 잔뜩 부푼 기대를 가지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학생들에게 일탈된 행동을 하지 말라는 주의를 하고, 학생들의 방을 둘러보고…, 이제는 괜찮겠다 싶어서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일까’ 생각하면서 복도로 나가 보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우리반 학생 하나가 나뒹굴고 있는 것이었다. 빙 둘러싸고 있는 학생들을 헤치고 그 학생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널브러진 학생을 붙잡고 물었다. 학생은 대답이 없었다. 대답만 없는 게 아니다. 아예 축 늘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지?”

   에워 싼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처음 쉽게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니까?”

   내가 조금 짜증스런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게요….”

   한 학생이 운을 뗀다. 그랬는데도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구?”

   내 목소리는 그 학생을 향해 윽박지르고 있었다.

   “예, 그게…, 그러니까, 코빤 선생님에게 K.O.된 거예요!”

   코빤은 ‘코끼리빤스’의 줄임말이다. 코빤은 학생들의 일탈을 통제하기 위해 동행하게 되었던 빤스 시리즈의 압권인 체육선생의 별명이었다. 빤스 시리즈는 모두 셋이었다. 올챙이빤스, 키는 작고 배가 유난히 똥똥했다. 한마디로 기형적 비만이었다. 또 하나는 하마빤스, 얼굴이 너브데데했고 흐물흐물한 느낌이 드는 분이었다. 코끼리빤스는 별명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 덩치가 무척 컸다. 그 선생님에게 얻어터졌다면 저처럼 뻗고도 남을 만했다.

   “뭐라구?”

   나는 뻗어있는 학생을 흔들어 보았다.

   “임마, 뭐하는 거야, 정신 차려!”

   그러나 학생은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코끼리빤스에게 K.O.되었다고 말하던 학생이 나섰다.

   “소용 없어요, 완전히 뻗었다구요.”

   순간, 덜컥 걱정이 되었다. 주위를 살폈다. 저쪽에서 우리 반 반장이 소식을 들었는지 에워싼 학생들을 비집고 다가오고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아까, 그 학생이 대답한다.

   “이 친구, 술이 너무 취해서 코빤이 화가 나서 한 대 쳤더니 저렇게 뻗어버린 거야!”

   난리 났다.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그랬다. 우선은 병원부터 가야 할 터였다. 빙 둘러싼 학생들 틈에 코빤이 보였다. 그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반장에게 말했다.

   “우선, 이놈을 둘쳐 업어!”

   그리고는 코빤에게 말했다.

   “걱정 말고 있으라구. 내가 병원엘 데려갈 테니까.”

   그러고는 택시를 잡아 속초 시내의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 이름은 지금 기억에 없다. 의사는 말했다.

   “강릉으로 가 보세요.”

   이 밤중에?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여기에서는 손을 쓸 수가 없다는 의미라는 점이었다. 큰 도시로 가 보라는 것은 그만큼 상태가 심각할 수도 있다는 말일 터였다. 다시 급히 택시를 불러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택시를 탈 수가 있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제발 별 문제가 없기를 바라면서…. 그때가 10시가 좀 지난 때가 아니었나 싶었다. 급히 강릉으로 갔다. 역시 병원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학생의 몸을 이리저리 확인해 보던 의사가 말했다.

   “왜 정신을 잃었지요?”

   내가 대답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고개를 갸우뚱 하던 의사가 다시 말했다.

   “원인을 정확히 모르면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난감했다. 코빤 얘기를 하자니 문제가 커질 수도 있는 데다가 이미 술을 많이 마셔서 그렇게 되었다는 대답을 해 버린 후가 아닌가?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빨리 치료를 해서 정신이 돌아오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해서 말했다.

   “그럼,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는 학생에게 물어 보시죠. 제가 학생을 보내겠습니다.”

   나는 입원실에서 나와 병원 바로 옆의 여관으로 가서, 반장에게 말했다. 곧 통금이어서 반장을 그곳에서 쉬도록 했던 것이었다.

   “나는 의사에게 술을 많이 마셔서 그렇게 됐다고 했는데, 네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솔직하게 대답해라.”

   그리고는 기다렸다. 시간이 왜 그렇게 흐르질 않는지…. 정신은 말똥말똥, 잠도 오질 않았다. 반장이 돌아왔다. 의사가 몇 가지 처치를 하더니 주사를 놓아주고는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둘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제발 빨리 정신이 돌아오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면서…. 통금 시간이 지나기가 무섭게 병원으로 갔다. 그때까지도 학생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의사는 크게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바작바작 간장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반장이 나지막이 외쳤다.

   “정신이 들었나 봐요!”

   학생이 눈을 떴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빨리 의사에게 알리라고 했다. 반장이 의사에게로 달려갔다. 잠시 후 반장과 함께 의사가 왔다. 학생은 아직도 제 정신이 들지는 않았는지 눈을 멀끔히 뜬 채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가 한 마디 했다.

   “학생,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 (6. 12. 25.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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