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5월 5일은 어버이날이었다

거북이3 2018. 5. 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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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5일은 어버이날이었다
                                                                                                                             이   웅   재

  5월 5일은 내게는 잊히지 않는 날이다. 1956년의 5월 5일 때문이다. 그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날엔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마음이 울적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디서였던가? 라디오 방송에서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이 갑자기 서거하셨다는 비통한 뉴스가 전해졌다. 그분은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군 출생이라서 나는 평소 그분을 특별히 존경하고 있던 터였다. 당시 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그분은 그와 같은 갑작스런 사망이 아니었더라면, 오랜 독재를 해온 이승만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내게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기 이전에 ‘비통한 날’로 각인되었었다.
 이제는 그러한 기억도 모두 가물가물해져 간다. 게다가 외손자 외손녀는 3년간 파견생활을 하고 있는 제 부모 따라서 필리핀에 가서 살고 있는 처지이다 보니 ‘어린이날’로서의 느낌은 전혀 나지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큰아들, 작은아들 내외가 점심을 사겠단다. 아마도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라서 미리 어버이날 행사(?)를 치르자는 생각인 듯했다. 해서 우리는 청계산 입구 대왕저수지 부근에 있는 ‘불이아(弗二我)’로 갔다. 그러니 금년의 ‘어린이날’은 생뚱맞게 ‘어버이날’이 되어버린 셈이다.
 ‘불이아’는 ‘둘도 없는 우리’라는 뜻이란다. 그럴 듯한 작명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자 중국어일 때에 한정된다고 하겠다. 그걸 우리 음으로 읽으면 ‘불이아’인데, 발음상 ‘ㅣ모음 순행동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니 실제 발음은 ‘불이야’가 되어 사람을 놀라게 해주는 말이라고 하겠다.
 그 집은 중국식 ‘훠궈’ 전문식당이었다. 일본식으로는 ‘샤브샤브(しやぶしやぶ)’ 집인데 ‘샤브샤브’란 ‘찰랑찰랑’, 또는 ‘살짜기’ 라는 의미의 의태어라고 한다. 육류가 부족하여 1800년대 메이지유신 때까지는 육식을 금지해 왔던 나라 일본은, 서양 문물이 개방되면서 작은 체구를 개선시키고자 육식을 권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소고기는 귀한 것이라서, 대신 돼지고기를 이용한 ‘돈가스’를 만들어 내더니, 이제는 소고기를 익혀 먹는 ‘샤브샤브’까지도 만들어냈다. 그걸 중국에서 배워가면서, ‘훠궈[火鍋: 간체로는 火锅]’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에서의 이름은 따로 없어서 조금은 씁쓸하다.
 식사 후 식당 앞쪽 정원에 나가서 마시는 커피 맛은 좋았다. ‘커피’ 자체의 맛보다도 ‘자연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껍질만 앙상하게 남은 것으로 보이는 향나무 고목에서부터 보호수로 지정되어도 손색이 없을 느티나무, 그 아래쪽에 피어 있는 튜립이나 매발톱꽃, 마가목이나 일본목련나무 등에다가 산 쪽으로 올라가는 곳에 만들어 놓은 휴게실 옆으로는 여기저기 불두화도 보였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의 시 ‘풀꽃’이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꽃나무는 자그마한데 손바닥보다도 더 커 보이는 처음 보는 흰색 꽃이 나를 ‘어린이’처럼 놀라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나중 “모야모”에 부탁해서 알아본 이름은 ‘큰꽃으아리[clematis]’였는데, 나는 그 친구 하나를 만난 것으로도 오늘 ‘어린이날’은 내게 또 하나의 잊히지 않는 날로 오래 기억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중, 누군가가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여, 서둘러 그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작은며느리가 가보자는 대로 행선지를 서울시청 별관(서소문 청사)의 ‘큰꽃으아리[clematis]’로 잡았다. 휴일이라 차가 막힐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 자가용은 놓아두고 광역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기로 했다.
 버스는 비교적 잘 달렸다. 그러다가 신호 대기로 차가 잠깐 멈춰섰을 때, 창 밖을 보니 앞쪽으로 자가용이 서 있었는데, “초보예요/ 말이나 탈껄”이라는 스티커가 보였다. 옆으로는 말 그림까지 그려져 있어서 괜찮은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컴퓨터 검색을 해 보니 그와 똑같은 스티커가 발견되었다. 재치 있는 말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두어 가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스티커를 보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고 거기에다가 시선을 자주 보내다 보면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그 하나요, 또 다른 하나는 ‘맞춤법이나 제대로 갖춰서 써 놓을 일이지…’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13층에 있는 ‘정동전망대’엘 가 창 쪽에 앉아서 냉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조감하는 덕수궁과 서울시청 신구청사, 그리고 시청 앞 광장의 한반도 지형 모습을 비롯한 주변 풍경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서 조금은 답답하던 심정을 커피 맛처럼 시원스럽게 툭 트이도록 해주었다.
 거기서 나온 후에는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서 ‘정동극장’, ‘이화박물관’ 등의 간판을 보면서 옛 추억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으며, 이후 신문로 길에서는 “경찰박물관”이 눈에 띄기에 들어가서 경찰과 관련된 많은 전시물을 보면서 경찰에 대한 안목을 넓히기도 하였는데, 가장 큰 수확은 내가 ‘경찰청장’이 되어본 일이었다. 경찰청장이 되는 일은 쉬웠다. 경찰 모자를 쓰고 ‘경찰청장’이란 팻말을 놓아 둔 책상에 앉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은 옛 ‘서울중고교 터’와 그 자리에 있었던 ‘경희궁’을 둘러보았다. 그곳에서는 화재진압용 물을 담아놓은 ‘드무’와 ‘부간주’를 함께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서울중고 터에서 역사박물관으로 가는 중간쯤 정체불명의 반 지하토굴로 된 건물도 보여서 궁금증을 일게 만들기도 했다. 역사박물관 앞쪽에는 옛 궁궐의 부분 명칭인 ‘여장(女墻)’ 등을 설명해주는 전시물들도 있었고, 차도(車道) 가까운 곳에는 ‘경희궁과 금천교’에 대한 설명문도 있었다. 금천교(禁川橋)가 있었다면 이곳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해서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하였다.
 오늘, 5월 5일은 이처럼 즐겁게 어버이날 나들이를 한 날이다.
           (18.5.7. 15매, 사진 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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