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기행

5. 백색으로 뒤덮인 환상적 설경에 취하여

거북이3 2019. 8. 14. 16:06


5. 백색으로 뒤덮인 환상적 설경에 취하여.hwp




     

          5. 백색으로 뒤덮인 환상적 설경에 취하여

                                                                                             이   웅   재 

  < 117, 월요일, >

  아침부터 눈발이 날린다. 금강호가 입항해서 그렇다기도 한다. 이상하게도 금강호가 입항하면 비나 눈이 내리든가 바람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소나무 가지가 산자락 아래쪽으로만 자라게끔 만드는 초속 80m의 바람도 그 이름이 금강냉이라던 말이 생각났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란다. 특별한 날? 구룡폭포를 관광하기로 된 날일 뿐인데. 알고 보니 가이드의 생일날이었다. 목에 걸려있는 관광안내원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온정각 휴게실 쪽으로 이동하는 버스의 좌측에 Oil Bank가 하나 있었다. 북한에 진출한 Oil Bank 1호점이란다. 그런데 도대체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개인 소유의 차들이 없는 곳이다 보니 작업차량 등이 대체로 정해진 시간에 와서 급유를 받으면 되므로, 소장 한 사람이 주유원 겸 배달도 하고, 청소원까지도 겸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보이는 좌측의 야산들은 약간 경사진 눈 덮인 밭들로 보였는데, 1920년대까지는 일제에 의한 스키장이 있던 곳이란다. 이처럼 풍광이 뛰어난 천하의 명산 금강산의 문턱에 스키장을 만들어 놓고 자기네끼리만 즐겼다니, 조국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북한 땅에 와서 새삼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를 맛본다.

 

  930분경 온정각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다.

  다른 때 같으면 짧을 때 10, 길어야 30분을 넘지 않는 휴식시간이 예상외로 길어졌다. 도대체 버스는 출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워낙 오랫동안 버스가 출발하지 않는 바람에, 사람들마다 이 매장, 저 매장 돌아다니면서, 저녁때 주어질 기념품이나 선물 구매시간에 사려고 했던 물품들을 미리 보아두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1인당 한도는 40$, 술은 1, 담배도 1보루에 한한다고 했다. 산삼 같은 건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하더라도 세관을 통과할 수가 없는 셈이다. 씹어 먹어 뱃속에 넣고 가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물론 배에서 사면 얼마든지 살 수 있으나, 이 곳 매점의 물건값도 엄청 비싼데, 세관을 통과한 풍악호 매점에서의 가격은 통관비마저 붙어버리니, 웬만한 물건들은 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값만 비싼 게 아니라 품목도 다양하지 못했다. 결국 선물 사는 것은 간단한 것 한두 가지 말고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 중에도 가이드가 괜찮다고 소개해준 경옥고나 안진고는 금방 동이 나 버렸다. 여기서는 물건이 품절되었을 경우, 그것이 언제 다시 채워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남한처럼 상점 주인이 필요한 대로 도매상에 가서 직접 떼어올 수가 없는 체제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점의 점원들은 대체로 처녀로 보이는 젊은 여인들이었는데, 아쉽게도 북한 주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연변이나 심양 등지에서 온 조선족이라는 것이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과 직접 면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북측의 의도 때문인 듯했다. 버스 운전기사들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북한 주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 한 마디라도 해 보겠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처사였다. 만날 수 있는 북한 주민은 남한의 국정원의 정보요원쯤이랄 수 있는 소위 관리원뿐이다.

  체제의 차이는 세관을 통과할 때에도 실감할 수 있는 일이다. 매일 배에서 내릴 때, 배로 돌아갈 때, 그렇게 2번씩 세관 통과를 해야만 하는 것이었으니. 그러니까 관광객들은 관광에 오를 때마다 남한에서 북한, 북한에서 남한을 계속 왔다갔다 해야 하는 것이다. 배가 정박해 있는 장전항이야 북쪽의 영해에 속하겠지만, 일단 배로 돌아오면 남한쪽 법률의 적용을 받는 것이다. 가지고 가면 안 된다고 미리 말을 해 주어도 무심결에 핸드폰을 휴대했다가 북한 세관원에게 압수, 폐기당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착잡한 심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세관을 거치지 않고 남북한을 왔다갔다 한 사람은 현대의 왕회장 한 사람뿐이었다던가? 가건물처럼 지어놓은 세관은, 1,000여명을 한 30분 정도면 충분히 통과 완료시킬 수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통과할 수 있는 세관이라고도 했다. 그럴 것이 모든 것은 미리 철저한 점검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통과이니만치 시간이 많이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기에 우리는 2$짜리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를 하나씩 사서 먹었고, 친구와 나는 북한의 레스토랑에 들러 술이나 한 잔씩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격표를 보니까 소주 한 잔에 2$~6$였다. 가장 싼 40도짜리의(북한 술은 대부분 도수가 높다) 삼지구엽초술을 시켰다. 환율이 1,144.17일 때였으니, 한 잔에 2,300원쯤 되는 소주였다. 그것도 딱 한 잔씩만 주문했다. 접장들이 비싼 술을 여러 잔 마실 수는 없기 때문이다. 16$ 이상 몇십 $씩 하는 병술이야 더더구나 언감생심, 째째하긴 했지만, 북한 땅을 밟아보면서 술 한 잔도 안 해볼 수 없어 딱 한 잔씩만을 주문한 것이다. 안주는 물론 공짜 팝콘을 부탁했다. 사실 따진다면 소주 한 잔도 제대로 못 마신 셈이다. 조그마한 양주잔에다가 반 이상을 얼음으로 채운 것이었으니, 술 자체는 반 잔이나 되었을까? 그것도 아주 아까워 아까워서 얼음이 녹길 기다려 조금이라도 더 마시느라고 고심했고, 나중엔 몇 조각의 얼음 덩어리까지를 씹어 먹으면서, 우리는 그래도 호사했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눈이 많이 와서 비번 가이드와 산악구조대원들이 어느 정도 제설작업을 한 후에 떠나야 된다고 해서 좀더 기다렸다. 어제는 우리가 맨 후미에서 따라갔기에 오늘은 선발대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누군가가 투덜댔다.

  “그럼 오늘은 우리가 길을 내면서 가야겠네.”

  그러나 목소리는 오히려 눈 덮인 길을 개척하며 걷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되었다는 투였다.

  11시경이 되어서야 버스는 출발했다. 차창 왼쪽으로는 가는 길 함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붉은 글씨가 건물 벽에 쓰여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 우리의 등반을 미리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가노라니, 왼쪽으로 닭알바위’(이곳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 그대로임)가 보였다.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그 상태나 용도가 거의 비슷한 바위라고 했다.

  길 초입에서는 어제보다 소나무가 적었다. 625 때의 격전지라서 그렇단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곳 소나무는 대부분 625 이후에 심은 것이라는 말이다. 차츰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소나무숲은 점점 빽빽해졌다. 예전에는 지금보다도 더해,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아서 왜적과 싸우기 위한 군수물자를 저장하던 곳이란다.

  다시 왼쪽으로는 신계(新溪)의 계곡이 보였다. 신계는 신계(神溪)라고 쓰기도 한단다. 연어가 산란기가 되어 올라올 때면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잡기 위해 몰려들어, 신계사의 주지가 용왕에게 부탁하여 연어가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해서 귀신 신()’자를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때로는 신계(神鷄)라고도 한단다. 신계사의 한 중이 새벽마다 목욕을 하고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이 너무나 정성스러워, 부처님께서 새벽이면 닭의 울음소리를 내어 깨워주었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라는 것이다.

  신계의 물은 맑았다. 금강의 신령스러운 봉우리들이 내려다보이는 계곡, 소나무를 비롯해서 온갖 나무와 풀들이 양쪽으로 비켜서 있는 골짜기, 물에 쓸리고 쓸려서 곡선미를 내보이며 계곡의 여기저기에 머물면서 물장난을 치고 있는 돌과 바위들, 그곳을 말없이 흐르는 계곡물은 맑디맑아 차라리 없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너무 맑아 고기마저 살지 못한다는 그 물은 연어가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는 전설을 믿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곳의 나무들은 관상용으로만 이용한단다. 관광의 자원으로서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625때 총알 따위가 박혀 목재용으로는 쓰려고 해야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개운치 못한 맛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금강산 10대미 중의 수림미(樹林美)라고나 할까?

 

  버스를 주차할 수 있는 마지막 휴계소에서 용변을 보고, 아이젠을 장착하고, 담배 한 대를 피우다 보니, 선두조인 우리 7조는 벌써 저만치 출발하고 있었다. 헐레벌떡 쫓아가서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발을 맞으며 걷는 등산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더구나 어제보다는 길도 비교적 평탄하였다. 외금강쪽은 남성미가 강하고 내금강쪽은 여성미가 강하다고들 하지만, 이쪽 신계를 끼고 오르는 길도 상당히 여성미쪽이 부각되는 듯했다. 천선대보다는 비로봉이 가까운 서쪽이라서, 내금강이 가까운 쪽이라서 그럴까? 아무래도 이쪽은 계곡미가 승했다. 계곡의 커다란 바위 옆 소나무에는 눈꽃이 화알짝 피어 있었는데, 대관령 못 미쳐 보았던 눈꽃과는 또한 격이 달랐다.

  소나무보다도 단풍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선 등산길에서는 하늘이 바라다보이지 않는다.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 마당도 세 평이라는 환상선 눈꽃 순환열차의 종착역인 승부역보다도 하늘이 올려다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무 사이사이를 비집고 내리는 눈발은 어느덧 모든 사람들의 옷을 후줄근히 적시고 있었다. 우리는 배낭을 뒤져 풍악호에서 지급해준 비닐 우의를 꺼내 입고, 눈꽃 속에서, 온통 백색으로 뒤덮인 설경 속에서, 무아지경이 되어 걷고 있었다.

  앙지대(仰止臺)라는 표석이 나왔다. 그렇다.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는 곳이니, 지명치고는 제격이라 하겠다. 겨울의 금강산을 개골산(皆骨山) 말고도 설봉산(雪峰山)이라 한다는 것은 이처럼 눈이 내리는 경우에는 정말로 적확(的確)한 말이다.

  일만 경치가 다 보인다는 만경다리에서의 사방을 둘러보는 맛도 잊을 수가 없다.(25)



5. 백색으로 뒤덮인 환상적 설경에 취하여.hwp
0.02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