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지…
이 웅 재
도저히 잊히지 않을 것만 같은 슬픔도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무뎌진다고 한다. 정말로 잊을 수 없을 듯하던 그리움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서서히 사그라진다고 한다. 철천지원수로 치부되던 마음도 연광(年光)이 바뀌면 점차 약화되어 간다고 한다. 마음이란 묶어둘 수 없는 것, 바람처럼 잡아둘 수 없고, 액체와 같이 담기는 그릇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원히 충성을 맹세했던 군신 간에도 배신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며, 도저히 변하지 않을 듯싶던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도 깊은 골이 생길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세월이 지나면 진실도 달라지는 것인가?
우리가 흔히 농담 삼아 하는 말 중에 ‘3대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늙은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죽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 ‘죽어야지, 죽어야지…’가 얼마나 입에 바른 소리인지는 염상섭의 ‘임종’이란 작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점은 우리들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배고파 죽겠다’, ‘미워 죽겠다’와 같은 말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쉽게 인정할 수 있는 말이지만, ‘배불러 죽겠다’, ‘예뻐 죽겠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배고픈 것에도 배부른 것에도, 미운 것에도 예쁜 것에도 다 다가가기 싫은 마음 때문일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민족은 늘 가난하게 살아왔기에 배부르고 등 따신 것 하나만은 무엇보다도 소망하던 것인데, 어째서 ‘배불러서 죽겠다’는 말을 하는가?
실제로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러 호흡마저 곤란한 상태가 되었다 하더라도 ‘배불러 죽겠다’는 말은 사위스러워서 어찌 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배불러 죽겠다’는 말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 아닌 것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도 죽지 않는 것만 보아도, 그 ‘죽겠다’는 말은 실제로 ‘죽겠다’는 뜻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것은 오히려 ‘살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반어적 어법이라고 보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늙은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말은 ‘좀 더 살고 싶다, 아직은 좀 더 살고 싶다’라는 말이렷다? 그래서 3대 거짓말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세월이 변했다. 60갑자를 한 바퀴 빙 돌아서 다시 제가 태어난 간지(干支)로 되돌아오는 환갑이 축하할 일이 못 된 지 오래다. 예전처럼 환갑잔치를 차려 먹다가는 욕을 먹기 일쑤가 되어 버렸다. 환갑까지 살기가 힘들던 시대에는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반어법이 유효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평균 수명이 77.5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말이라고 치부하자. 통계상으로 보아서는 55세가 평균 퇴직 연령이라고 한다. 퇴직, 그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생활의 종착점이다. 사회가 그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부여의 일대사건이 바로 퇴직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퇴직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자립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한다. 그것을 수치로 나타낸 것을 자립지수라고 한단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아직 조사된 바가 없지만, 최근에 발표된 조선일보와 행복가정재단의 공동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의 자립지수는 평균 57.9점으로 낙제점에 해당한다고 한다.
밥 먹고 옷 차려 입는 기본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탁기 사용법을 알고 옷감별로 구분해 세탁할 수 있다’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 중 40%에 불과했고, ‘세 가지 이상의 음식(라면 제외)을 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은 42.5%에 그쳤는데, 그 중에서도 60대의 경우에는 29.6%에 불과했단다. 총각 땐 엄마가, 결혼해선 아내가 다 해주었던 일이라 서툴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집안에서 왕따가 되는 일은 당연지사다. 그러다 보니 심리 저변에는 ‘아내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 일이리라. 술에 빠지거나 칩거해서 밖에 나오지 않는 경향을 띠는 것도 남성들의 속성이라고 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족 간 의사소통 정도를 나타내는 관계지수는 53.1점밖에 안 된다고 한다. 자립지수보다도 더욱 낮은 것이다. 특히 평균 퇴직 연령에 해당하는 50대에는 50.8%, 환갑을 지나는 60대에는 48.2%라는 것이니, 혼자서는 살고 싶은 마음마저 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늙은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말이 이제는 거짓말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통계의 평균치만 따져 보더라고 55세에 퇴직해서 77.5세까지 살려면 22.5년 동안을 백수로 지내야 하는데, 그 긴긴 세월을 어떻게 보낼 수가 있을 것인지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가 없다.
학창시절의 왕따란, 전 학년에서 똑같이 당한다 하더라도 초등학교의 경우엔 6년, 중․고등학교는 각각 3년, 대학에서는 2~4년에 불과한데, 그 기간 중에도 왕따를 참지 못해 학교를 그만둔다든가 이사를 간다든가 심지어는 자살을 한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키는데, 22.5년을 왕따로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
그에게서는 아직도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말이 거짓말일 수가 있는 것이니, 그런 거짓말쟁이는 자립지수 낙제점인 우리 진실한 남성들이 합심하여 강제로 이 세상에서 퇴출시켜야만 할 것이다. 이제는 노인들의 ‘죽어야지, 죽어야지’가 결코 거짓말이 될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죽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세월이 지나면 진실도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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