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정기 13) 눈[雪] 덮인 백두산 오르는 길에 눈[眼]길을 주며
(백두산 등정기 13)
눈[雪] 덮인 백두산 오르는 길에 눈[眼]길을 주며
이 웅 재
장백산(長白山)이라 편액(扁額)을 한 서파(西坡) 산문을 지나서 우리는 백두산 쪽에서 관리하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셔틀버스를 안개객차(安凯客車)라 하였다. ‘凯’ 자는 ‘즐길 개(凱)’자의 간체자(簡體字)였다. 그러니까 ‘편안하고 즐거운 여객열차’라는 뜻이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객차’라고 하면 ‘여객열차’가 되어 ‘기차(汽車)’를 의미하지만, 중국에서는 ‘기차(汽車)’는 자동차, 우리의 기차는 ‘화차(火車)’라고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 흔하게 ‘기차(汽車)’를 수리한다는 간판을 볼 수가 있는데, 그건 우리나라 60년대의 ‘자동차 빵꾸’를 때워주는 집쯤으로 치부하면 될 터였다.
백두산을 이 서파로 오르는 코스는 셔틀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최근에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북파까지 종주하는 코스의 기점(起點)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안개객차(安凯客車)는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해발 1,000m 이하 지점에는 활엽수와 침엽수가 공존하고 있다가 1,000m에서 1,200m 지점에 이르면 거의 전부 침엽수로만 바뀌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곳에서는 길에서 한 50m 이상만 들어가면 찾아 나오기가 힘들단다. 하늘마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런 속엘 한 번 들어가서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느껴보면 어떨까 하는 치기(稚氣)가 발동한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두 번쯤은 그런 생각들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하는 호기심 말이다. 아니, 그건 호기심이 아니라 내 존재를, 나에게 야단치시는 엄마 아빠에게, 내 존재를 무시하는 내 형제들에게, 그리고 나를 왕따시키려는 내 동무들에게, 내 존재를 각인시켜주기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우리의 ‘안개객차’는 계속 달리고 있다. 그렇다. 그제나 지금이나 내 생각 따위는 중요할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어제와 별 차이 없이 굴러갈 것이요, 내가 없어도 천지가 갑자기 개벽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 앞에서 나는, 아니 내 존재는 별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점을 아주 확연히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는 점점 자작나무가 많아진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산길마다 마중이라도 나와 선 듯하던 키 큰 자작나무가 어느 순간에 작아지고 있었다. 키만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쭉쭉 뻗어 올라가는 자작나무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옆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머리가 허연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다. 산등성이를 휘몰아치는 매서운 칼바람에 옴짝달싹 못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더니 아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1,800m 지점이 되었단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고산초원지대. 온통 푸른 풀밭이었다. 지리산의 노고단이나 덕유산의 아고산지대를 생각하면 그 비슷한 모습을 연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는 아고산을 넘어 고산지대의 지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말하자면 야생화 군락지역이겠는데, 여기저기 피어나는 흰 야생화들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야생화의 천지까지는 되지 못하였다.
현지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나중에 저런 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다고 산책로를 벗어나, 특히 벼랑 근처 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했다. 이곳의 흙은 사실 화산재라서 풀 따위의 뿌리도 옆으로만 자라기 때문에 그 아래쪽으로는 허방이라는 것이다.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하나둘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모두들 서둘러 긴 팔 옷에다가 우비까지도 꺼내 입느라 부산했다. 세찬 바람 때문에 우산은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나무 하나 없는 고산지대라서 벼락을 맞을 염려가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아까 안개객차를 타는 지점에서 파는 비닐 우의들을 거금 3,000원씩 주고 사 가지고 왔던 것이다. 죽더라도 벼락을 맞아 죽으면 안 되지 않는가? 문상차 온 사람이 묻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설마 ‘벼락 맞아 죽었어요.’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었다.
천지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모두가 필수 코스로 화장실엘 들렀다. 이삼 일 동안에 우리는 어딜 가나 제일 먼저 찾는 곳이 화장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경험의 중요성을 십분 자각했다고나 할까?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천지 가는 길은 까마득한 돌계단이었다. 모두 1,300개란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한 3~40분 정도면 답파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특별히 관절염 환자라든가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환자 같은 분들이면 왕복 6만 원(한화) 정도 주고 가마를 타라고 했다. 관절염과 고혈압, 내게도 해당하는 증세였지만, 예까지 와서 내 발로 걸어 올라가지 못하고 남이 실어다 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직접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처음에는 대수랴 싶었던 돌계단은 올라갈수록 더욱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사실은 올라갈수록 힘에 부치다 보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 그렇지. 그래도 명색이 민족의 성산, 그 천지(天池)인데 그렇게 쉽게 자신의 나신(裸身)을 보여주기야 할려구…. 가끔은 멈춰 서서 호흡을 고루면서 백두산의 그 성스런 음부를 상상해 보았다.
백두산엔 엊그제 눈이 내렸단다. 그래서 이쪽저쪽 골짜기마다 아직도 녹지 않고 쌓여 있는 눈이 보이기도 했다. 가이드는 말했다. 눈이 쌓인 백두산 등정은 정말로 하기 힘든 것인데, 여러분들은 운이 좋은 것이라고. 정말 그랬다. 1,300 계단의 중간에도 눈이 녹지 않은 그늘진 곳이 있어서 우리는 미끄러질세라 그 눈을 직접 밟으면서 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백두산 등정의 1,300 계단 중 유일한 정체구간이었다. 발밑의 수북이 쌓인 눈[雪]과 그 좌측 눈[眼] 높이의 언덕에 피어 있는 야생초를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는 오직 한 군데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