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거리며 올라간 넓은 공터 아래쪽으로 백두산이 누워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관음증을 노출시키듯 천지(天池)를 훔쳐보았다. 짙푸른 빛깔, 사람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힘을 지닌 색감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겠다는 듯, 휘리릭휘리릭 짙은 안개구름을 뿌려대고 있었다. 구름이 걷히면 나타났다가 다시 구름이 덮이면 모습을 감추는 천지의 모습에 나는 넋을 잃었다. 천지로 내려가는 분화구의 외음부에는 천지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천막들이 쳐져 있었다. 아, 그 천막들이 쳐져 있는 곳에는 새하얀 피부가 눈[眼]에 시렸다. 녹지 않은 눈[雪]이 쌓여 있는 것이었다. 바람이 사납게 불어대면서 눈가루를 날린다. 왼쪽으로는 2,664m의 옥주봉(玉柱峰)이 역시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 하면서 수줍은 새악시마냥 숨바꼭질을 한다. 산봉(山峰)이 마치 하늘을 찌르는 기둥과 같아 옥주봉이라 하지만, 우뚝 솟아 있는 푸른 바위라 해서 청석봉(靑石峰)으로도 불린단다. 천지의 건너 쪽에는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섰다. 얼마 전까지는 그 장군봉의 높이를 2,744m라 해 왔었는데, 실측 결과 2,749m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 내가 백두산을 찾지 못하고 있는 동안, 아마 어디쯤 오나 발돋움하고 기다리느라고 한 5m 정도 키가 커진 모양이다. 백두산 천지, 99명의 선녀가 천상백옥경(天上白玉京)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곳이다. 이와 같은 설화 따위를 들을 때, 나는 늘 의아스러움을 느낀다. 왜 하필이면 99명인가? 100이란 숫자는 꽉 찬 숫자라서 더하고 빼고 할 변수가 없으니 재미가 없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신선들이 살고 있는 백옥경에는 목욕탕도 없나? 그 당시에 찜질방으로 리모델링하느라고 휴탕(休湯)이라도 했던 것일까? 뿐만 아니라 그 착하디착한 ‘나무꾼’들은 다 어디 가고 99명이나 되는 선녀들의 천의(天衣) 하나 숨기질 못했단 말인가? 아쉬움에 입술마저 바작바작 타오르는 듯하다. 호수는 수온이 낮아 어류가 서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가끔 천지 속에는 괴물이 산다고 호들갑들인데, 그것은 아마도 천지의 신비성 때문에 저절로 생겨나는 상상적 허구가 아닐까 싶다. 한편, 중국 측에서 천지에 세워 놓은 안내판에는, ‘어떤 조직과 개인은 국경지역에서 제사, 례배, 앉아버티기를 금지해야 한다.’라는 문법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 경고판이 하나 있었다. 제사나 예배를 금지하니까 ‘앉아버티기’까지 했던 사람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또한 이곳에는 조중국경표지석(朝中國境標識石)인 5호비가 있었다. 조중 간의 국경협정이 체결된 1962년에 처음 비석이 세워지고 1990년에 현재의 화강암으로 교체된 것이라서 1990년이라고 새겨져 있는 비석이다. 양쪽 면에 각각 ‘中國’과 ‘朝鮮’이라고 씌어져 있는 이 비석은, 동북쪽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6호비와 함께 국경표지석 21개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비석이다. 바로 이 5호비와 6호비를 잇는 직선이 천지를 분할하는 국경선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비석을 배경으로 해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의 습성을 모르는가? 그곳에는 천지를 관리하는 중국 측 관리원들만이 있었고, 그들은 사진사와 결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백두산 장뢰삼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우리는 북한 쪽 땅에 들어가서 1매 5,000원(한화)짜리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디카로 북한 쪽 천지를 향해 잽싸게 셔터를 눌렀다. 관리원이 안 된다고 손짓 발짓 아우성이다. 그럴 땐 얼른 그 지시에 따라주는 척해야 한다. 우리는 즉시 북한 땅에서 나와 몇 명이 모여 정상주(頂上酒)를 마셨다. 백두산 정상에 올라 한 잔 술이 없어서야 어찌 대한민국의 술꾼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천지를 바라보며 마시는 소주 맛은 그 어느 때의 맛보다도 좋았다. 가슴 속으로 싸르르 훑어내려가는 그 맛이라니…. 근처를 배회하던 바람도 그 냄새에 취했는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멋대로 불어댄다. 어디 그뿐인가? 천지의 수면 위를 어슬렁거리던 안개와 구름들도 슬금슬금 우리의 정상주 마시는 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중국 국경 관리원이 다가온다. 그의 손에는 장뇌삼이 들려 있다. “만 원에 세 개다 해.” 장뇌삼을 안주로 하라는 것이다. 백두산으로 오는 길 양 옆에는 인삼밭들이 많이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것들이 지금 이렇게 장뇌삼으로 둔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분 상으로는 가짜든 뭐든 정상주의 안주를 장뇌삼으로 하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얄미웠다. 5,000원을 내고 찍는 사진은 저희들이 찍으니까 괜찮고, 우리가 찍는 사진은 안 된다니, 너무 속 보이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도 그를 약을 좀 올려줬다. 살 듯 말 듯, 힐끔힐끔 장뇌삼에 눈길을 주었던 것이다. “이거, 술안주 좋다 해.” 나는 이때다 싶어 5호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슬쩍 물었다. “사진 찍어도 돼 해?” “빨리 찍어 해.” 그래서 5호비를 놓고 중국 쪽에서도 한 장 찍고, 북한 쪽에서도 한 장 찍었다. 그리고는 아까 찍었던 5,000원짜리 사진을 얼른 찾았다. “안뇽! 빠이빠이!” 우리는 손을 흔들며 유유하게 백두산 천지와 이별을 했다.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정상주도 한 잔씩 걸쳤겠다, 우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1,300계단을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백두산 만세, 천지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