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지엔느

(분당문학 제3호) 권두 칼럼. 분당 문화의 자생을 위하여

거북이3 2007. 9. 3. 19:35
 

(분당문학 제3호) 권두 칼럼

        분당 문화의 자생을 위하여

                                                                                분당문학회장   이   웅   재

                                                 

나는 매일같이 탄천을 걷는다. 십리 정도를 한 시간에 걸쳐서 걷는다. 건강도 다지고 생각도 정리하기 위해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늘 걷는다.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내리는 날이나 가리지 않고 탄천을 걷는다. 삼천갑자 동방삭이 숯을 씻고 있었다는 ‘숯내’-이 숯내는 용인에서 발원하여 성남을 거쳐 한강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탄천은 분당을 동서로 갈라주고 있는 분당의 젖줄이다. 아니, 탄천은 분당을 활력 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분당의 동맥, 분당의 뇌혈관이다.

탄천은 마르는 법이 없다. 탄천에는 언제나 물이 흐른다. 그렇게 물이 마르지 않게 흐르도록 만들어주고 있는 행정 담당자에게 나는 늘 고마움을 느낀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게 마련이다. 흐르는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정화시켜 준다. 그 마르지 않는 물을 닮아 분당지엔들 역시 언제나 쉬지 않고 움직인다. 분당지엔들은 전국의 어느 지방 사람들보다도 가장 창의적인 사고에 젖어 있다.

처음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분당 사람들도 변두리 의식, 소외의식을 가졌었다. 왜, 그런 우스개들이 있지 않았던가? 분당 사람들은 어디 지방에 갔을 때, 누가 ‘어디서 오셨나요?’ 하고 물으면, ‘서울이오.’라고 대답했고, 서울시장을 자기들이 뽑는 줄 알았고, 세금도 서울시에다가 내는 줄 알았다고.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제는 경기도 사람, 성남 사람, 아니, 분당지엔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누가 ‘어디서 오셨나요?’ 하고 물으면, 당당하게 ‘분당이오.’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분당은 이제는 ‘나’ 혼자만을 주장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까지도 포용하는 자세를 가지기 시작했다. 부근에 생겨나는 도시들, 수지나 죽전은 물론, 용인, 광주, 오산, 동백까지도 모두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새로 각광을 받고 있는 판교 역시, 분당은 밀어내 버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처럼 화합을 내세우는 도시도 예전에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이제는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징조일까? 그렇다. 분당은 이제 성숙해졌다. 탄천을 걷다 보면 둔치 양쪽의 나무들도 이젠 철이 들만큼 들어버린 듯싶다. 그만큼 꿋꿋한 모습, 의연한 자세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바람직하게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때, 그때가 중요한 것이다. 자만하면 안 된다. 분당이 분당다워지려면 무엇보다도 분당만의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분당만의 특색, 분당만의 문화가 자생해야 한다. 탄천종합운동장이 생기고, 율동공원의 번지점프대나 테마파크, 도심 중앙의 휴식처 중앙공원, 영장산의 등산 코스, 아, 최근에 문을 연 성남아트센터 등등, 다 좋다. 그러나 그것을 밑받침할 수 있는 저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각이나 청각에 의존하는 문화 예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면모를 갖추었다고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든 문화의 기본이랄 수 있는, 언어 예술, 말하자면 문학에 대한 투자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음악회도 오페라도, 뮤지컬도 마당극도, 연극이나 영화도 문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분당에서는 문학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이것이 분당다움을 만들어가는 데에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분당문학 제3호 권두칼럼) 분당 문화의 자생을 위하여.hwp
0.01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