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국내)

미카3-244 (도라산 기행 2)

거북이3 2008. 5. 28. 00:09

   미카3-244 (도라산 기행 2) 

                                                             이 웅 재


 드디어 임진각에 오르다. 바로 앞쪽에는 1000만 실향민들이 고향에 계신 조상들을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장소인 망배단(望拜壇)이 보인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잃어버린 고향에 가까운 곳에 가서 조상을 대하려는 그 애끓는 마음들이 망배단 주변에 맴돌고 있는 듯싶다. 45도쯤 오른쪽으로는 평화의 종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자유의 다리가 무언으로 역사를 증명한다.

 1953년 전쟁포로 교환을 위해서 가설되었던 다리이다. 저 다리를 건너온 12,773명의 사람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55년 전 20대 초반이었을 터이니 지금은 75세 이상의 나이, 더러는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리를 따라 걷노라니 끝부분은 차단이 되어있고 그 차단된 부분 근처에는 온통 철조망으로 덮여 있었다. 언제쯤이나 저 철조망이 걷힐까? 다리 아래로는 한반도 모양의 연못이 내려다보인다. 통일연못이라고 했다. 막혀있는 자유의 다리 앞쪽으로 열차가 지나간다. 임진강철교를 지나 도라산역으로 가는 기차였다.

 도라산역은 경의선의 철도역으로 남한에서는 최북단에 위치한 역이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방문 전에 임진강역에서 수속을 거쳐야 한다. 서울까지 56㎞, 평양까지는 205㎞의 거리에 있는 역이다. 2002년 2월 12일, 철도운행이 중단된 지 52년 만에 처음으로 임진강을 건너가는 특별 망배열차가 도라산역까지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임진각 옆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후, 매표소로 가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DMZ 안보관광 A코스의 표를 끊었다. 14:00 출발,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단다. 버스는 오른쪽으로 버마 아웅산 순국외교사절 위령탑을 끼고 달려 통일대교를 건너기 위해 통일의 관문에서 군인들의 검문을 받느라고 한 동안 지체하였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니 갓돌[緣石]은 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서 더러는 깨어지기도 하였는데, 연석(緣石)이 돌이 아닌 재질로 된 것은 여기서 처음 보았다.

 우리가 달리는 길은 1번 국도라고 했다. 개성까지는 18km, 20분 정도의 거리란다. 조금 더 가니 개성으로 가기 위한 출입국사무소가 보였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U턴을 해서 제3땅굴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카시아 향기가 향긋하게 코를 찌른다.

 땅굴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가는 곳에는 둥근 공이 갈라진 것 같은 조각품이 보인다. 그 갈라진 안쪽에는 각각 남북한의 지도가 조각되어 있었고, 사방에서 그 갈라진 원형의 부조물을 합치게 하느라고 밀고 있는 사람들의 조각된 모습이 비원(悲願)의 애처로움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땅굴은 깊이 73m, 총길이는 1,635m이며, 남방 한계선까지의 거리는 435m로 북한의 완전 무장한 병력 3만 명이 1시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규모로,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란다.

 1974년 9월 5일 북한이 땅굴을 파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땅굴 예상지역 부근에 107개의 시추공을 묻고 물을 채워 탐지하던 중 1978년 6월 10일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압력으로 물이 솟구쳐 올라오는 바람에 발견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지점까지의 역(逆) 굴착(掘鑿) 구간을 셔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북한이 파 놓은 땅굴 구간은 도보로 움직여야 하는 안보관광이었다. 땅굴은 음침하고 습기가 차서 축축했으며 천장에서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다. 들어가고 나오고, 2사람이 교차할 수 있을 정도의 그 굴은 군데군데 철주로 받쳤고, 바닥엔 타이어를 잘라 만든 고무를 깔아놓았다. 가끔은 머리가 천장에 긁히기도 하여 반드시 안전모를 써야만 하였다. 그곳에는 Spring Water라고 불리는 DMZ 샘물이 있어서 한 쪽박 떠서 마셔보면서 연전에 베트남 문화탐방을 하면서 들어가 보았던 땅굴을 떠올려 보았다.

 베트남의 땅굴은 도피용이라 덩치가 큰 미군들이 추적해 들어올 수 없도록 좁고 낮아서 지나다니기가 매우 힘들었었는데, 이곳의 땅굴을 침략용인 때문에 넓이, 높이가 각각 2m 정도가 되어서 상당히 넓은 셈이었다.

 땅굴에서 나와, 도라산 전망대로 가는 길 양쪽으로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전쟁 때에는 저 꽃들도 모두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을 것이다. 전망대에서 거금 500원을 넣고서 망원경으로 북쪽 지형지물을 살펴본 후, 우리는 도라산역으로 이동했다. 좌측으로는 터널 2개가 보이는데,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해 뚫은 터널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야생동물들은 10에 2,3은 다리가 잘린 불구란다. 지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전쟁은 무고한 동물들에게 지금까지도 고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코스인 통일촌을 지나 다시 임진각으로 와서 철도중단점을 물어물어 찾아보았더니, 바로 ‘경기평화센터’ 근처에 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디젤기관차 미카3-244호의 뒷부분은 원두커피전문점이 들어서 있었다. 새로 차량 몇 칸을 가져다가 이어놓고 영업을 한다는 것인데, 글쎄, 그 어떤 '비장감'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희화화된 것 같아 씁쓸했다. 그러나 또 어찌 생각하면 평양, 아니, 신의주까지에도 커피를 팔고 싶다는 또 다른 비장감을 드러내준 현상은 아닐까도 생각하면서 오늘의 나들이를 마감하였다.   (08.5.27. 원고지 16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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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역 철도중단점에 있는 디젤기관차 미카3-244.(출처; 카페 인천♡경기♡방 )

 

미카3-244.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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