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미립

☆999명을 죽인 앙굴리말라(손가락 목걸이)

거북이3 2008. 5. 29. 10:20

 

☆999명을 죽인 앙굴리말라(손가락 목걸이)

멈추는 게 두려운가요 낙오·실패할까 두렵지만 멈추는 순간 지혜 샘솟아

[중앙일보]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37> 


#풍경 : 석가모니 당시에 살인마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앙굴리말라’. 그는 무려 999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의 엄지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었죠. ‘앙굴리말라’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앙굴리’는 손가락, ‘말라’는 목걸이란 뜻이거든요.


그런데 정작 그의 본명은 ‘아힘사’였습니다. ‘해치지 않는 자(不害)’라는 뜻이죠. 착하고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의 부인이 그를 유혹했죠. 거절하자 부인은 “나를 겁탈하려 했다”며 오히려 그를 모함했습니다. 화가 난 스승은 그에게 엉뚱한 가르침을 내렸죠. “1000명의 사람을 죽여 목걸이를 만들면 해탈을 이룬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고 ‘아힘사’는 ‘앙굴리말라’가 되고 말았죠.


앙굴리말라는 마지막 희생자를 찾고 있었죠. 한 사람만 채우면 1000명이 되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그는 부처님을 제물로 삼았습니다. 석가모니는 길을 가고 있었죠. 뒤에서 칼을 든 앙굴리말라가 외쳤습니다. “멈추어라!” 그러자 석가모니가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멈춘 지 오래됐다. 멈추지 않고 있는 이는 바로 너다.” 그 말을 듣고 앙굴리말라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석가모니의 제자가 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석가모니는 왜 ‘멈춤’을 말했을까요. 또 앙굴리말라는 왜 ‘충격’을 받았을까요. 사람들은 ‘멈춤’을 두려워합니다.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멈추는 순간, 뒤처지고, 낙오하고, 실패할 거라 여깁니다. 더욱 본질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껏 단 한 순간도 온전히 멈추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멈춤’은 늘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죠.


그런데 석가모니는 “멈추라”고 했습니다. 뭘 멈추라는 걸까요. 바로 ‘에고의 멈춤’이죠. 사람들은 따지겠죠. “거 봐, 맞잖아. 무한경쟁 시대에 에고가 멈추면 어찌 살라고. 어떻게 살아남으라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일하고, 치열하게 싸워도 역부족인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겠죠.


그런데 ‘멈춤’을 말한 이는 또 있습니다. 세계적인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60)는 “당신이 모든 것을 ‘멈추고’ 고요해질 때 지혜가 바로 거기 있다. 그러니 고요함이 당신의 말과 행동을 이끌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또 지두 크리슈타무르티(1895~1986)는 “명상하는 마음은 침묵한다(A meditative mind is silent)”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이 상상할 수 있는 침묵이 아니며, 고요한 저녁의 침묵도 아니다. 그것은 일체의 생각을 ‘멈추었을 때’ 이루어지는 침묵”이라고 덧붙였죠.


대체 뭘까요. ‘멈춤’의 자리에 뭐가 있을까요. 톨레는 “거기에 지혜가 있다”고 했습니다. 석가모니는 그걸 ‘반야의 지혜’라고 불렀죠. 그래도 사람들은 반박하겠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을 살면서 나도 지혜를 터득하잖아”라고 말이죠. 그런데 ‘나의 지혜’는 한계가 명백합니다. 그건 ‘나의 세상, 나의 영토’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나가 멈춘 자리의 지혜’는 다릅니다. 거기에는 한계가 없으니까요. 왜냐고요? ‘나’라는 테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죠. ‘나’라는 테두리가 없을 때,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무한한 우주에 꽉 차겠죠. 거기서 나오는 지혜, 거기서 나오는 사랑, 거기서 나오는 온유함의 크기를 과연 잴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석가모니는 “멈추라”고 한 거죠. 또 앙굴리말라는 그 말에 무릎을 꿇은 거죠. 예수님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죠. ‘내 이웃이 내 몸이 되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바로 ‘나가 멈추는 순간’이죠. 오직 그 순간, 이웃이 내가 되죠. 그러니 예수의 사랑도, 부처의 자비도, 톨레의 지혜도, 크리슈나무르티의 침묵도 마찬가지죠. 모두 ‘나가 멈춘 자리’에서 샘솟는 거죠.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2008.05.29 01:08 입력 / 2008.05.29 02:21 수정)


*비슷한 얘기를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찾아본다.(이웅재)

♣우리나라의 경우

호동은 대무신왕(大武神王)의 둘째 부인인 갈사왕의 손녀가 낳은 사람이다. 얼굴 모습이 아름다워 왕이 심히 사랑하여 호동이라고 이름지었다. 첫째 왕비는 [그가] 계승권을 빼앗아 태자가 될까 염려하여 왕에게 “호동이 저를 예로써 대접하지 않으니 아마 저에게 음행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고 참언하였다. 왕은 “당신은 남의 아이라고 해서 미워하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왕비는 왕이 믿지 않는 것을 알고, 화가 장차 자신에게 미칠까 염려하여 울면서 “청컨대 대왕께서는 몰래 살펴주십시요. 만약 이런 일이 없다면 첩이 스스로 죄를 받겠습니다.”고 고하였다. 이리하여 왕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호동에게] 죄주려 하였다. 어떤 사람이 호동에게 “당신은 왜 스스로 변명하지 않느냐?” 하고 물었다. [호동은] 대답하였다. “내가 만약 변명을 하면 이것은 어머니의 악함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효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칼에 엎어져 죽었다. 사론(史論): 이제 왕이 참소하는 말을 믿고 사랑하는 아들을 죄없이 죽였으니, 그가 어질지 못한 것은 족히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호동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때에는 마땅히 순(舜)이 고수()에게 하듯이 하여, 회초리는 맞고 몽둥이면 달아나서, 아버지가 불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호동이 이렇게 할 줄 모르고 마땅하지 않은 데서 죽었으니, 작은 일을 삼가는 데 집착하여 대의에 어두웠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공자(公子) 신생(申生)에게 비유할 만하다. [樂浪公主와 好童王子(삼국사기 14 고구려본기2 大武神王條)](성남문화원 古講 8.한국문학의 개념과 범위 등에서)


♣중국의 경우; 공자 신생

춘추시대 최강국인 齊나라가 桓公[-685~643]의 딸 제강(齊姜)은 진(晉)나라 왕 무공(武公)에게 시집을 간다. 그런데 무공이 죽자 그 아들 진 헌공(晉 獻公)이 왕권을 이어 받으면서 아버지의 애첩이었던 제강을 취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申生'이다.

 헌공은 또한 적족(狄族)  자매를  얻어  그  언니에게서  중이(重耳;후에 文公이 됨)를  낳고, 동생에게서 이오(夷吾;후에 惠公이 됨)를 낳는다.

 그리고 여융(驪戎)을 정벌한 후 그 추장의 두 딸을 취하여 언니인 여희(驪姬)와의 사이에서는 해제(奚齊)를, 동생 소희(少姬)에게는 도자(悼子)를 얻는다. 여희는 자신의 부족을 멸망시킨 데에 앙심을 품고, 진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온갖 책략을 꾀한다.

 여희는 태자인 신생이 자신을 탐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신생이 보낸 음식에다가는 독을 넣어 헌공으로 하여금 신생을 내치게 만든다. 이에 신생은 자결을 하고 만다. 한편 중이와 이오는 도망을 간다. 이후 진나라는 끊임없는 반란 등으로 세력이 점차 약해져 가고, 헌공이 죽고 태자 자리를 차지했던 해제도 죽게 되자 여희도 자결을 하고 만다.

 한편 진(秦)나라로 도망갔던 동생 이오는 자기 나라로 돌아와 왕이 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왕권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형 중이를 없애려고 자객을 파견한다. 형 중이는 여기저기 도망다니면서 온갖 고생을 한다. 그러다가 제나라로 흘러들었는데 제나라 환공은 그를 환대하여 아름다운 아내까지 짝지어 준다.

그러다가 자신을 따르는 충신들에게서 깨우침을 받아 아우를 몰아내고 왕이 된다. 그러면서

19년 동안이나 자신을 보좌했던 개자추(介子推)를 논공행상에서 그만 깜빡 빼먹고 만다. 이에 개자추는 노모가 계시는 면상산(綿上山 → 후에 介山으로 불려짐)으로 잠적한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중이는 면상산에까지 직접 개자추를 찾아 나섰으나 개자추는 산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문공은 산에 불을 지른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포목소사(抱木燒死)하고 말았다. 문공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해마다 이날에는 전국적으로 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찬밥을 먹게 되는 한식(寒食)날이 생기게 되었다.

(성남문화원 古講 8.한국문학의 개념과 범위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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