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수필 순례 18)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고전수필 순례 18)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혜 초 지음
이웅재 해설
(전략) 맨발에 나체며 외도(外道; 異敎徒)라 옷을 입지 않는다.(중략) 한 달 뒤에 구시나국(拘尸那國; 지금의 카시아[Kasia])에 도착하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곳이다. 그 성은 황폐되어 사람이라곤 살지 않는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곳에 탑을 세웠는데, 선사 한 사람이 그곳을 청소하고 있었다.(중략)
이 탑의 서쪽에 한 강이 있는데 이라바티수(伊羅鉢底水-Airavati)라 한다. 남쪽으로 2천리 밖을 흘러 항하(恒河;갠지스[Ganges] 강의 한자어)로 들어간다.
그 탑 사방은 절벽으로 되어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다. 매우 거친 숲만이 우거져 있다. 그곳으로 예배를 보러 가는 사람은 (간혹) 물소와 호랑이에게 해를 입기도 한다. (중략)
이 나라(파라나시국)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가 같이 시행되고 있다. 마하보리사를 예방하는 것은 나의 평소부터의 숙원이라 할 수 있기에 매우 기쁘므로 그 어리석은 뜻을 대략 서술하여 오언시를 짓는다.(중략)
중천축국의 왕이 살고 있는 성에 도착하였다.(중략) 이 중천축국의 경계는 매우 넓고 백성들도 많고 번잡하다. 왕은 9백 마리의 코끼리를 가지고 있고, 기타 대수령들은 각각 3백 또는 2백 마리의 코끼리를 가지고 있다. 그 왕은 언제나 스스로 병마를 거느리고 싸움을 하는데, 항상 다른 네 천축국과 싸움을 하면 이 중천축의 국왕이 늘 이겼다. 그(싸움에 진) 나라들은 코끼리가 적고 병력도 적음을 알아 곧 화친하기를 청하고 해마다 공물을 바치고 서로 진을 치고 죽이는 교전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의복과 언어, 풍속, 그리고 법률은 다섯 천축국이 서로 비슷하다.(중략)
이 다섯 천축국의 법에는 목에 칼을 씌우거나, 매를 때리는 형벌과 감옥이 없다.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 경중에 따라 벌금을 물릴 뿐 사형도 없다.(중략) 길에는 비록 도적이 많기는 하나 물건만 빼앗고는 즉시 풀어 보내고 그 자리에서 죽이거나 해를 끼치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즉시 물건 주기를 꺼려하면 몸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토지는 기후가 매우 따뜻하여 온갖 풀이 항상 푸르고 서리나 눈은 볼 수 없다. 먹는 것은 오직 쌀 양식과 떡, 보릿가루, 우유, 버터 등이며 간장은 없고 소금을 상용한다.(중략) 백성에게는 별도의 부역(賦役) 세금은 없고, 단지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 다섯 섬만 왕에게 바치면,(중략) 그 나라 백성은 빈자(貧者)가 많고 부자는 적은 편이다. 왕과 벼슬아치의 집안 및 부유한 사람들은 전포(氈布)로 만든 옷 한 벌을 입고, 자급자족하는 사람(중류 계급)은 (아래옷) 한 가지만 입고, 가난한 사람은 반 조각만 몸에 걸친다. 여자도 역시 그렇다.
이 나라의 왕은 매양 관아(官衙)에 앉아 있으면 수령과 백성들이 모두 와서 왕을 둘러싸고 그 사면에 둘러앉는다. 그리고는 각기 도리를 내세워서 논쟁을 하는데 소송이 분분하여 매우 요란하고 시끄러워도 왕은 듣고만 있지 꾸짖지 아니하다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천천히 판결을 내리는데, "너는 옳고, 너는 옳지 못하다."고 하면 그 백성들은 왕의 한 마디 말로써 결정을 하고 다시는 거론을 하지 않는다.
왕과 수령 등은 3보(寶)에 대하여 심히 공경하고 믿는다. 만약 스승되는 중을 대하게 되면 왕과 수령 등은 땅바닥에 그대로 앉고,(중략) 토지에서 생산되는 것으로서는 오직 전포(氈布)와 코끼리, 말 등이며 이곳의 땅에서는 금과 은은 나지 않아서 외국으로부터 들여온다.(중략) 그곳의 소는 모두가 흰 빛인데,(중략) 양과 말은 아주 적어서 오직 왕만이 2-3백 마리의 (양과) 60-70필의 말을 소유하고 있다. 이밖에 수령과 백성들은 모두 다른 가축은 기르지 않고 오직 소만을 기른다.(중략)
그곳 사람들은 착하고 살생을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시장의 가게에서는 가축을 잡는 행동이나 고기를 파는 곳을 볼 수가 없다.(하략)
♣해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란 책 이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지만, 그 내용은 부분적으로도 대해본 사람이 별로 없는 실정이라서 이에 소개한다. 이 기행문은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 펠리오(P.Pelliot)에 의해 중국 돈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 일명 莫高窟)에서 발견되었고, 이것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43년 최남선(崔南善)이 “삼국유사” 부록에다가 실은 것이 최초였다.
지은이 혜초(慧超 ; 704 ~ 787)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16세 때 당나라로 가서 인도 출신의 중국 밀교(密敎) 초조(初祖)인 금강지(金剛智)를 사사(師事)했다. 스승이 입적한 후에는 그의 제자인 불공(不空)에게서 배워 중국 밀교의 법맥을 이었다.
밀교(密敎)란 불교 중의 비교(秘敎), 곧 비밀불교라고도 하는 바, 釋 智賢은 玄岩社 刊 “密敎”(1985)의 '머리말'에서, “종교는 인간적인 것의 거부로부터 시작된다.…종교는 인간에게 罪意識의 올가미를 걸었다.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외치는 종교는 이제 인간을 거부하는 僞善, 그 온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 인간을 통하여 종교의 본질로 가는 길이 있다. 그것이 密敎”요, “性의 오르가즘을 통하여 宗敎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뜨거움이 바로 密敎”로서, “인간의 육체는 진리로 가는 第一關門”이라고 했다.
** 번역 및 주(註)는 李錫浩 譯, “往五天竺國傳(外)” (乙酉文庫 46,1984)를 따랐으나, 해설자가 맞춤법, 띄어쓰기, 그리고 부분적 윤문을 했다. 본문 중의 ‘…’ 표시는 원문에서 글자가 빠진 것을 나타내며, 해설자가 편의상 줄인 부분은 ‘중략’ 등으로 나타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