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로 갔나? 오데로~
오데로 갔나? 오데로~
이 웅 재
농협 하나로에서 철원 동송농협에서 오대쌀을 선전하기 위해 초청하는 행사가 있었다.
몇 번 철원엘 다녀오긴 했지만, 개별적인 행보가 아니라서 내 마음대로 다녀보지는 못했는데, 이번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직탕폭포(直湯瀑布)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오대쌀 선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일 듯싶었다. 밥은 뜸도 덜 들었고,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오대쌀을 사용한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대충 허기만 채우고 나왔더니 시간이 남는다. 커피를 한 잔씩 뽑아서 직탕폭포를 완상하며 여유를 즐겨 보았다. 그리고는 기사 아저씨를 재촉하여 버스를 타려고 했더니, 조금만 더 지내다가 올라가란다. 버스에 파리가 있다고 해서 파리약을 뿌려놓은 상태니까 파리약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만 기다리라는 것이다.
버스 안을 휘젓고 다니던 파리는 3마리였다. 저놈들 출신 지역은 어디일까? 출신 성분 때문에 북한에서 지낼 수가 없어서 남하한 나로서는(물론 이것은 부모님들 문제이었지만) 놈들의 출신 지역이 궁금했다. 서울, 아니 분당 파리일까? 아님, 철원 파리일까? 분당 파리였다면 “구경 한번 잘 했네.”하면서 신이 나서 앵앵거리며 돌아다녔을 것이요, 철원 파리였다면 “거기나거기나 사람 사는 데에는(아니, 파리 사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구먼 그래.”라고 해탈한 스님처럼 중얼거렸을 것이다. 놈들, 주민등록증을 확인할 도리도 없고 법원의 판결을 기대할 수도 없으니, 그저 우리들끼리 재단하는 수밖에….
재판장은 기사 아저씨. 그는 이놈들은 분당파리임에 틀림없단다.
근거 ① : 자기가 철원에서 분당으로 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파리들이 없었단다. 파리들도 지역 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의미에서 쥐 죽은 듯, 아니, 파리 죽은 듯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근거 ② : 철원 파리는 시골 파리라서 어수룩하여 쉽게 파리채로도 잡히는데, 요놈들은 파리약을 뿌렸는데도 끄떡 않는 것을 보면, 철원 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근거 ③ : 철원 파리는 몸집이 작은데, 이놈은 그 몸피가 푸근할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천당 위의 분당인데, 다른 지역에서는 천당엘 가기 위해서 낙타도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도록 피눈물 나는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이놈들은 이미 천당은 졸업한 놈들, 그러니까 디룩디룩 살이 쪄 있는 놈들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판결은 소중하다. 판결을 소중히 여겨야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사님의 그 판결을 100%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파리가 어디 파리이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지는 척, 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우리를 인도해 간 곳은 도정 공장, 옛날 말로 하자면 방앗간이었다. 거기서 때로는 여성스럽고(이건 들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또 때로는 남성스러운 어느 남성분의 설득적인 ‘철원쌀 예찬’을 들었다. 평소 같으면 이와 같은 설득적인 설명을 들으면 오히려 반발심이 불뚝 솟았을 것인데, 늘 그리워하던 고향땅인 때문이었을까? 모든 걸 너그럽게 생각했음은 물론, 그가 말한 요지(要旨) 하나하나까지를 머릿속에 깊이 새겨 두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다가 스스로 적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철원 쌀이 좋은가?
첫째, 기후 문제란다. 추운 지방에서 소출되는 쌀일수록 차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한때 ‘알락미’라고 부르던 ‘안남미’, 곧 베트남 쌀을 보아도 이는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일이다. 더운 지방에서 나는 쌀은 그처럼 찰기가 없는 것이다. 한반도로서는 철원평야가 쌀 생산지의 북방한계선쯤 되는 곳이니 더할 수 없이 차진 쌀, 최고품의 쌀이 아닐 수 없단다. 게다가 영하 20도 이하까지 떨어지는 한겨울의 추운 날씨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해충을 자동적으로 없애준단다.
둘째는 물. 철원엔 공장이 없다. 휴전선 근처의 지역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는데, 따라서 농업용수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농산물의 청정성을 보장하는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옳은지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셋째는 토양. 둘째 이유와 중복되기도 하겠지만, 비무장지대이다 보니 그만큼 토양도 오염되지 않은 곳인 데다가 이곳은 용암으로 뒤덮였던 화산 지형이라서 현무암이 많고 그런 토질은 농작물에게는 아주 좋은 비옥한 토질이라고 한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친환경적인 농법인 오리농법, 우렁이농법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기농 농법에다가 비료도 천연비료를 사용하고 있어서 더욱더 믿을 만한 쌀이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TV스크린을 이용한 영상물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마지막 대목에서의 코믹한 에피소드가 걸작이었다.
농민 몇 명이 강가에서 쌀 포대를 서로 전달하다가 그만 강물 속으로 풍덩 빠뜨려 버렸다. 농민들 합창한다.
“오데로 갔나? 오데로~.”
조금 후 물속에서 수염이 허연 신선이 하나 나오더니 묻는다.
“이것이 네 쌀 포대냐?”
“아닙니다.”
그 신선, 다시 물속으로 쑤욱 들어갔다가 나온다.
“이것이 네 쌀 포대냐?”
“예, 맞습니다!”
신선 왈,
“이 좋은 쌀을 너희만 먹으려 하느냐?”
농민들, 할 말이 없어 묵묵부답이다. 신선이 약 올리는 아이들 목소리로 말한다.
“잘 먹을게~~~~.”
물속으로 쏘옥 사라진다.
철원쌀 예찬을 하던 어느 남성분, 이 영상물을 물경 3천4백만 원을 들여서 촬영했다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듣는 사람들은 모두들 “애개~. 그렇게밖에 안 들었어?”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를 위해 힘껏 박수를 쳐 주면서 웃었다. 박수, 웃음도 건강에 좋다고 하지 않던가? 고향은 그렇게 내 건강을 생각해 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