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수필 쓰기 33) [문체 ①간결체와 만연체]

거북이3 2009. 9. 27. 17:22
 

 

(수필 쓰기 33)  [문체 ①간결체와 만연체]


                                                                      이   웅   재

                                                                        

 ‘문체’라는 말은 영어의 ‘Style’을 번역한 말이다. ‘Style’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문체란 글의 내용면보다는 그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측면과 관련이 깊은 말이다. 다시 말하면 ‘문체’란 ‘글쓴이의 생각이 글의 어구 등을 통하여 드러나는 전반적인 특징’ 혹은 ‘문장의 양식(樣式)’이라고 할 수가 있다.

 문체의 종류는 그 관점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그 중 흔히 말해지는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표기 형식상: 국문체, 한문체, 국한문혼용체, 한주국종체, 국주한종체, 현토체 등

2.어휘․ 어법상: 경어체, 평어체, 또는 문장체, 구어체, 역어체 등

3.문장 양식상: 가사체, 내간체, 기행체, 소설체 또는 운문체, 산문체 등

4.사용 용도상: 기사문체, 법률문체, 서간문체 등

5.수사 기교상: 간결체, 만연체, 강건체, 우유체, 건조체, 화려체 등


  여기서는 실제 글쓰기에서 필요하다고 보이는 수사 기교상의 문체에 대해서 알아보자. 프랑스의 박물학자요 계몽철학자인 '뷔퐁'은 "글은 곧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문체란 글쓴이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라 하겠다. 이렇게 본다면, 문체란 글 쓰는 이의 숫자만큼이나 많을 수가 있다. 그러기에 지은이를 보지 않고서도 그 글이 누구의 글이라는 점을 알아낼 수도 있는 것이다. 단어의 선택, 어미의 종류, 어순의 사용, 문장의 길이 등등 문체를 이루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 이에 글쟁이들은 이들 하나하나의 사용에도 신중을 기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사 기교상의 문체에는 간결체, 만연체, 강건체, 우유체 등이 있다고 했다. 그 가운데에서 문장 호흡의 장단에 따라 분류해 볼 수 있는 것이 간결체와 만연체이다. 이제 이들을 구별하여 보자.


♣간결체(簡潔體):될 수 있는 대로 요약해서 근소(僅少)한 어구로 표현한다. 일어일구(一語一句)에 긴축(緊縮)이 있고 선명(鮮明)한 인상을 준다. 자칫하면 건조무미(乾燥無味)할 위험성이 있다.

♣만연체(蔓衍體):간결체와 반대다. 기분(氣分)까지를 나타내기 위해 천언만어(千言萬語)로 우여곡절(紆餘曲折)을 일으킨다. 자칫하면 만담(漫談)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창 옆에 애착하는 감정을 한낱 헛된 호기심으로 단정해 버릴지 모른다.” 하면 간결한 문체요,

“우리로 하여금 항상 창측의 좌석에 있게 하는 감정을 사람은 하나의 헛된 호기심이라고 단정하여 버릴지도 모른다.” 하면 만연미(漫衍味)가 있는 문체다.(李泰俊, 增訂 文章講話, 博文出版社, 1947, pp.286-287)


♣문례(文例)(위의 책, pp.289-291)

 간결체(簡潔體): 태형(笞刑)(短篇․ 一部分), 김동인(金東仁)


 우리 방에서 나갔던 서너 사람도 돌아왔다. 영원 영감도 송장 같은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간수가 돌아간 뒤에 머리는 앞으로 향한 대로 손으로 영감을 찾었다.

 "형편 어떻습디까?"

 "모르겠소."

 "판결은 어떻게 되었소?"

 영감은 대답이 없었다. 그의 입은 바늘로 호라매우지나 않았나? 그러나 한참 뒤에 그는 겨우 대답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대단히 떨렸다.

 "태형 九十도랍디다."

 "거 잘 됐구려! 이제 사흘 뒤에는, 담배두 먹구 바람두 쐬구 …. 난 언제나…."

 "여보, 잘돼시오? 무어이 잘됏단 말이오? 나이 七十줄에 들어서 태맞으면— 말하기도 싫소. 난 아직 죽긴 싫어! 공소했쉐다."

 그는 벌컥 성을 내어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뒤의 내 성도 그에게 지지를 않었다.

 "여보! 시끄럽소. 노망했오? 당신은 당신이 죽겠다구 걱정하지만, 그래 당신만 사람이란 말이오? 이방 四十여인이 당신 하나 나가면 그만큼 자리가 넓어지는건 생각지 않오? 아들 둘 다 총에 맞아 죽은 다음에 뒤상 하나 살아 있으면 무얼해? 여보!"

 나는 곁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향하였다.

 "여게 태형 언도에 공소한 사람이 있답니다."

 나는 이상한 소리로 껄걸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영감을 용서치 않었다. 노망하였다. 바보로다. 제 몸만 생각한다. 내어쫓아라 여러 가지의 폄이 일어났다.

 영감은 대답이 없었다. 길게 쉬이는 한숨만 우리의 귀에 들렸다. 우리들도 한참 비웃은 뒤에는 기진하여 잠잠하였다. 무겁고 괴로운 침묵만 흘렀다.

 바깥은 어느 덧 어두워졌다. 대동강 빛과 같은 하늘은 온 세상을 덮었다. 우리들의 입은 모두 바늘로 호라메우지나 않았나.

 그러나 한참 뒤에 마침내 영감이 나를 찾는 소리가 겨우 침묵을 깨뜨렸다.

 "여보!"

 "왜 그러오?"

 “그럼 어떻하란 말이요?”

 “이제라두 공소를 취하해야지!”

 영감은 또 먹먹하였다. 그러나 좀 뒤에 그는 다시 나를 찾었다.

 "노형 말이 옳소. 내 아들 두놈은 정녕쿠 다 죽었쇠다. 난 나 혼자 이제 살아서 무얼 하갔소? 취하하게 해주소."

 "진작 그럴게지. 그럼 간수 부릅니다."

 "그래주소."

 영감은 떨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패통을 첬다. 간수는 왔다. 내가 통역을 서서 그의 뜻(이라는것보다 우리의뜻)을 말하매 간수는 시끄러운듯이 영감을 끄으러 내갔다.

 자리에 돌아올 때에 방안사람들을 보니, 그들의 얼굴에는 자리가 좀 넓어졌다는 기쁨이 빛나고 있었다.


 문장들이 짧다. 따라서 읽을 때 속도감이 있다. 읽는 사람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한 글자 한 글자를 허투루 읽게 하지 않게 하기에 산뜻하고 깔끔하고 선명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간결체 문장은 특히 대화가 많이 나오는 소설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때로는 원고료를 의식한 짤막한 대화들을 등장시키는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 짤막한 대화 하나하나가 참신한 느낌을 가져오는 수가 많아서 역시 작품의 분위기 형성에 도움을 준다고 하겠다. 수필에서도 효과적인 간결체의 사용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글쓰기의 초심자들의 경우라면 간결체의 글에서부터 시작할 일이라고 하겠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小說家 仇甫 氏의 一日), 박태원(朴泰遠)


 차장이 다시 그의 옆으로 왔다. 어디를 가십니까, 구보는 전차가 향하여 가는 곳을 바라보며 문득 창경원에라도 갈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차장에겐 아무런 사인도 하지 않았다. 갈 곳을 갖지 않은 사람이, 한 번 차에 몸을 의탁하였을 때, 그는 어디서든 섣불리 내릴 수 없다.

 차는 서고 또 움직였다. 구보는 창 밖을 내어다보며, 문득 대학병원에라도 들를 것을 그랬나, 하여 본다. 연구실에서, 벗은 정신병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를 찾아가 좀 다른 세상을 구경하는 것은 행복은 아니어도 어떻든 한 개의 일일 수 있다.

 구보가 머리를 돌렸을 때, 그는 그곳에 지금 마악 차에 오른 듯싶은 한 여성을 보고, 그리고 신기하게 놀랐다.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오늘 전차에서 '그 색씨'를 만났죠 하면, 어머니는 응당 반색을 하고 그리고'그래서, 그래서', 뒤를 캐어물을 게다. 그가 만약 오직 그뿐이라고 말한다면, 어머니는 실망하고, 그리고 그를 주변머리 없다고 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그 일을 알고, 그리고 아들을 졸하다고 라고 말한다면, 어머니는 내 아들은 원체 얌전해서…. 그렇게 변호할 게다.

 구보는 여자와 시선이 마주칠까 겁하여, 얼토당토않은 곳을 보며, 저 여자는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보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여자는 혹은 그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전차 안에 승객은 결코 많지 않았고 그리고 자리가 몇 군데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석에가 서 있는 사람이란 남의 눈에 띄기 쉽다. 여자는 응당 자기를 보았을 게다. 그러나 여자는 능히 자기를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의문이다. 작년 여름에 단 한 번 만났을 뿐으로, 이래 일 년 간 길에서라도 얼굴을 대한 일이 없는 남자를, 그렇게 쉽사리 여자는 알아내지 못할 게다.

 그러나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여자에게, 자기의 그 대담한, 혹은 뻔뻔스런 태도와 화술이, 그에게 적지 않이 인상 주었으리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여자는 때때로 자기를 생각하여 주고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그는 분명히 나를 보았고 그리고 나를 나라고 알았을 게다. 그러한 그는 지금 어떠한 느낌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이 구보는 알고 싶었다.

 그는 결코 대담하지 못한 눈초리로, 비스듬히 두 칸통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여자의 옆얼굴을 곁눈질 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와 눈이 마주칠 것을 겁하여 시선을 돌리며, 여자는 혹은 자기를 곁눈질한 남자의 꼴을 곁눈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하여 본다.

 여자는, 남자를 그 남자라 알고 그리고 남자가 자기를 그 여자라 안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우에, 나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야 마땅할까 하고, 구보는 그러한 것에 머리를 썼다. 아는 체를 하여야 옳을지도 몰랐다. 혹은 모른 체하는 게 정당한 인사일지도 몰랐다. 그 둘 중에 어느 편을 여자는 바라고 있을까. 그것을 알았으면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러한 것에 마음을 태우고 있는 자기가 스스로 괴이하고 우스워, 나는 오직 요만 일로 이렇게 흥분할 수가 있었던가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여 보았다. 그러면 나는 마음속 그윽이 그를 생각하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가 여자와 한 번 본 뒤로, 일 년 간, 그를 일찍이 한 번도 꿈에 본 일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 내었을 때, 자기는 역시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자기가 여자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리고 이리저리 공상을 달리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감정의 모독이었고 그리고 일종의 죄악이었다. 그러나 만약 여자가 자기를 진정으로 그리우고 있다면….

 구보가 여자 편으로 눈을 주었을 때, 그러자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산을 들고 차가 동대문 앞에 정류하기를 기다리어 내려갔다. 구보의 마음은 또 한 번 동요하며, 창 너머로 여자가 청량리행 전차를 기다리느라 그 속 안전지대로 가 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자기도 차에서 곧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여자가 청량리행 전차 속에서 자기를 또 한 번 발견하고 그리고 자기가 일도 없건만, 오직 여자와의 사이에 어떠한 기회를 엿보기 위하여 그 차를 탄 것에 틀림없다는 것을 눈치챌 때, 여자는 그러한 자기를 얼마나 천박하게 생각할까. 그래 구보가 망설거리는 동안, 전차는 달리고 그들의 사이는 멀어졌다. 마침내 여자의 모양이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떠났을 때, 구보는 갑자기 아차, 하고 뉘우친다.

 행복은 그가 그렇게도 구하여 마지않던 행복은, 그 여자와 함께 영구히 가버렸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기에게 던져줄 행복을 가슴에 품고서, 구보가 마음의 문을 열어 가까이 와주기를 갈망하였는지도 모른다.

 왜 자기는 여자에게 좀더 대담하지 못하였나. 구보는 여자가 가지고 있는 온갖 아름다운 점을 하나하나 헤어보며, 혹은 이 여자 말고 자기에게 행복을 약속하여 주는 이는 없지나 않을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짤막짤막한 문장이 순간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표현하는 데에 아주 잘 어울린다. 달리는 차 안에서 차창 밖의 풍경을 묘사한다든지, 서로 말다툼할 때의 대화 따위는 이처럼 호흡이 빠른 문체로 나타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글쓰기 초심자의 경우에는 특히 간결체 문장을 쓰는 것이 좋다. 문장력에 특별히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단문(短文)이라야 주술 관계도 명확하고 의미 전달도 명쾌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이 쓰는 글이라도 글의 성격에 따라 어떤 때는 간결체, 또 다른 경우에는 만연체의 글을 쓸 수도 있다.

 같은 박태원의 글임에도 이태준은 다음의 글은 만연체에 해당하는 글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만연체(蔓衍體): 아름다운 風景, 박태원(朴泰遠)


 밤 열點이나 그러한 時刻에 악박골로 向하는 電車은 으레이 滿員이다.

 나는 勿論 그 속에 자리를 求하지 못하고 憂鬱하게 사람들 틈에가 비비대고 서있지 않으면 안된다.

 밖에는 亦是 비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으나, 大部分의 乘客은 雨傘을 携帶하지 않았다.

 비는 正午 가까이나 되어 오기 始作하였으므로 그들은 應當 그前에 집을 나선 사람들일 게다.

 나는 다시 한번 살피어 救하기 어려운 疲勞를 그 얼굴에, 그몸에, 가지고 있는 그들이 거의 모두 그의 한손에 點心그릇을 싸들고 있는 것을 알었다.

 아침 일즉이 나가 밤이 이렇게 늦어서야 돌아오는 그들은 必然코 그 살림살이가 넉넉지는 못할게다.

 僅少한 生活費를 얻기에 골몰하는 그들이 大體 어느 餘暇에 그들의 安息과 娛樂을 求할 수 있을것인가. 더구나 이렇게 밤늦게 궂은 비는 끊이지 않고 내려 雨傘의 準備없는 그들은 電車밖에 한걸음을 내어놓을 때 그 마음의 憂鬱을 救하기 힘들게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이를테면 부질없은것이다. 내가 現底町 停留所에서 電車를 내렸을때 나와 함께 내리는 그들을 爲하여 그곳에는 일직부터 그들의 家族이 雨傘을 準備하여 기다리고 있었고 더러는 살이 부러지고 구멍이 군데군데 뚫어지고한 紙雨傘을, 박쥐雨傘을 그들은 반가이 받어들고, 그들의 어머니와 그들의 안해와 或은 그들의 누이와 어깨를 나란이하여 그들의 집으로 向하여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새삼스러이 周圍를 둘러 보았을 때 아직도 돌아 오지 않는 오라비를 爲하여 男便을 爲하여 或은 아들을 爲하여 雨傘을 準備하고 있는 女人들은 그 곳에 오직 十餘名에 그치지 않었다.

 나는 그들에게 幸福이 있으라—빌며 자주는 가져보지 못하는 感激을 가슴에 가득히 비내리는 밤길을 고개 숙여 걸었다.


 마음속에서도 비가 내리듯 분위기 자체가 무겁고 침침한 느낌이다. 짧은 문장의 경쾌한 느낌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풍경 묘사인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때로는 간결체가 걸맞을 수도 있고, 또 때로는 만연체가 적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 수가 있겠다.

 다음은 만연체의 대표적인 김진섭의 ‘매화찬’을 보도록 하자.


♣매화찬(梅花讚), 김진섭(金晋燮)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감정에 붙들리고야 마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으니, 왜냐하면, 첫째로 그것은 추위를 타지 않고 구태여 한풍(寒風)을 택해서 피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것은 그럼으로써 초지상적(超地上的)인, 비현세적인 인상을 내 마음 속에 던져 주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혹은 눈 가운데 완전히 동화된 매화를 보고, 혹은 찬 달 아래 처연(悽然)히 조응된 매화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筆頭)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적설(積雪)과 한월(寒月)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에라야만 고요히 피는 이 꽃의 한없이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에는, 친화(親和)한 동감(同感)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굴복감을 우리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매화는 확실히 춘풍이 태탕(駘蕩)한 계절에 난만(爛漫)히 피는 농염한 백화(百花)와는 달라, 현세적인, 향락적인 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 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초고(超高)하고 견개(狷介)한 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찬 돌같이 딱딱한 엄동(嚴冬), 모든 풀, 온갖 나무가 모조리 눈을 굳이 감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즈음, 어떠한 자도 꽃을 찾을 리 없고 생동(生動)을 요구할 바 없을 이 때에, 이 살을 저미는 듯한 한기를 한기로 여기지 않고 쉽사리 피는 매화, 이는 실로 한때를 앞서서 모든 신산(辛酸)을 신산으로 여기지 않는 선구자의 영혼에서 피어오르는 꽃이랄까?


 그 꽃이 청초하고 가향이 넘칠 뿐 아니라, 기품과 아취가 비할 곳 없는 것도 선구자적 성격과 상통하거니와, 그 인내와 그 패기와 그 신산에서 결과(結果)된 매실(梅實)은 선구자로서의 고충을 흠뻑 상징함이겠고, 말할 수 없이 신산한 맛을 극(極)하고 있는 것마저 선구자다워 재미있다.


 매화가 조춘 만화(早春萬花)의 괴(魁)로서 엄한(嚴寒)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하는 것은, 그 수성(樹性)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强靭)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고유의 수종이 그 가지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繁茂)하는 상태(狀態)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果樹)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거니와, 그러므로 또한 매실이 그 독특한 산미(酸味)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로 귀중한 의약(醫藥)의 자(資)가 되어 효험(效驗)이 현저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밖에 없다.


 여하간에 나는 매화만큼 동양적인 인상을 주는 꽃을 달리 알지 못한다. 특히 영춘(迎春) 관상용(觀賞用)으로 재배되는 분매(盆梅)에는 담담한 가운데 창연(蒼然)한 고전미가 보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청고(淸高)해서 좋다.


 작품 전체가 7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문체는 문장 표현에 상당히 숙달된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야만 쓸 수가 있으며, 나름대로의 문장의 묘미를 느끼게 만들어주는 문체이다. 관형어와 부사어를 많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특성을 보다 자세하고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장점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호흡이 늘어지다 보니 산뜻한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뒤따르고 지루하고 진부한 느낌을 가지게 해주는 단점이 있다. 만연체 문장에 익숙하려면 특히 반점(,)의 사용에 유의하여 읽는 이의 호흡의 단락을 구분해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간결체에서의 주어는 주로 문장의 첫머리에 오는 데 비해서, 만연체에서는 문장의 뒤쪽으로 끌어다 놓은 것도, 문의(文意) 파악을 쉽게 만들어 주는 장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09.9.27. 원고지 4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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