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의 에티켓
거지의 에티켓
이 웅 재
찰스 램이 말했던가?
“거지는 가두의 정경을 위해서 없어서는 아니 될 이색적인 하나의 장식물이다.”라고.
어느 나라에나 거지가 있었다. 동남아 쪽에서야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는 일본에 갔을 때,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을 방불케 하는 우에노[上野] 역전시장 앞쪽 ‘스리세븐(777)’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거닐었던 우에노 공원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거지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어디 우에노 공원만 그러하던가? 천왕이 살고 있는 황거(皇居)공원 안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노숙자(露宿者)라고 부르고 거지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그들은 우선 구걸을 하지 않는단다. 단지 일하기가 싫어서 타인과의 일체의 교섭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국에서도 그들을 특별히 단속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한화로 따져서 8억이 넘는 돈을 가지고 있는 노숙자도 있다고 하니, 딴은 거지라고 하기가 힘들 듯도 했다. 미국의 히피 족[Hippie 族]도 그 비슷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삭막한 물질주의에 반발해 생겨났다는, 봉두난발(蓬頭亂髮)에 지저분한 수염까지 기르고, 기묘한 복장을 한 채 맨발로 거리에서 뒹구는 모습은, 우리의 눈으로는 영락없는 거지임에 틀림이 없는데….
오스트리아(Austria) 슈테판돔 광장(Stephansplatz)에서도 거지는 아니지만, 순식간에 남의 지갑을 슬쩍 하는 사람을 보았다. 2명이 한 조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재빠른 사람들이 등장했다. 바로 경찰관.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소매치기들을 낚아채더니 금세 수갑을 채워 끌고 간다. 그 소매치기들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 멀쩡한 사내들이었다. 입고 있는 의상도 세련되어 보이고 행동거지도 별로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찰스 램의 말마따나 사람 사는 곳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가두의 정경을 위해서 없어서는 아니 될 이색적인 하나의 장식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직도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거지가 있었다. 오녀산성(五女山城)을 관람하고 단동계(丹東界)로 들어서면서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가 조그마한 도시로 들어섰을 때였다. 거기서 거지를 보았다. 일본과는 달리 이곳의 거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빈털터리 거지였다. 그들에게는 재산만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일하고자 하는 의욕마저도 없고 그래서 거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길가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을 뒤져서는, 파먹고 버린 수박 통을 꺼내어 머리를 파묻고 갉아먹더니, 별로 먹을 것이 없는지 금방 다시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다. 공산주의 나라에는 거지가 없는 줄 알았는데…. 물론 그것은 자본주의의 선물이었다. 아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 편이 옳을 것이었다. 아니, 그렇지도 않다.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에도 거지는 있었다. 노신(魯迅: 본명은 周樹人, 1881-1936)의 ‘걸식자(乞食者)’라는 글에서도 다음과 같은 거지에 대한 서술이 있지 않은가?
“다른 한 아이가 내게 구걸을 했다. 옷도 제법 입었고 청승도 떨지 않았다. 그러나 벙어리여서 손바닥을 펴고 손짓으로 의사를 표시했다. 그의 거동이 나는 싫었다. 그는 벙어리가 아닌지도 모른다. 나는 보시(布施)를 하지 않는다.”
탄천을 산책하다 보면 가끔 거지를 만난다. 한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흐느적흐느적 걸음을 떼어놓는다. 어떤 때에는 천변(川邊)에 앉아 소주를 한잔하기도 한다. 소주병 옆쪽을 흘낏 바라보면 라면, 떡볶이, 어묵(오뎅) 등 안주도 푸짐하다. 어떤 때는 돼지머리고기가 놓여있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또 그 옆에는 조금 낡아 보이기는 하지만, 꽤 쓸 만한 라디오가 함께 놓여 있고, 거기서는 최신 유행가 가락이 흘러나온다. 그는 그 노랫가락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허밍으로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자작(自酌)의 향연을 즐긴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지 않는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인사까지 한다. 어디서 돈이 나서 저렇게 자연을 벗 삼아 주연(酒宴)을 즐기는 것일까? 하긴 ‘신림동 꽃거지’도 구걸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키도 훤칠하고, 지저분하긴 하지만 얼굴도 ‘꽃미남표’라고 하던가? 각종 인터넷 검색순위 2등이라고 하니 거지치고는 유명인에 속하는 셈이다. 그가 어떤 건물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고서는, 무슨 영화라도 찍는 것이 아닌가 하고 다가갔다가 거지들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그 특유의 냄새에 놀라서 도망을 친다고 하던가? 탄천의 거지도 그에 별로 뒤지지 않는 멋쟁이(?)다.
그를 차병원 앞 대학약국에서 만났다. 보건소에서 처방전을 받아가지고 혈압 약을 사러 들어갔는데 거기에 그가 있었다. 아하, 그가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더니 이런 곳에 와서 삥땅을 뜯어가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삥땅을 뜯는 현장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는 넓은 약국 안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약국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로웠다.
그가 식수통으로 가서 흰 컵으로 식수를 받아 마셨다. 그래도 아무도 그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약국 안에는 다른 손님들도 몇 명 있는데, 저래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나는 그를 좀더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곤 놀랐다. 그가 입고 있는 후줄그레한 옷과는 달리 그의 손에는 결혼식장이라든가 무슨 준공식 등 기념식 때에는 끼는 아주 깨끗하고 얄팍한 면장갑이 끼워져 있지 않은가? 거지도 저 정도는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거지는 모두 없애야 한다. 결국 무언가를 준다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아무 것도 안 주는 것도 마음에 걸리니까.”
‘서광[曙光]’이라는 글에서 이처럼 말했던 니체가 이 광경을 목도(目睹)했더라면 과연 무엇이라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