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전 수필

(고전수필 순례 40) 선비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 이것저것

거북이3 2009. 12. 31. 21:46

(고전수필 순례 40)

          선비들이 지켜야 할 사소한 예절 이것저것

                                                                이덕무 지음

                                                                                이웅재 해설

 

 농사짓고 나무하고 고기 잡고 짐승 치는 일은 진실로 인생의 본업인 것이다. 목수의 일, 미장이의 일, 대장장이의 일, 옹기장이의 일에서부터 새끼 꼬는 일, 신 삼는 일, 그물 뜨는 일, 발 엮는 일, 먹 만드는 일, 붓 만드는 일, 나뭇가지를 쳐주는 일, 책 매는 일, 술 빚는 일, 밥 짓는 일 등 무릇 일상생활에 필요로 하는 일 및 효제(孝悌)ㆍ윤상(倫常)으로서 아울러 행하여 폐지할 수 없는 것은 재주와 능력에 따라서 글을 읽고 행실을 닦는 여가에 때때로 배워 익혀야 할 일인데, 조그만 기예라 해서 멸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약 전념함으로써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또한 큰 잘못이다.

 글 읽는 일에만 도취되고 사리에 어두운 자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고봉(高鳳)1)이 글 읽는 일에만 정신을 쓰다가 보리 멍석을 비에 떠내려가게 만든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군자는 생활을 오활(迂闊)2)하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굶주린 지 오랠 것이니 논할 것이 못되겠지만, 처자조차 능히 보전하지 못한다면 또한 어찌 어진 사람이라 하겠는가?

 산수(山水)ㆍ화조(花鳥)ㆍ서화(書畫)ㆍ골동품 등은 그 아취(雅趣)가 주색(酒色)이나 재리(財利)보다 나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도취되어 뜻을 상하고 학업을 망치며, 심지어는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또는 남에게 빼앗기게 되는 등의 지경에 이른다면 그 해는 도리어 주색ㆍ재리보다 큰 것이다. …

 손톱을 기르지도 말고 손톱을 깎을 때 살점이 떨어지게 하지도 말며, 이로 손톱을 씹지도 말고 자른 손톱을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리지도 말라.…

 담배를 즐겨 피우는 풍속이 있는데 왕자의 정치에서는 금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어떤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담배 피우기를 가르치기도 하는데 그것은 분명 무식한 부모요, 부모가 금하는데도 몰래 피우는 자는 분명 불초한 자녀인 것이다.  …

 군자는 재앙을 소멸하고 병을 피하게 하는 부적을 몸에 가까이 하지 말고, 문지방 위에 붉은 주문을 붙이지 말고, 형조(荊條)ㆍ산석(産席)ㆍ호두(虎頭)3) 따위 잡물을 문 위에 걸지 말라. 어찌 차마 집안사람이나 빈객(賓客)으로 하여금 문에 드나들 때 항시 머리에 좋지 못한 물건을 이게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것이 반드시 재앙을 소멸하고 병을 피하게 할 수 있는 물건이라 할 수 없음에랴! 일체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항시 말하기를 바둑은 고상하고 장기는 속된 것이라 하나, 모두가 공부를 방해하고 뜻을 타락시키는 것인데, 어찌 고상하고 속됨의 구분이 있겠는가? 오락기구는 일체 손에 대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가 연[紙鳶]을 가지고 노는 것을 엄하게 금해야 한다. 무릇 마음을 어지럽히고 학업을 잃도록 하여, 손과 발이 얼어 갈라지고 입과 눈이 비뚤어지도록 담장을 넘고 사납게 다투며 시끌벅적 요란을 피우니. 그 해로움이 매우 크다. 간혹 부형(父兄)이 실을 사주고 종이를 오려주며 자기 자제를 도와주는 이가 있는데, 어쩌면 그리도 무지한가? 나는 어릴 적부터 한 번도 연을 띄운 적이 없었고, 자제들도 본받아 연을 날리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할 만하다.…

 가난한 처지에 글을 잘 하는 자는 흔히 부귀한 집안의 자제를 위해 과문(科文)을 대신 지어 주는데, 굶주려 육신을 보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아예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크게는 하늘을 속이고 임금을 속이고 세상을 속임이요, 다음은 나의 마음을 어기고 남의 자제를 해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습속이 굳어져서 회오(悔悟)할 줄을 모르고 지내니, 그 마음 씀을 따져 본다면 이보다 더 큰 죄는 없는 것이다. …


♣해설:

 지은이 이덕무(李德懋 : 1741~1793)의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庵)ㆍ아정(雅亭)ㆍ청장관(靑莊館)ㆍ영처(嬰處)이다. 어릴 때 병약하고 빈한해 전통적인 정규 교육은 거의 받을 수 없었으나 워낙 총명하여 가학(家學)으로써 박학다식하고 고금의 기문이서(奇文異書)에도 통달하였으며, 문명을 일세에 떨쳤으나, 서자인 때문에 크게 등용되지는 못하였다. 특히 박지원(朴趾源)ㆍ홍대용(洪大容) 등 북학파 학자들과 깊이 교유하였고, 박제가ㆍ이서구ㆍ유득공과 함께 사가(四家)라 이른다. 저서에 『청장관전서』가 있다.

 이 글은 『청장관전서 』제27~29권에 있는 「사소절(士小節)」 제5 사전(士典) 5 사물(事物) 조에 나오는 글이다. 「사소절」은 사전(士典), 부의(婦儀), 동규(童規)의 3편으로 이루어진 잠계(箴戒)의 성격을 띤 교훈수필이다. 번역은 『한국고전종합 DB』를 따랐으나, 부분적으로 윤문하였음을 밝힌다.

 사소한 예절을 지키지 못한다면 큰 예절도 지키기가 어렵다. 요즈음에는 특히 소소한 예의를 무시하려는 경향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사회 곳곳에서 비례(非禮), 비리(非理)가 싹트게 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지켜야 할 예절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청장관의 ‘선비들이 지켜야 할 사소절’들을 한 번쯤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소개한다.                 

             

1) 고봉(高鳳) : 자는 문통(文通)으로 한 나라 섭현(葉縣) 사람이다. 고봉은 아내가 보리를 널고 고봉더러 닭을 보도록 하였는데, 때마침 폭우가 쏟아졌으나, 고봉은 글 읽는 일에 도취되어 보리가 떠내려간 줄도 몰랐다.

2) 오활(迂闊) : 사리에 어둡고 세상 물정을 잘 모름.

3) 형조(荊條)·산석(産席)·호두(虎頭) : 사귀를 쫓기 위해 문 위에 거는 가시 나무는 옛날의 도열(桃茢 : 복숭아 나뭇가지로 만들어 귀신을 몰아내는 데 쓰는 비)을 모방한 것이고, 산석(産席 : 아기 낳을 때 까는 자리)은 귀신이 피를 싫어하기 때문에 사용한다. 호두는 도홍경(陶弘景)이 말하기를 "범의 머리뼈는 귀신을 물리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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