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 고전수필 순례 17) 용병편(用兵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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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 고전수필 순례 17)
용병편(用兵篇)
신 흠 지음
이웅재 해설
우리나라는 일찍이 남쪽의 왜적에게 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 왜적이 칼 하나를 가지고 천 리의 땅을 밀고 들어오기를 마치 사람이 없는 듯이 했다. 들판에서 만나면 감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달아나고 성에서 만나도 지키지 못하고 흩어졌는데, 군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훈련되지 않은 군사를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또 서쪽의 오랑캐에게 곤욕을 당했다. 한 번 군사를 보냈다가 온 군사가 패몰하고 두 장수가 항복했으니 심하도다, 옛날과 똑같이 훈련을 시키지 않은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훈련되지 않은 군사를 가지고 왜적과 오랑캐의 사이에 끼였으니 백성이 어찌 곤궁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나라가 어떻게 위태롭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군사는 양남(兩南)과 서북(西北)에서 많이 뽑는데, 양남은 백제와 신라의 유민(遺民)이다. 영남의 풍속은 질박하여 침착하고 노력하여 풍요롭게 사니 잘 가르치면 넉넉히 윗사람에게 향응하는 군사가 될 것이고 호남의 풍속은 민첩하고 날래며 기변이 많으니 잘 가르치면 여유롭게 응용할 수 있는 군사가 될 것이다.
서북의 지역은 오랑캐와 접하고 있는데 고구려와 발해의 옛 땅으로, 예로부터 잘 싸운다고 이름이 났다. 갑옷을 입히지 않은 말을 타고 맨몸으로 달리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소리치며 나무 활에 싸리화살을 쏠 때마다 빗나간 것이 하나도 없으니, 이들을 가르치면 충분히 당할 수 없는 군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백제가 가르쳐서 나라가 강해졌고, 고구려가 가르쳐서 중국과 겨루었고, 신라가 가르쳐서 삼한(三韓)을 통일했다. 군사는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훈련을 시키면 강해지고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세상이 달라진다 해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군사를 국경 밖으로 출동시키지 않고도 상대방에서 대항할 수 없는 것이 여덟 가지가 있다. 재물이 천하에서 제일 많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재물이 천하에서 제일 많아도 장인(匠人)이 천하에서 제일 우수하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장인이 천하에서 제일 우수하더라도 병기가 천하에서 제일 좋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병기가 천하에서 제일 좋더라도 군사가 천하에서 제일 정예롭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군사가 천하에서 제일 정예로워도 명령이 천하에서 제일 엄하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명령이 천하에서 제일 엄하더라도 훈련이 천하에서 제일 잘 되지 않으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고, 천하를 두루 알면서도 기수(機數)에 밝지 못하면 천하를 바로잡을 수 없으니 기수에 밝다는 것은 군사를 쓰는 형세이다.”고 하였는데 진실로 훌륭한 말이다.
장차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재물ㆍ장인ㆍ병기ㆍ명령ㆍ훈련은 준비하는 도구이며 기틀과 수는 결정하는 물건이다. 안에서 계획이 결정되면 군사를 출동할 때 두려움이 없고 적의 실정에 밝으면 적을 만나도 용감하게 전진할 수 있어서 비바람처럼 행동하고 나는 새처럼 신속히 처리하므로 마치 빈 곳을 점령하고 그림자를 치듯이 단서 없이 시작하고 끝도 없이 마무리 지어 싸우기도 전에 이기게 될 것이다.
적을 이기는 방법은 비록 기수에 있으나 군사를 격려하는 방도는 상과 벌일 뿐이다. 밝은 형벌은 죽이는 일이 아니며, 밝은 상은 헛되이 남발함이 아니다. 반드시 상을 줄 만한 자에게 주고 상을 주지 말아야 할 자에게는 주지 않으면 밝은 상이고, 반드시 형벌을 주어야 할 자에게 형벌을 주고 주지 않아야 할 자에게는 형벌을 주지 않으면 밝은 형벌이다.
그러므로 상이 적어 사람들이 권장하므로 낭비되지 않는 일이며, 형벌을 적게 주어 사람들이 조심하므로 죽이는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 군사가 용맹한지 비겁한지를 묻지 않고 장수가 인재인지 아닌지를 묻지 않고 병기가 날카로운지 무딘지를 묻지 않고 재물이 넉넉한지 부족한지를 묻지 않은 채 수많은 군사를 굶주린 호랑이의 입에다 대주고 있다. 게다가 장수를 선발하는 데도 법도가 없어 군사에게 수탈을 잘 하는 자를 발탁하고 뇌물을 잘 바치는 자를 승진시키고 임금의 측근을 잘 섬긴 자를 높여 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유기(由基: 楚나라의 명궁 養由基. 그는 백 보 앞의 버들잎을 명중시켰다 한다.)처럼 활을 잘 쏘고 손빈(孫臏)ㆍ오기(吳起: 손빈, 오기 두 사람은 춘추전국시대의 저명한 병법가로서 『사기열전』에 「손자ㆍ 오기 열전」이 있다.)와 같은 지략이 있고 오확(烏獲: 전국시대의 秦나라의 용사로 천 鈞[3만 斤, 약 1.8t]의 무게를 들어 올렸다고 함)처럼 용맹하고 경기(慶忌: 오나라의 공자로 말보다도 빨라 하루에도 천리를 갔다 올 수 있다고 함)처럼 민첩하여도 감문(監門)을 지키는 한낱 병사에 지나지 않게 되는데, 그래가지고서야 능히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오랑캐가 우리에게 화친하자고 미끼를 던지고 있는데 까닭 없이 화친을 청하는 것은 모략이다. 적이 우리를 모략한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 스스로가 도모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적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똑같은 연(燕) 나라 군사이지만 악의(樂毅: 전국시대 중기 BC 3세기 전반에 燕나라 무장)가 부리면 이기고 기겁(騎劫: 전국시대 연나라의 장수로 樂毅를 대신하여 장수가 되었으나 제나라 장수 田單에게 대패하여 연나라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다.)이 대신하면 패했으며, 똑같은 조(趙) 나라 군사이지만 염파(廉頗: 진나라는 명장 염파로 인하여 곤란에 빠졌다. 이에 진의 재상 范雎가 계책을 내놓아 ‘진나라는 조나라의 장수 염파가 아닌 병법에 뛰어난 조괄을 두려워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대장을 염파에서 조괄로 교체시켰다.)가 거느리면 온전하고 조괄(趙括: 염파를 대신하여 장수가 되었으나 진나라 장수 白起에게 대패하고 활을 맞아 죽었다.)이 대신하면 죽었으니, 장수다운 장수를 얻으면 군사도 헛된 군사가 되지 않아서 그칠 때는 발을 베기라도 한 것처럼 그치고 행군할 때는 흐르는 물과 같이 저절로 흘러가는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군사는 쓰지 말아야 한다.
♣해설: 지은이는 고전수필 순례 20. ‘야언(野言) 1’에서 소개하였다. 출처는 『상촌선생집』 권40 잡저 2에 나오는 것으로,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DB를 따랐으나 부분적으로 윤문을 하였음을 밝힌다. (2010.5.23. 원고지 17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