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인물열전

경북 인물열전 (57) 기생들과의 로맨스를 많이 남긴 김인경(金仁鏡)

거북이3 2011. 3. 7. 00:36

경북 인물열전 (57)

   기생들과의 로맨스를 많이 남긴 김인경(金仁鏡)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1. 慶尙道 慶州府 人物 條]

                                                                                                                이  웅  재


  김인경(金仁鏡: ?∼1235[고종 22])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처음 이름은 양경(良鏡)이었다.

 명종 때에 문과에 차석으로 급제하여 예부낭중(禮部郎中)을 거쳐 추밀원우승선(樞密院右承宣)이 되었으며 1227년(고종 14)에는 수찬관(修撰官)으로 『명종실록』을 찬수하였다. 그 해에 동진(東眞)의 군대가 정주(定州)·장주(長州)로 쳐들어오자 지중군병마사(知中軍兵馬使)가 되어 의주(宜州: 지금의 함경남도 덕원[德源])에서 싸웠으나 대패하여 상주목사(尙州牧使)로 좌천되었다.

 최자(崔滋)가 지은 시화집인 『보한집(補閑集)』에 보면, 그가 좌천되어 가는 길에, 덕통역(德通驛)을 지나다가 시 한 구절을 벽 위에 쓰기를, “어찌 하늘을 향하여 원망을 품으랴. 귀양 와서도 오히려 고을의 수령직을 맡기셨도다. 어느 때에 영각(鈴閣: 수령이 집무하는 곳. 오늘날의 군청과 비슷)에서 황각(黃閣: 정승이 있는 집)으로 나아가서 태수의 행차가 재상의 행차로 될꼬.”라 하였다.

 어느 진사(進士) 두 사람이 덕통역을 지나다가 이 시를 보고 읊다가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어느 때 영각에서 황각으로 나아가서’라고 한 구절은 말 만듦새가 공교하지 못한 듯하다. 또 영각으로부터 황각에 오르는 것이 그 사이가 얼마나 오래인가?” 이에 다른 친구가 말하였다. “공의 시는 예언이다. 너 따위가 알 바가 못 된다.” 얼마 후에 그는 과연 정승이 되었다.

 상주목 명환(名宦) 조(條)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보이는데, 얼마 안 되어 형부상서 좌복야(左僕射)가 되더니, 한림학사에 올라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또 조충(趙沖)을 따라 글안 군사를 강동성(江東城)에서 토벌하여 공이 있었다.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영변대도호부(寧邊大都護府) 불우(佛宇) 조에 보면, 묘향산에 있는 한국 5대 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는 민족의 명찰(名刹) 보현사(普賢寺)를 읊은 「제영변보현사(題寧邊普賢寺)」시가 있는데, 그 앞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절이 헐어 다시 고치기 한두 번이 아니라고, 봄새들은 옛일을 느끼고 재잘거리네. 험한 멧부리는 사면을 에워싸 몇천 겹이냐, 법당의 반은 새로 지은 3백 칸이로구나.”

 성천도호부(成川都護府)의 제영(題詠) 조에는 졸본천(卒本川)을 읊은 다음과 같은 시도 전한다.

 “신인(神人)의 옛 고을이 몇 봄을 지냈는고. 성곽은 의연하여 학도 갔다가 오네. 경치와 풍류는 이 세상에 보던 것이 아닌데, 여기저기 가리키는 이는 누구인가. 옥비녀 미인들 모시는 술자리는 두 척 배 나란하고, 채령(綵嶺)의 신선님들 줄 지은 배에 벌여 있네….”


 그는 기생들을 꽤나 좋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몇 가지 이야기만 더 찾아보기로 한다.   먼저,『보한집』에는 김인경과 기생 백련(白蓮) 간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인주(麟州: 지금의 의주)에 백련이라는 기생이 살았다. 정숙공(貞肅公:김인경)이 일찍이 사신으로 이곳을 지나다가 백련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이별한 뒤에 김인경은 시를 붙여 읊었다.


 “북으로 흘러가는 한 조각 구름아,

 그대는 응당 대화봉(大華峰)을 지나겠지.

 봉우리에서 만약 옥정연(玉井蓮: 옥같이 맑은 샘 속의 연, 곧 백련) 만나거든

 그리움에 지쳐 파리해진 내 모습을 전해다오.”


 뒤에 병마사(兵馬使)가 되었을 때 백련이 그 시를 바치니, 공이 또 한 절구(絶句)를 지어  읊었다.


 “성 남쪽과 성 북쪽의 푸르름이여,

 이는 마치 무산(巫山)의 열 두 봉인가.

 백발이 되어 운우(雲雨: 중국에 있는 산 이름이기도 하지만 남녀의 정사를 가리키는 말)의 정은 이루지 못하는데,

 옥 같은 얼굴은 도무지 봄기운 그대로구나.”


『보한집(補閑集)』에는 이미수(李眉叟: 이인로의 字)가 용만(龍灣: 의주) 사군(使君:김인경을 가리킴)이 기생 백련을 사모한 것을 보고 희롱(戱弄)하며 읊은 시도 전해진다.


 “바람결 따스하고 꾀꼬리 소리 교태로운 나그네 길가

 울긋불긋 꽃들은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는데,

 사군(使君)은 어찌하여 화려한 봄꽃을 싫어하고,

 홀로 가을 연못에 피어난 흰 연꽃[백련]을 좋아하는가.”

 

 또한 송도(松都)에는 옥반주(玉盤珠: 옥쟁반의 구슬)라는 명기(名技)가 있었는데, 김인경이 그 기녀에게 이름을 장중주(掌中珠: 손바닥에 놓인 구슬)로 고치라고 희롱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주었다.


 “한 알 맑은 구슬 옥쟁반에 놓였으니,

 은하수가 내린 가을이슬처럼 동글동글 방울졌네.

 천번 돌고 만번 굴러 원래가 정해진 모습 없으니,

 아무러면 옮겨다가 손바닥 위에서 보는 것만 같겠는가?”


 이 시는 당시의 시인묵객들 사이에서 명작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어떤 이는 이 시가 미수(眉叟) 이인로의 작품이라고 추정하였으나 정작 이인로가 저술한 『은대집(銀臺集)』

 

에는 작자미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보한집(補閑集)』에서는 정숙공(貞肅公)의 작품일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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