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13) ‘펜(penn)의 숲속 나라’를 지나면서

거북이3 2011. 12. 4. 20:12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13. ‘펜(penn)의 .hwp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13)

‘펜(penn)의 숲속 나라’를 지나면서

                                                                                         이 웅 재

4월 4일(월) 흐린 후 비.

4:00에 기상. 5:30 출발하니,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인데, 모두 잠이 부족하여 꾸벅꾸벅 졸고들 있었다. 가이드는 “안녕히 주무세요.” 하면서 버스의 실내등마저 꺼 주더니, 40분 정도 가고 나서, “빠빠라빠빠 빠빠라빠빠” 요란스런 기상나팔 소리를 틀어준다.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하니 그제야 날이 밝기 시작하여 도로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고 나니 우측으로 게티즈버그 메모리얼 파크가 보이고,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가 나타난다.

펜실베이니아는 라틴어로 '펜(Penn)의 숲속 나라'라는 뜻이다. 오랜 옛날 영국의 이름난 부자인 귀족 ‘펜’에게 아들 하나가 있었더란다. 전통적으로 성공회를 믿는 집안인데, 아들은 퀘이커(Quaker) 교도의 친구를 사귀어 집안과 불화를 일으키게 되었다. 결국은 어르고 달래도 말을 안 듣는 아들을 그 부모는 호적에서 파 버리고 상종을 하지 않았다. 아들은 그 많은 재산도 모두 포기한 채로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따라 이리저리 부랑생활을 계속하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아버지는 죽을 때, 전 재산을 유일한 혈육인 그 아들에게 상속하였다. 아들은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다시 떠나려 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거액의 차용증을 받아놓은 서류가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왕족에게서 받은 것인데, 그 왕족에겐 당시에는 완전 무용지물인 이 펜실베이니아의 황무지 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는 이 땅을 달라고 하여 이곳에다가 이상향을 건설할 것을 꿈꾸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살지 않는 이 땅을 어떻게 이상향으로 탈바꿈시킬 수가 있을까? 그는 생각 생각 끝에 광고를 하였다. 1인당 20에이커(20acre=약 24,480평)까지는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땅을 나누어 주겠다고. 우선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어야 그의 꿈을 성취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황무지이기는 하지만 무상공여라는 광고에 금방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이곳은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인 필라델피아(Philadelphia)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것을 일찍 간파했던 인물이라고 하겠다.

이곳의 마을 이름들은 ‘-burg’(독일계 사람들의 거주지), ‘-ton’(영국계), ‘-ville’(프랑스계)라는 식의 명칭이 많아 그 선조들의 성향을 이름만 들어도 알 수가 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강을 따라 계속 북상(北上)하고 있었다. 퀘이커 교도들이 살고 있는 아미쉬(Amish) 타운을 지나간다. 시대 문명을 거부하고 옛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마을이라서 지금도 마차와 같은 교통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지만, 아직 이른 시간대라서인지 지나가는 마차는 볼 수가 없었다.

계속 평원지대만 나타나던 좌우풍경이 맨스필드를 지나면서부터는 야산의 모습이 나타난다. 날씨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앞 차창에 부딪치기 시작한다. 좌측 산에는 잔설(殘雪)이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까지는 가도 가도 넓은 들판이더니, 사정은 바뀌어 이후로는 가도 가도 끝없는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여기서는 자동차로 3~4시간 갈 수 있는 거리는 ‘요기’, 8시간 정도는 ‘조기’, 10시간 이상이라야 ‘저어기’라고 한단다. 넓은 들판이나 끝없는 산속이 계속되니 볼 것이 없다. 그저 통과지역일 뿐이다. 그 통과지역이 지겹고 또 지겹게 끝이 날 줄 모른다. 크고 넓은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교훈은 이런 데에서 얻게 되는 모양이다.

Liberty라는 동네에 도착한다. 얼마나 자유가 그리웠으면 동네 이름이 Liberty일까? 그러니까 당시로서는 Freedom까지는 언감생심이었던 모양이다.

버스는 달린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의 할 일은 가이드의 입심자랑밖엔 없다.

“관광할 때 절대로 용서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기사의 경우에는 기름 떨어지는 일이요, 가이드에게는 손님 빠뜨리고 가는 일이랍니다. 제가 신입 가이드 때의 일입니다. 관광객들은 대개 사람들의 옷만 보고 쫓아가는데, 사진 찍고 빨간 점퍼 쫓아가고, 또 사진 찍고 빨간 점퍼 쫓아가고 하다가 그만 할머니 한 분이 일행을 잃었습니다.”

동양 할머니 한 분이 울면서 방황하니까 미국 경찰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서 한 동안 애먹었단다. 결국은 할머니가 “내가 타고 온 관광빠스를 찾지 못해서 그런다.”고 한국말로 말했는데, 미국 경찰이 ‘빠스’라는 말 하나를 알아듣고 수소문해서 찾았단다. 다행히 그때 단체관광 온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링컨기념관 관광자들밖엔 없었더라나….

문제는 어느 경우에라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혹시 특이한 곳에 가 있게 되었을 때에는 30분 동안 제 자리에 가만히 있을 것이며, 그래도 연락이 안 되면 전화를 하란다. 여기저기 다닐 때에는 가족끼리, 아니면 남자끼리, 여자끼리 다닐 것을 권유한다. 한 번은 서로 다른 가족의 남자 1명과 여자 1명이 가지 말라고 한 타워에 올라갔다가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단다.

“그 두 사람, 좀 이상하더라….”로 시작해서 별별 얘기가 다 다 쏟아져 나오는데 감당하기가 힘들더란다. 실은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한 동안 다른 외국인들 틈에 섞여 지냈을 뿐인데, 그만 뻥튀기가 되더라고 했다. 그때 알게 된 사실, 여자의 질투보다 남자의 질투가 엄청 더 심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13. ‘펜(penn)의 .hwp
1.4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