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20)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1$에 팔아버린 볼트(Boldt) 성
(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20)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1$에 팔아버린 볼트(Boldt) 성
이 웅 재
천섬 중 가장 유명한 섬은 백만장자 호텔 경영자인 조지 볼트(George Boldt)가 '볼트 성'을 세운 하트 섬일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간 독일인 볼트가 젊었을 적에 필라델피아 외곽의 한 호텔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때였다. 천둥 벼락과 함께 비가 억수로 쏟아 붓던 어느 날, 그 마을 전체의 호텔방은 꽉 차 버렸는데, 어느 노부부가 방을 찾아 헤매다가 볼트가 일하는 호텔까지 찾아들게 되었다. 물론 그 호텔에도 빈 방은 없었다. 비에 홀딱 젖은 안쓰러운 모습의 노부부는 더 이상 갈 곳도 없어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그런 딱한 처지에 놓인 노부부를 본 볼트는 자신은 밤새 장부 정리할 것이 있어 잠 잘 시간이 없다면서 자기가 거처하던 방을 기꺼이 내 주어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이튿날 노부부는 아침 일찍 떠나면서, 그 따뜻한 마음씨가 너무 고마워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로 큰 호텔을 하나 지어서 주겠다는 메모를 남긴다.
그로부터 2년 후 뉴욕에 엄청나게 큰 호텔이 들어서고, 볼트에게 그 호텔의 개관식 초청 안내장이 날아온다. 지난날의 노부부에게서 온 것이지만, 긴가민가하게 여긴 볼트는 하여간 큰 호텔의 개관식인데다가 왕복 여비까지 보내온 터라서 구경이라도 할 겸 참석을 한다. 호텔은 으리으리했다. 호텔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던 볼트는 이것저것을 둘러본다. 드디어 개관식 식장에 들어선 볼트는 총지배인 자리에 ‘조지 볼트’라는 명패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한 순간 놀라지만, 아마도 자기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전의 그 노부부가 나나타서 그 자리는 바로 당신의 자리라면서 앉기를 권한다. 노부부는 바로 그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Waldorf Astoria Hotel)의 회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볼트는 자신에겐 걸맞지 않는 자리라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단, 능력은 없지만 행운은 놓치고 싶지 않으니 접시닦이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볼트는 맨 밑바닥 자리에서부터 열심히 노력하여 드디어는 룸서비스 개념을 처음으로 창안하는 데에까지 이르면서 호텔 왕에 등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름다운 용모의 회장의 딸과 결혼도 하게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1893년 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이곳 천섬으로 휴가를 오게 된다. 그 이후 아내는 너무나도 천섬을 좋아하여 여러 번 찾아오기에 이르게 되자, 볼트는 아예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마음에 드는 섬 하나를 사서 하트 모양으로 단장을 하고 그곳에 중세 유럽풍의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성(城)을 짓기 시작한다. 1900년부터 짓기 시작한 성은 4년여의 세월을 거치며 300여 명의 목수, 석공, 조각가 등이 참여하여 거의 완공되어가고 있었다. 볼트는 성이 완성되면 밸런타인데이에 태어난 아내 루이스(Louise)에게 생일 선물로 바치려고 한참 기분이 들떠 있었는데, 그만 성이 완공되기 전, 아내는 병에 걸리고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04년 그녀의 나이 42세 때였다. 볼트 성(Boldt Castle)은 그렇게 완공 6개월을 남겨놓고 미완인 채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상심한 볼트는 그 후 다시는 하트 섬을 찾지 않고 이제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성(城)이 되어버린 볼트 성을 몽땅 파괴해 버리려고 한다. 그러한 그를 주위 사람들이 간곡히 말려서 형식적인 대금 1$에 팔아치워서, 지금은 뉴욕 시가 그 운영을 맡고 있단다. 볼트 성의 모습은 얼핏 보아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성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해서 더욱이 친근한 맛이 들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처럼 따르고 있는 6층으로 이루어진 11개의 건물, 120개의 방이 있다는 이 하트 섬의 볼트 성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상혼(傷魂)한 볼트 대신 찾아들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랑의 흔적인 볼트 성은 최근에 와서는 특히 백만장자들의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그만이라고 한다. 볼트 성으로 인해 천섬은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캐나다 최고 인기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 80km나 되는 에메랄드 빛 세인트로렌스 강 위에 보석처럼 펼쳐져 있는 천여 개의 섬, 그 중에서도 이 볼트 성이 있는 하트 섬과, 캐나다와 미국 영토가 3m 정도밖에 안 되는 다리 하나로 이어져 있는 두 섬이 연출하고 있는 풍경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각양각색의 섬들이 선사하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우리 일행은 연해연방 감탄사들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런데 볼트 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내게 무척이나 낯익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작년엔가 삼성동 코엑스 악티움인가에서 공연했던 연극이 바로 이 아스토리아 호텔과 관련된 이야기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관람했기에 그리 감동적이지 못했었는데, 지금 이 천섬에 와서 그 내막을 듣고 보니 새삼스레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선창 밖으로는 함박눈이 펄펄 날리고 있어서 한껏 고양된 기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
……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그 모습
애처로이 불러도 하얀 눈만 내리네.…”
유람선 스피커에서는 CD를 틀어 놓았는지 김추자가 애잔한 목소리로 부르는 ‘눈이 내리네’라는 노래가 펄펄 날아 떨어지는 눈송이와 함께 이리저리 흩날리며 울려 퍼지고 있어서, 그 전설 같은 뾰족뾰족한 성 첨탑의 아스라한 전설 속으로 내 마음을 빨려 들어가게 하고 있었다. 볼트 성은 그렇게 동양의 한 여행객을 사로잡고 놓아주지를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