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26) Fresque 벽화와 ‘I never forget’, ‘파리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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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26)
Fresque 벽화와 ‘I never forget’, ‘파리똥’
이 웅 재
프티 샹플랭 거리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루아얄 광장(Place Royale)에는, 퀘벡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5층 건물의 창문이 없는 벽에 그려진 400년 이상 된 실물 크기의 프레스코(Fresque) 벽화가 그것이다. 그림은 주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인물화인데, 샹플랭이나 라발 주교 등 퀘벡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6명이 등장하기도 한단다. 실물 크기의 그림이라서 얼핏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구별이 잘 안 될 정도의 사실성이 강한 그림들이었다. 때문에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도 그림 속의 인물이 되어 보겠다는 생각에서인 것이다.
퀘벡의 겨울은 춥고 눈이 많아 북쪽 벽에는 창문을 내지 않고 이렇게 그림으로 꽉 채워놓아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런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이곳 말고도 몇 군데가 더 있다고 한다.
일설에는 창문을 내지 않은 것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기도 한다. 17세기 영국의 초대 총리가 귀족들에게 어떻게 하면 세금을 많이 매길 수 있을까 방법을 궁리하다가 처음에는 벽난로의 개수로 세금을 부과했는데, 집 내부를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외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창문의 개수를 세어 창문세(Window Tax)를 매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엉터리 같은 세금을 내기가 싫어서 창문을 없앤 사람들이 밋밋한 벽이 너무 단조로워 그 벽면에다가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세금이란 합리적이라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에는 하나의 좋은 예증이 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좀 억지스러운 얘기일 듯싶다.
세금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성경에서는 십일조를 얘기했다. 동양에서는 정전법(丁田法)을 따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10 정도가 적정한 과세(課稅)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난날의 과세이다.
현대에 와서는 여러 가지 사회 시설들은 물론 복지 개념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으니,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럴 능력이 없는 다른 한 사람 정도를 책임질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곧 소득의 20%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그걸 넘어서면 조세저항이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 기준으로 20.7%라고 하던가?
그런데 최근 여야를 불문하고 무상복지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돈은 어디에서 충당을 하여야 하나? 그래서 나오는 것이 부자 증세 정책이 아닐까? 일정액 이상 수입이 있는 부자들에게는 다시 다른 한 사람 몫의 1/10 정도를 더 납세하도록 하자는 것이 30% 부세의 근거가 아닐까 싶다. 옳고 그른 것, 그리고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야 위정자들의 몫일 테니까 내가 왈가왈부할 성질은 아니겠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노트르담 성당으로 갔다. 프롱트낙 주지사와 역대 퀘벡 주교들이 이 성당 지하묘지에 묻혀 있고, 캐나다 최초의 로마 가톨릭 주교인 프랑소아 라발((Francois de Laval)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 이 퀘벡으로 식민지를 건설하러 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원주민들에게 죽을 수밖에 없게 되자 프랑스의 왕에게 편지를 띄웠다. “군대 3,000명만 보내주시면 원주민들을 제압하고, 이 땅을 프랑스령으로 만들어 왕에게 바치겠나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왕은 딱 한 사람만을 보내주었단다. 그것이 바로 라발이었다. 프랑스 왕은 옳았다. 식민 지배를 하려면 먼저 종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군대는 적대감만 심어줄 뿐이다. 무력이 아닌 정신으로 지배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니겠는가? 라발은 그렇게 퀘벡을 프랑스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종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학교까지 세웠다. 그가 세운 퀘벡신학교는 지금 창립자의 이름을 따서 라발대학교가 되었다.
퀘벡의 거리를 지나다 보면 가끔 자동차 번호판에 “I never forget!”이라고 써 넣은 문구들을 볼 수가 있다. 그들이 그렇게나 갈망했던 퀘벡 주의 독립이 두 표 차이로 부결됐지만, 지금도 잊지 않고 계속 독립을 꿈꾸면서 프랑스 문화를 지키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와 같은 사고방식 때문에서일까? 이곳에서는 흔히 캐나다 국기보다 퀘벡 주기(州旗)나 프티 샹플랭을 뜻하는 깃발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 곳은 대부분 관공서라고 했다. 그 갸륵한 마음을 모르는 체할 수가 없어서 나도 마음속으로 “I never forget!”을 외쳐 보았다.
그런가 하면, 예의 바르고 멋진 ‘파리지엔’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서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 말도 있었다. 길을 가다가 어깨라도 부딪칠라치면 ‘파리똥!’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파리똥이라는 말인가, 자기가 파리똥이란 말인가? 알고 보니, 영어의 ‘Excuse me’(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에 해당하는 ‘Pardon.’이라는 말이었는데, 그들은 그 말을 입에 달고 지낸다. 십분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국 사람이 듣기에는 아무래도 ‘거시기’했다.
디지털 버스정류장 옥외광고도 눈길을 끈다. 뜬금없이 손바닥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그림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남자의 가슴 부분에 "push here"라는 카피가 새겨진 손바닥 그림이 있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그 부분을 누르면, 남자의 심장이 박동하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이것저것 구경하던 도중 나는 세계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남녀의 그림을 보고 반가워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시원스레 볼 일을 보면서 나는, 성남문화원의 남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곳을 떠올려 보았다. 거기에는 눈높이에 맞춰서 ‘한보 앞으로!’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그걸 볼 적마다, 왜 ‘일보 전진!’이나 ‘한 발 앞으로!’가 아니고 띄어쓰기도 무시한 ‘한보 앞으로!’일까를 생각하곤 했었다. 새삼스레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건 관심을 가지고 그 문구를 보게 만들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