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22) 하이힐의 유래가 멍멍이들 때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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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22)
하이힐의 유래가 멍멍이들 때문이라니…
이 웅 재
오타와에서는 눈으로 보지 못한 가슴 훈훈한 역사도 있었다. 오타와에서는 매년 5월이면 대대적인 튤립(tulip) 축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는 튤립의 본고장인 네덜란드보다도 더욱 큰, 세계 제일의 축제라고 한다. 그 축제의 유래가 듣는 이의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든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의 일이다.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유럽 전역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황족도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 그런데 마침 황태자비가 황손을 임신하여 한 병원에서 황태자를 분만하게 되었다. 문제는 네덜란드령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황실을 이어갈 수가 없다는 점이라서 고민 고민하고 있었는데, 캐나다 국회에서 분만실 하나를 네덜란드에 기증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주었단다. 황태자가 태어나는 날, 그 분만실 밖에는 당당히 네덜란드의 국기가 계양될 수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억지로 당하는 것은 치욕이지만, 스스로 행하는 것은 베풂이라는 우리 안병규 가이드의 말이 귓가를 쟁쟁하게 울린다.
캐나다의 국회는 그렇게 베풂을 실천했고, 그 베풂은 다시 베풂을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전쟁이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간 황태자는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의미로 튤립 구근 70만 송이를 보내주어서 오타와의 리도 운하 강가에 심었고, 그 이후에도 매년 구근 수십만 송이씩을 보내주어서 해마다 튤립 축제가 열린다는 것이다.
내게는 ‘튤립’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6․3사태 이전 초창기 한․일 회담 반대 데모를 하다가 머리를 다친 나는 세브란스 병원 정신외과에 입원하고 있었다. 그때 뜻밖에도 육영수 여사가 튤립 화분을 하나 들고서 문병차 다녀갔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 먼 캐나다까지 왔으니 총독 관저라도 한번 방문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하여 버스를 그리로 몰게 했다. 캐나다라는 나라는 그 행정수반이 약간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형식적으로는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국가수반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부의 수반은 연방정부의 수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면 총독은 어떠한 존재인가? 캐나다 총독은 캐나다의 왕권을 대표하고 국민의 수장으로서의 책무를 맡고 있는 자리이다. 왕권을 대표한다는 말은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을 수행하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의 여왕과 비슷하게 형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인 것이다. 말하자면 영국 여왕의 법정대리인인 셈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영국 여왕을 대신해서 외국의 귀빈을 접대한다든가 훈장을 수여하는 일 등을 관장하고 있는 직책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수상이 영국 여왕에게 추천을 해서 임명한다는 절차만 보아서도 그 성격을 짐작할 수가 있다. 임기는 5년이라고 한다.
총독관저인 리도 홀 (Rideau Hall)의 정문 앞에서 관저로 걸어 들어가는 길은 사뭇 길었다. 총독관저는 그대로 하나의 잘 가꾸어진 공원이었다. 길 양옆으로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관저 근처쯤에는 각국 수상이나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식수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케네디 대통령과 재클린 여사가 심어놓은 나무도 보였고,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이 심어놓은 나무도 눈에 띈다. 노태우 대통령의 기념식수 나무는 수액을 채취하여 마시는 고로쇠나무로 ‘물통령’다웠고, 김영삼 대통령은 철따라 변신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단풍나무를 심었고, 김대중 대통령이 심은 나무는 사철 늘 푸른 구상나무를 심었는데 가장 작았다. 처음 심은 것은 죽어서 다시 심어놓은 것이라고 하니, 역시 현해탄에서 죽었다 살아난 역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총독관저 앞에는 새빨간 재킷에 검은 승마바지, 커다란 곰털 모자를 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대 소속의 근위병 2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요즈음 여름방학 같은 때에는 대학생들의 알바도 있다고 한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광화문 앞쪽 경기도청 자리인가에 기마경찰대가 있었는데, 사람의 시야는 130゚밖에 안 되는 것에 비해서 말의 시야는 180゚가 가능하다고 하니,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기마경찰이 매우 쓸모가 있다고 하겠다. 이곳의 기마경찰은 영국의 제도에서 온 것이겠는데, 캐나다에는 이처럼 영국식 형식과 프랑스식 생활 패턴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다.
영국은 섬나라이다. 섬나라일수록 음식물은 날것 그대로를 먹어도 되거나 간단한 조리를 거쳐서 먹을 수 있는 해산물 일색이어서 맛이 별로 없다. 그런데 프랑스는 대륙에 있다. 음식 맛에서는 단연 영국을 누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캐나다의 음식은 맛있거나 아니면 맛없거나 둘 중의 하나다. 선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문학, 특히 수필 쪽에서 본다면 영국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수상록으로 대표되는 중수필적이고 합리적인 측면이 강하고, 프랑스는 널리 알려진 몽테뉴의 수상록처럼 일상적이고 감성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우리 한국인들은 격식을 중시하는 근엄한 영국신사 쪽에 가까웠을지 모르지만, 현대에 와서는 아무래도 자유분방한 감성을 중시하는 프랑스풍에 더욱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다. 애지중지 키우다가도 휴가철이면 나 몰라라 하고 애견들을 거리에 방치하는 파리지엔들, 그 멍멍이들이 아무데나 방분(放糞)해 놓은 똥덩어리를 피하기 위해 신기 시작했다는 하이힐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새침데기 우리네 숙녀들을 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2012.1.24. 원고지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