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 임종한

6살짜리의 죽음에 대한 관념

거북이3 2012. 3. 1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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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살짜리의 죽음에 대한 관념

                                                                                                                                                                  이 웅 재

 

 

1년 반 동안 외국 출장을 다녀온 사위가 식구들을 데리고 자기 아버지의 산소를 찾았다. 아직 2월이라서 날씨는 차가웠고 골짜기 골짜기마다 흰 눈이 쌓여있는 서울 근교의 공동묘지는 아주 썰렁했다. 정종과 북어포, 그리고 몇 가지의 과일 등 간단하게 차려온 음식물들을 묘소 앞에 진설하여 놓고 두 번 반의 큰절을 올렸단다.

그런데 느닷없는 6살짜리 막내의 질문.

“아빠, 왜 여기에서 절을 해?”

사위는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었다.

“이 무덤은 할아버지 산소란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께 절을 한 거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분당에 살잖아?”

“아하, 그 할아버지는 엄마의 아버지란다. 외할아버지가 되는 거지. 여기 누워 계신 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 아빠의 아버지란다.”

“그런데 왜 여기 누워 있어?”

“돌아가셨으니까.”

“어디로 돌아서 가다가 여기 와 있어?”

“그게 아니고, 죽었다는 말이야, 왜 요전에 길 가다가 비둘기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걸 봤잖아?”

“죽으면 누워있어야 되는 거야?”

“우리 종한이 잘 아네, 그래, 죽으면 꼼짝할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누워계셔야 하는 거야.”

사위는 어린 종한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쉽게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단다.

“왜 이렇게 추운 데 누워 있어? 집에 있으문 되잖아?”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과 따로 지내야 하는 거야.”

“심심하겠다, 텔레비전도 못 보고.”

아이는 무척이나 안쓰럽다는 표정을 보이더니 다시 물었다.

“왜 죽는 건데, 안 죽으면 되잖아?”

그래, 안 죽으면 되지, 그러나 안 죽을 수가 없으니까 문제인 것이다. 저 큰 땅덩어리를 가진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의 첫 번째 황제 진시황도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했던 것이 아닌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의 죽음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서 그 유명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물리적인 죽음에 대한 방책은 철저하게 대비하여 놓았지만, 늙어서 죽는 일은 만리장성 가지고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장생불로의 불사약(不死藥)을 구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심을 하였던가?

발해의 동쪽에 삼신산(三神山)이 있고, 거기에 불로초(不老草)가 있다는 전설까지도 믿어보려고 서불(徐市)이란 신하에게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 명을 딸려 보내 구해오라고 하였는데, 없는 불로초를 어찌 구할 수가 있었으랴? 전설상으로 일러오는 삼신산, 곧 봉래산(蓬萊山: 속설의 금강산), 방장산(方丈山: 속설의 지리산), 영주산(瀛洲山: 속설의 한라산)을 구석구석 뒤져서도 불로초는 구할 수가 없었고, 빈손으로 돌아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수밖에 없는 서불은 폭포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인 제주도의 정방폭포(正房瀑布)의 으슥한 바위에다가 ‘서불과차(徐市過此: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글씨를 새겨놓고는 일본으로 줄행랑을 놓았다고 하지 않던가?

선조 때의 박인로(朴仁老)의 가사 ‘선상탄(船上嘆)’에서는 바로 그 서불로 말미암아 왜(倭)가 생기게 되어 우리가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고 진시황을 원망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안 죽을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죽음에 대한 얘기는 일단락이 되는 줄 알았단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차만 타면 잠으로 굴러 떨어지는 종한이인지라 집까지는 무사히 왔다는 것이다. 집에 도착하여 잠에서 깬 종한이가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하였단다.

“왜 그래, 종한아?”

“난, 죽기 싫단 말이야. 유치원에도 가야 하구 친구하고 게임도 해야 되는데….”

딱해진 에미가 달랬다고 한다.

“걱정 마. 너는 아직 어려서 절대로 죽지 않으니까.”

“그러면 늙으면 죽는 거야?”

“그래, 늙든가 무척 아프든가 하면 죽을 수가 있지.”

“엄마가 나보다 늙었지?”

“그래. 너보다 늙었지. 그러니까 너는 걱정 안 해도 된다구.”

그 소릴 듣고 잠시 눈물을 그치는가 싶더니, 조금 후 더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그래, 넌 안 죽는다니까.”

“엄마가 나보다 늙었으니까 엄마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는 거잖아? 난 엄마 없으문 안 된단 말야.”

이거야 원, 늙어도 죽지 말라는 것이니 반가워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난감해졌다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너보다 먼저 죽지 않을게.”

그 말 한 마디에 녀석의 울음이 뚝 그쳤다고 한다.

“정말이지, 정말?”

그렇게 해서 딸내미는 손자 녀석이 늙어서 죽을 때까지 죽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손자 녀석이야말로 효자가 아닌가? 제 어멈 수명을 최소한 몇 십 년은 늘려주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얘길 들으면서 한 가지 무심코 넘어갈 수 없는 사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모르는 사이에 늙으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녀석이 저절로 인정했다는 점이었다. 6살짜리는 그렇게 사람은 늙으면 죽게 된다는 엄연한 자연법칙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그렇다. 사람은 늙으면 죽는다. 그래야 또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손자 녀석 종한이는 영원히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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