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미립

이번 감기는 우연한 감기가 아니었나 보다

거북이3 2012. 3. 2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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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감기는 우연한 감기가 아니었나 보다

                                                                                                                                              이 웅 재

 

금요일(3월 16일) 아침 온몸이 선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컨디션이 안 좋았다. 옳다구나, 감기기운이 도는 것이로구나, 일찌감치 대처를 하자. 즉시 병원엘 가서 주사도 한 대 맞고 3일분의 약 처방전을 받아 매약을 해왔다. 며칠 전 성남뉴스 대표가 만나자고 하여 찾아갔더니, 지 교수와 김 교장도 함께 와서 일식집에 가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술도 막걸리 1잔으로 끝냈다. 그리고 주식인수증을 받아가지고 일부러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영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튿날은 더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사지에 맥이 빠졌다. 기침과 가래가 심하고 콧물도 누렇게 나왔다. 오래간만에 감기다운 감기를 앓게 되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곧 회복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전에는 늘 2월 달이면 감기를 크게 앓아왔었는데, 나는 그것을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쯤으로 여기곤 했었다. 술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하루도 빼지 않고 마시게 되어 한 일주일쯤 실컷 앓으면서 알코올 중독을 사전에 차단시키기 위한 일이라 여겨왔던 것이다. 사실 그러한 현상이 없어지면서 은근히 알코올 중독을 걱정하기도 했었다.

다음날(18일)은 더욱 병세가 악화되었다. 아침부터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 허리가 끊어지는 듯, 어떤 힘이 온몸을 산산조각으로 해체하는 듯싶었다. 기침을 하면 보기에도 끔찍스레 누우런 가래가 한 뭉텅이씩 뱉어져 나왔고, 꽉 막힌 코를 풀면 팝콘 크기만 한 시커먼 코딱지가 징그럽게 휴지에 묻어 나왔다. 목은 아프고 입 안은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양 입술은 마를 대로 말라서 서로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자꾸만 나를 잡아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멍한 정신으로도 이건 분명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기운이란 기운은 모두 소진되어서 꼼짝할 수 없으면서도 나는 그 알 수 없는 힘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노라니 기력은 점점 더 탈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잠시 정신을 놓고 있으면 그 알 수 없는 힘은 나를 세차게 끌어가려 버둥대었다.

안 된다. 여기서 끌려가면 안 된다. 이유도 모르면서, 아니, 이유도 없으면서 나는 그 힘에 맞서야한다고만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허리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면 곧 예리한 칼날로 자르는 듯 섬뜩한 고통이 찾아오곤 한다. 그 와중에 팔다리마저 마음대로 움직여지질 않게 되고, 그러면 그 알 수 없는 힘은 다시 그 틈을 타서 나를 끌어가려고 한다. 왜 나를 끌어가려고 하고 있는 걸까? 버둥거리다가 그만 힘이 다해 털썩 끌리어가면서 나는 얼핏 나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지금 끌려가고 있는 것은 내 영혼인 모양이다. 이런 것을 ‘유체이탈’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러나 온전한 유체이탈도 아니다. 유체이탈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여 밝은 빛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라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유체이탈의 직전에까지만 갔었던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떨어져나가는 사지에 힘을 주고 버티면서 잠시 비몽사몽간을 헤매었던 모양이다.

“오빠가 돌아가셨대!”

함께 앓아누운 아내의 말이었다.

“으응, 그래?”

그리고 나는 말이 없더라는 것이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허리가 끊어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잠시 넋을 놓았던 모양이었다. 하루가 갔는지 이틀이 갔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하루를 기억 속에서 건져낼 수가 없었다. 하루가 간 것을 이틀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얼마나 견뎌내기 힘든 시간이었기에 하루가 이틀로 각인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튿날이라고 했다.

아침나절 조금 정신을 차린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병원엘 가봐야지.”

“그럼요. 안 가 볼 수는 없잖아요.”

나의 말과 아내의 말은 서로 어긋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점심때로 먹을 약이 떨어지니까 병원엘 다시 다녀오자는 말인데, 아내의 대답은 약간 다른 어감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물었다.

“안 가 볼 수는 없다니?”

“그렇잖아요? 아무리 아파도 오빠가 돌아가셨다는데 어떻게 안 가 볼 수가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가 돌아가셨다니?”

“당신이야말로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 어제는 철석같이 알았다고 대답해 놓구선….”

갑자기 섬뜩해졌다. 어제 그렇게도 온몸이 쑤시고 찢어지는 듯했던 아픔, 무슨 힘엔가 질질 끌려가는 듯했던 느낌이 새삼 머릿속에 핑그르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랬구나, 그랬어. 그건 손위 처남이 나를 꾀어 함께 가려고 했던 일이로구나. 왜 그랬을까? 혼자 가기가 섭섭해서였을까? 아니면, 심심하다고 여겨서였을까?

처갓집은 딸 부잣집이었다. 1남 4녀, 아내는 그 딸들 중 둘째였고. 맏딸은 나이가 많았고, 둘째 매제(妹弟)가 연령상으로 보나 가장 비슷한 또래라서 나를 선택하여 끌고 가려고 했던 것이로구나. 처남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던 것인데, 얼마나 혼자 가기가 싫어서 나를 꾀어 가려고 그랬을까?

그래서 이날은 병원 두 군데를 갔었다. 하나는 감기약 처방전을 받으러 동네 내과엘 갔고, 또 한 번은 처남이 안치되어 있는 고대안암병원엘 갔던 것이다. 거길 가서도 워낙 어제 심하게 앓았던 때문에 그냥 앉아있지를 못하고, 분향소 옆 내실에 가서 거기 놓여있는 침대에 계속 누워 있었다. 무척 힘들긴 했지만 내가 옆에 있어주어서인지 처남은 더 이상 심통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밤 11시쯤 며느리가 끌고 온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발인까지 보려고 했다가는 짜장 저승길을 함께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 감기는 우연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덕분에 일주일 이상의 단주(斷酒)도 예정대로 시행하였음은 나름대로의 소득이었다고 할 수가 있으리라. 덤도 있었다. 4kg의 다이어트 효과가 그것이었다.

(2012.3.21.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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