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1)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 밴프(Banff)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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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캐나다 문화 체험기 41)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 밴프(Banff)를 찾아서
이 웅 재
4월 16일(토). 비 약간.
8:00. 체크아웃하고 호텔에서 나와 보니 아침부터 ‘형님’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엊저녁의 비 때문에 잠자리들이 영 신통치가 않아서일까? 거지 특유의 매가리 없는 모습이 측은하였다. 선진국의 거지들을 보면 심정이 착잡하다. 넘쳐나는 달러가 지닌 힘을 마음껏 활용해보지 못하는 설움이 어떨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이다. 예전엔 그렇게들 말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거지들은 곧 죽어도 양주와 양담배 아니면 먹지도 피우지도 않는다.”고.
오늘은 밴쿠버에서 밴프(Banff)로 이동하는 날이다. 밴프는 캐나다 로키산맥 중에 있는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전 세계 세 번째의 국립공원이다. 예상 이동시간은 11시간, 혼자서 운전하기엔 무리이다 싶은 거리이지만, 도움을 줄 수 없어 안타깝고 또 미안하다.
이동하는 차 칸에서 서영이가 말한다.
“종한아, 옛날에~ 옛날에~.”
“응!”
내가 끼어들었다.
“서영아, 서영이가 ‘옛날에~ 옛날에~’라고 하는 때는 언제지?”
“…….”
이번에는 서영이 대신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서영이는 어저께도 ‘옛날에~’던데 뭘….”
그럴 것이었다. 아이들 처지에서는 ‘어저께’도 ‘옛날’일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들에겐 시간관념이 어른들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다섯 살짜리의 1년은 그의 인생 전체의 1/5, 열 살짜리에겐 1/10이 아닐 것인가? 60세에겐 1/60, 70세를 산 사람에겐 1년이라고 해 봤자 ‘전 인생의 1/7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서영아, 종한아, 어렸을 적 그 긴 시간들을 부디 소중하게 설계해 나가 다오. 앞으로 남은 너희의 미래 시간들은 점차적으로 빨리빨리 지나간단다. 이리 멈칫거리고 저리 방황할 겨를이 없다는 말이다. 인생이란 시간과의 싸움이란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차가 막힌다. 왜일까?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모두 놀러가는 차들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정도가 지나치다. 그래, 그렇구나. 오늘은 토요일,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가 이곳에서는 바로 봄방학이로구나.
오른쪽에는 ‘Accident Scene’이란 노란 팻말이 보인다. 그리고 차선 하나를 막아 놓았다. 이제까지의 추리는 모두가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주범은 바로 그 ‘Accident Scene.’ 우리들의 삶은 바로 이러한 허구적 생각에 의해 많은 부분이 좌우되고 있질 않던가? 허구적 생각. 그것이 좀더 현실을 일탈하여 자신들만의 세계에로 침잠해 들어가면 그것은 곧 ‘허구적 상상’이요, 이 허구적 상상은 바로 문학세계의 본질에 다가가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니 문학을 현실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타기할 근거는 없는 것이다. 문학이야말로 보다 있음직한 세계에로 우리를 인도해주고 있는 주재자로서의 존재가 아닐까? 문학이 있음으로 해서 가끔은 질곡과도 같은 벗어나기 힘든 현실생활로부터 충분히 있음직한 세계에로의 여행의 문을 화알짝 열어주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문학은 현실을 보다 풍성하게 살찌워주는 성스러운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 그것은 우리를 항상 설레게 만드는 일이었다.
길은 다시 뻥 뚫렸다. 우리가 가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의 길이 그만큼 자유롭게 뚫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11시간이나 계속 달려야하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한껏 자유로워지자. 편도 2차선의 길은 어쩌다 한 쪽 차선의 속도가 느려지면 또 하나의 다른 차선을 선택하여 달릴 수가 있어 좋았다.
차창 밖을 바라보니 오른쪽으로는 멀리 산, 그런데 예상 외로 눈이 있었다. 그리고 왼쪽의 풍경은 예상을 훨씬 벗어나고 있었다. 주위 환경으로 보아서는 분명 시가지나 도심지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야산이라기엔 제법 높기도 한 산의 중턱에까지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왜 그럴까? 이곳에서도 명당이라는 양택(陽宅) 풍수 관념이 작용하고 있는 까닭일까? 계속 달려야 하는 우리로서는 의심스러운 생각을 해소시킬 도리가 없었다. 좀더 지나가니 주택들은 씻은 듯 사라지고 뭉게뭉게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산 아래쪽으로는 얕지 않은 하천이라도 있는 듯싶었다. 조금 더 지나니 산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경치는 오히려 조금씩 경이로워지고 있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은 이젠 안개라고 표현하기엔 걸맞지 않았다. 그것은 구름이었다. 그 구름은 구불구불 돌면서 산을 감싸 앉았고, 산은 몇몇 개의 봉우리들만 수줍은 듯 그 구름 속으로 눈망울을 빠끔히 내어밀고 있었다. 그리고는 구름과 구름 사이로 보이는 또 한 가지의 흰 빛깔이 있었다. 그것은 눈[雪]이었다. 오늘 가는 곳은 아마도 저처럼 눈이 쌓여 있는 곳은 아닐까? 맞다, 맞아.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은 저 유명한 캐나다 로키 산맥 중에 있는 해발 1,384m의 밴프국립공원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양지 바른 산 중턱에까지 주택들이 들어차 있었던 연유를 알 것 같았다.
차는 잠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엘 들렀다. 처음 들른 곳에서는 미국 카드는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하여서 근처에 있는 다른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가득 채운 후, 그 옆에 있는 약국엘 들렀다. Food & Drugs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가 있듯이 우리나라의 웬만한 슈퍼를 능가하는 널찍한 공간에 음식물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물 24개들이 한 박스, 간단한 마른안주거리, 아이들 과자 등 간식거리, 그리고 라면 몇 봉지를 샀다. 라면은 우리나라 ‘辛’라면이었는데,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비싼 1,500원 정도였다. 하지만, 1,500원을 주고 샀으니 15,00원짜리의 가치로 대하고 먹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여행을 다닐 적에는 바로 그 여행지의 가격에 길들여져야 여행이 여행다워질 수 있는 터이니까.
(2012.3.23.원고지 1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