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百花齊放) 5(꽃다지,냉이꽃,쇠뜨기)
백화제방(百花齊放) 5(꽃다지,냉이꽃,쇠뜨기)
이 웅 재
홀씨는 아니지만, 씨앗을 달고 낙하산처럼 날아가는 깃털[관모(冠毛)]을 타고 훨훨 날아가는 민들레를 생각하며 눈길을 돌리니 초록 일색의 비교적 널찍한 탄천 둔치의 잔디밭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초록 바탕의 커다란 잔디밭에는 노랗고 하얀 무늬가 점점이 수놓아져 있었다. 노란 무늬는 꽃다지, 흰 점은 냉이꽃이었다. 예전엔 저렇게 꽃다지와 냉이꽃이 지천으로 피어날 때이면, 친정댁 부모들도 시집 간 딸네 집엘 다니러 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춘궁기라서 대접할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딸의 속만 상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꽃다지는 십자화과(十字花科=겨자과)의 두해살이풀이다. 꽃이 다닥다닥 붙어서 피어난다고 ‘꽃다지’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꽃은 너무 작아 코딱지나물이라고도 한다. 이른 봄 햇빛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노란색 꽃을 피운다. 키가 작은 풀꽃답지 않게 가지가 많으며, 잎과 줄기에는 별 모양의 짧은 털이 촘촘히 난 모양이 탐스럽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노란 꽃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서일까? 꽃말도 ‘무관심’이란다. 그래서인지 대개는 외로이 홀로 피어 있는 법 없이 무더기로 피어난다. 같은 꽃다지끼리만 어울려 피어나는 것으로도 부족하여 주로 흰색의 냉이꽃과 함께 섞이어 피어나서, 노랑 단색을 지양하고 서로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무관심한 꽃이지만, 향기도 있어서 사람들은 그 꽃다지를 뿌리째 캐서 냉이와 함께 무쳐먹기도 하고 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이뇨제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한 꽃다지의 보잘것없는 서민을 닮은 점을 취해서 민중 노래패 ‘꽃다지’가 결성되기도 했다. 김애영의 시(가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꽃다지처럼 잔잔한 감동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밤 캄캄한 창살 안에/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진정 그리움이 무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퀭한 눈 올려다본 흐린 천장에/ 흔들려 다시 피는 언덕길 꽃다지.
꽃다지와 어울리는 냉이는 꽃다지와 마찬가지로 겨자과의 두해살이풀로서, 봄나물의 대표적 주자라고 하겠다. 사투리로 흔히 ‘나생이’라고 부른다. 한국사람 치고 아마도 냉잇국 못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냉이의 향긋한 냄새는 바로 봄의 향기라 할 것이다. 열매는 속이 여러 칸으로 나뉘고 각 칸에 많은 종자가 들어있는 삭과(蒴果)인데, 하트 모양의 납작한 씨앗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마르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씨앗이 흔들리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소리를 낸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도 있을 법한데…. 꽃말은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하트 모양의 씨앗주머니와 아주 잘 어울리는 꽃말이라 하겠다.
냉이의 씨는 젖으면 끈적이는 합성물을 방출하는데, 수생곤충(水生昆蟲=水棲昆蟲)이 거기에 달라붙으면 죽고 만다. 그래서 냉이를 준식충식물이라 할 수 있다. 수생곤충이란 애벌레 시절이나 일생의 전부를 민물에서 사는 곤충들을 말하는 것으로, 하루살이, 모기의 유충, 물장군, 소금쟁이, 물방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야산을 개간하여 그대로 방치하여 두면 처음에는 꽃다지와 냉이가 그곳을 차지하고 있다가, 조금 더 세월이 지나가면 개망초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고 한다. 꽃다지와 냉이, 개망초는 토지의 유실을 막아주고 덩굴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소중한 역할을 해 내는 것이다.
잔디밭은 그렇게 꽃다지와 냉이가 온통 접수했는데, 탄천의 냇물과 산책로 사이 경사진 곳에는 쇠뜨기 천지였다. 꽃일 수 없는 쇠뜨기는 ‘그래도 나 좀 끼워 주세요.’ 하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쇠뜨기는 고사리처럼 꽃이 피지 않고 포자(홀씨)로 번식하는 양치식물(羊齒植物)이다. 그런데 이 ‘백화제방(百花齊放)’이란 글에서 끼워주는 이유는 원자폭탄이 떨어져 폐허가 되었던 일본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새싹을 틔운 식물이었다는 점에서 얼핏 꽃다지와 냉이, 그리고 개망초와 같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공로를 참작해서라고 하겠다.
쇠뜨기의 줄기는 다른 꽃나무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먼저 3~5월에 뱀 머리를 닮은 연한 갈색 줄기가 올라오는데 가지가 없다. 여기에 포자낭이 달려 있어 익으면 껍질이 터져 포자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번식을 한다. 그래서 이 줄기를 생식줄기라고 한다. 포자가 퍼지고 나면 생식줄기는 사라지고 광합성을 하는 녹색의 줄기가 나온다. 영양줄기이다. 높이는 30~40cm 정도가 된다. 생식줄기는 식용으로도 사용되며, 영양줄기는 약재로서 이용된다.
소가 잘 뜯어 먹는 풀이라고 하여 쇠뜨기라고 하는 이름을 가졌는데, 포자 잎이 모여 있는 생식줄기 끝이 뱀 머리를 닮아서 뱀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뱀밥이 쇠뜨기의 꽃인 셈이다. 생식줄기(생식경)의 모양이 붓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필두채(筆頭菜), 필두엽(筆頭葉)이라고도 불린다. 마초(馬草)라는 이름도 있는데, 서양 이름에서 호스 테일(horse tail), 곧 ‘말꼬리’라 하는 것을 보면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한 모양이다. 영양줄기의 층층이 돋은 잔가지가 말꼬리와 닮았다는 것이다. 말도 쇠뜨기를 잘 먹는다고 하니, 쇠뜨기나 마초, 말꼬리가 다 일리가 있는 명칭이라고 하겠다. 생식줄기는 속이 비어 있어서 공심초(空心草)라고도 한다. 한약명은 문형(問荊)이다.
일본에서 한때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쇠뜨기 채취를 하느라 야단법석인 적이 있었다는데, 그 약재로서의 효능을 보면 아닌 게 아니라 아주 다양한 질병에 효험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고혈압, 관절염, 당뇨, 이뇨제, 각혈(咯血), 폐결핵, 기관지염, 해소(咳嗽), 천식(喘息), 폐렴, 장출혈, 치질, 탈항(脫肛), 동맥경화증, 납 중독 등 이루 매거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너무 과신하는 일은 금물이다. 꽃말인 ‘거짓, 향상심’이 이를 경계하는 듯하다. (2012.4.29. 원고지 1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