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7([유채꽃]장다리꽃,애기똥풀)

거북이3 2012. 5. 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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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제방(百花齊放) 7([유채꽃]장다리꽃,애기똥풀)

 

                                                                                                                                                                                         이 웅 재

 

 

선 머슴애 중에는 껑충하게 키가 큰 장다리도 있었다. 50년대 중고등학생을 위한 잡지 『학원(學園)』에 연재되던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의 만화 『꺼꾸리군 장다리군』이 생각난다. 꺼꾸리는 거꾸로 자라서 키가 땅딸막한 아이의 별명이요, 장다리는 장다리처럼 키가 크다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요새말로 한다면 숏다리와 롱다리라고나 할까? 뒤에 듀엣 가수 서수남(장다리)과 하청일(꺼꾸리)에게도 그와 같은 별명을 붙여서 부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옛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을 헤집고 들어오는 꽃이 있었다. 장다리꽃이었다. 탄천 산책로에서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었다. 어쩌다 한 번씩 볼 수 있는 꽃, 노오란 그 꽃은 얼핏 보면 유채(油菜)꽃이었다.

유채꽃, 언제부터인가 제주도를 대표하는 꽃이 된 유채꽃, 아마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 치고 유채꽃을 배경으로 해서 사진 한두 번 안 찍어본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지자체들마다 서로 경쟁적으로 유채꽃 축제를 벌이기도 하지 않는가? 아, 여기서 ‘축제(祝祭)’라는 말은 일본식 말로 잘못이란다. 중앙일보, 2012.5.2자 ‘우리말 바루기’에서 배상복 기자가 말했다. 얼핏 생각해도 잘못임에 틀림없다. ‘제(祭)’는 ‘제사(祭祀)’라는 뜻이 아닌가? 즐거운 놀이가 제사가 될 수는 없다. ‘축전(祝典)’이라야 바른 말이라는 것이었다. 유채꽃이란 말도 원래 우리말로는 ‘평지꽃’이나 ‘평지나물꽃’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왜놈들이 온갖 방법으로 기름 생산을 독려하며 이 꽃으로 기름을 짜면서 ‘기름 유(油)’ 자를 써서 ‘유채(油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본 것은 유채꽃, 평지꽃은 아니었다. 그건 ‘장다리꽃’이었다. 그 둘은 구분이 잘 안 된다. 똑 같은 십자화과에 속하는 꽃으로 겉모양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십자화과란 꽃잎 4장이 십(十) 자 모양으로 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장다리꽃이란 무나 배추에서 돋아난 꽃줄기에서 피는 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밑동 부분을 보면 무나 배추의 모양이 얼추 드러날 것이므로 그것으로 유채꽃과 구별하면 될 것이다. 그 꽃줄기가 키가 멀뚝하게 커서 ‘장다리’이다. 무나 배추의 씨앗을 받기 위해서 재배하는 것이 장다리인 것이다. 가을에 파종을 하여 싹이 텄다가 겨울 추위에 시드는데, 거기에 지푸라기 등을 덮어주어서 죽지 않게 하면, 이듬해 봄에 다시 싹이 나고 그 새순에서 긴 꽃대인 장다리가 돋는다. 거기서 피는 꽃이 장다리꽃이다. 배추에는 유채꽃 비슷한 노란 십자화가 피고, 무에서는 엷은 보라색 십자화 꽃이 피어난다. 남부지방에서는 겨울에도 볼 수가 있다고 해서 ‘한채(寒菜)’라든가 ‘동초(冬草)’ 또는 ‘월동초(越冬草)’라고도 하고, ‘운대(芸薹)’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씨앗의 판매를 위하여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가도 생겨났다. 늦은 가을에 비닐하우스에 씨를 뿌렸다가 봄날 날씨가 따뜻해지면 어느 정도 자란 모종을 밭에 옮겨 심어서 꽃을 피워서 그 씨를 수확한다. 우리가 식용으로 심는 배추나 무의 경우는 꽃이 피지 않고, 따라서 씨앗을 장만할 수가 없는 것이라서, 씨앗 수확을 위해서 다른 재배방식으로 키우는 것이다.

장다리꽃이 더 있나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더 이상 장다리꽃은 보이질 않고, 대신 어떤 노랑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맑고 진한 빛깔의 애기똥풀이 물억새와 갈대 사이사이에서 내 시야를 파고들었다. 좀더 걸으면서 보니 이매교 아래쪽에는 아예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애기똥풀은 양귀비과에 속한다. 줄기를 잘라 보면 샛노란 액(液)이 나오는데, 그 샛노란 물방울이 갓난아기의 똥처럼 보인다고 하여 ‘애기똥풀’이란 이름을 얻었다. 너무 속된 이름 같기도 하지만, 한편 그지없이 귀엽고 앙증스럽고 친근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그 분비물이 젖처럼 배어나온다고 하여 ‘젖풀’이라고도 한다. 양귀비에서 나오는 즙(汁)과 같은 아편(阿片)의 효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절반 정도의 진통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그 분비물을 부스럼이나 습진, 벌레에 물린 부위 따위에 바르기도 한다. 심지어는 사마귀가 난 아이의 사마귀에다가 발라주기도 했었다. 진통 효과 이외에도 옻독을 풀어주고 기관지염, 황달이나 위궤양, 피부암 등에도 좋다고 하고, 아주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지만, 독성이 강한 풀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줄기가 가늘고 억세서 '까치다리'로도 불리는데, 꽃말은 ‘몰래 주는 사랑’이라고 한다. 가장 희생적으로 남 몰래 주는 사랑은 ‘엄마의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그 꽃말을 ‘엄마의 사랑’이라고도 한다. 애기똥풀에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전설도 있다.

하늘나라에서 살던 천사 하나가 그만 실수로 임신을 해서 할 수 없이 인간세계로 내려와서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는 마음씨 착한 부부가 사는 집에 업둥이로 두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부부는 가난했지만 아기를 애지중지 잘 키웠다. 그 아기가 백일을 맞았다. 그날 밤, 아기 엄마는 꿈속에서 천사를 만났다. 천사는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제는 아기를 데려가서 자신이 키우겠다고 했다. 꿈을 깨고 보니 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는 허탈하고 맥이 빠졌지만, 아기가 하늘나라에서 잘 살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이듬해 봄, 문 앞에 못 보던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아기 피부처럼 보드라운 꽃잎에, 아기 똥처럼 동글동글한 노란 꽃은 아기가 환생한 것 같았다. 그래서 꽃 이름을 ‘애기똥풀’이라고 지었다 고 한다.

애기똥풀로는 봉숭아처럼 손톱에 물감을 들이기도 한다. 봉숭아물을 들일 때에는 매염제(媒染劑)로 백반(白礬)을 사용해야 하지만, 애기똥풀은 매염제가 없어도 물이 잘 든다. 애기똥풀로 들인 손톱은 색다른 맛을 느끼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봉숭아물은 빨간색이지만, 애기똥풀로 들인 손톱은 노란 매니큐어가 되는 것이다. (2012.5.3. 원고지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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