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百花齊放) 14(버드나무)
백화제방(百花齊放) 14(버드나무)
이 웅 재
백양나무는 양(楊)에 해당하는 나무라고 했다. 이젠 유(柳)에 해당하는 나무를 만나 보자. 야탑천 근처의 버드나무는 유(柳)에 해당하는 나무인데 엄청 불쌍하다. 아름드리나무가 작년 8월의 태풍으로 허리가 뚝 부러진 것을 사람 키 정도만 남겨 놓고 중동을 뭉툭 잘라 놓은 나무, 그래도 아주 죽지는 않고 해가 바뀌고 나니 잔가지를 무성하게 키워놓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던가? 속성(速成) 녹화사업을 위해 가로수로 심었던 나무가 버드나무였었다. 정말이지 버드나무는 어떤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았고 또 잘 자랐다. 오죽하면 다른 가로수를 지탱해주기 위한 부목(副木)으로 사용된 나무가, 살아남기를 바라는 나무는 죽었는데도, 홀로 멀쩡하게 살아남았을까? 심지어는 거꾸로 세워준 부목의 경우마저도 살아남은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꺾꽂이가 가장 잘 되는 나무가 버드나무가 아닌가 싶다. 경성(鏡城) 기생 홍랑(洪娘)이 북도평사(北道評事)로 지내다가 한양으로 떠나는 삼당시인(三唐詩人)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을 보내면서 지은 시조에도 버드나무의 꺾꽂이가 노래되고 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자시는 窓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홍랑이 자신을 버드나무에 비유했던 것처럼 버드나무는 여성성을 지니는 나무다. 버드나무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여인의 허리는 유요(柳腰) 또는 세류요(細柳腰)라 하였고, 버들잎 같은 미인의 눈썹은 유미(柳眉) 혹은 유엽미(柳葉眉)라 하였으며, 길고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유발(柳髮)이라고 했다.
버드나무는 의약품의 원료로서도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현대의약품 중에서 만병통치의 약품이라고 불리는 아스피린(aspirin)의 원료 살리실산(salicylic acid)은 바로 버드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한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기원전 460∼377년)때부터 사용되었다는 진통 해열제, 현대에 와서는 혈전치료에도 뛰어난 효력이 있어 고혈압 약에는 거의 빠짐없이 함께 처방되는 것이 아스피린이 아니던가?
어디 그뿐으로 끝날 수가 있으랴? 요즘에는 대나무나 녹말, 심지어는 플라스틱으로도 만들지만 원조 이쑤시개는 버드나무였었다는 점도 버드나무가 얼마나 무해 유익한 나무인가를 증명해 주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최근에 와서는 마치 성형수술이나 하듯이 가로수를 비롯하여 정원이나 공원 등지에서는 버드나무를 베어버리고 보기에만 예쁜 관상수가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니, 씁쓸해지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옛날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80일 간 팽택현령(彭澤縣令)을 지내고 현(縣)을 시찰하러 온 군(郡)의 관리를 맞이하고서는, ‘술값이나 하려고 5두미(斗米)의 봉급을 탐하였더니, 별것도 아닌 놈에게 허리를 굽히라니 내 그만두고 만다.’고 벼슬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때 쓴 글이「귀거래사(歸去來辭)」다. 고향으로 돌아간 후에는 집 주위에 버드나무 5그루를 심고서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호(自號)하고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짓고 유유자적하였다.
아, 그것을 흠모했던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선생은 또 어떻게 지냈을까? 그는 경기도 광주(廣州)에 터를 잡고 살면서, 제갈공명(諸葛孔明)과 도연명을 흠모하여 뽕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지냈었다. 묘지를 찾아가 술 한 잔을 올리니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는다.
그들의 흉내를 내어 뽕나무 800그루와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집의 좌우에다 심었는데, 뽕나무는 600그루가 말라 죽고 버드나무는 한 그루가 시들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망령되게 옛사람을 본떴더니 사물마저도 같잖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제갈량에게는 4분의 3이 미치지 못하고 도연명에게는 5분의 1이 미치지 못하니, 내가 누구를 속이겠는가?”
아, 슬프도다. 그는 뽕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어라도 보았지만, 내게는 그런 것들을 심을 만한 땅뙈기 하나 없어서, 그와 같은 후회마저도 해볼 자격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한편, 천안의 능수버들에는 저절로 흥이 나는 전설도 있다.
옛날 능소(綾紹)라는 어린 딸과 함께 가난하게 살던 홀아비가 변방의 군사로 뽑혀가게 되었다. 천안삼거리에 이르러 주막에 딸을 맡겨 놓는다. 그러면서 버드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고는 떠나갔다. 능소는 곱게 자라 기생이 되었는데 미모가 뛰어나고 마음씨가 고왔다. 한번은 과거를 보러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가 능소와 하룻밤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능소는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말했고, 장원급제하여 삼남어사를 제수 받는 박현수는 다시 능소를 찾아왔고, 변방의 군사로 차출되었던 능소 아버지도 무사히 돌아와 함께 만나게 되어 잔치가 벌어지니, 흥이 절로 나서, 전에 꽂아놓았던 버드나무 지팡이가 자라서 퍼진 것을 보고, ‘천안삼거리 흥∼ 능소야 버들은 흥’ 하고 춤을 추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 ‘능소버들’이 음이 조금 변하여 ‘능수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버드나무의 꽃말이 ‘솔직’이라는 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전설이라 하겠다.
한편,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전설도 있다. 장군이 무과에 급제할 때의 이야기다. 말을 쏜살같이 몰아 1등으로 질주하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심히 다친다. 장군은 말을 조심조심 몰아 길가에 있는 나무로 다가가 나무줄기를 꺾어 그 껍질을 벗겨 다친 다리에 칭칭 동여매고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여 결국 장원급제하였다고 한다. 이때 사용했던 나무가 버드나무였다는 것이니, 이순신 장군이 언제 히포크라테스와 교유하여 그 비방(秘方)을 알고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2012.5.26. 원고지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