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16(선인장)

거북이3 2012. 6. 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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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제방(百花齊放) 16(선인장)

 

                                                                                                                                                                                        이 웅 재

5월 3일. 한동안 탄천 산책로에 있는 꽃나무에만 관심을 보였더니, 섭섭했나? 눈이 잘 가지 않는 베란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선인장 두 종류 네 화분에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꽃이 피었을 때는 예쁘지만, 화분에 심겨져 있는 모습 자체는 별로인 게발선인장과 공작선인장이라서 괄시를 받는 놈들인데, 그래도 해마다 멋진 꽃을 피워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선인장 하면 일반적으로 사막에서 자생하던 식물이라는 관념이 강해서 통상 햇빛을 좋아하고 물도 별로 안 주어도 되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들이 키우기에 제격이라고들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우리 집 앞 베란다를 가득 채운 꽃나무들을 비교적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동일한 환경을 조성시켜 주고 있다. 여름에는 1주일에 두 번, 겨울이면 1주일에 한 번씩만 물을 주고 거름은 1년에 한 번 정도 주는 둥 마는 둥이다. 그리고는 화분갈이도 거의 안 해 준다. 주인의 성격을 따라오라는 일방통행식 관리 방법인데도 용케들 잘 따라준다. 그러니까 선인장도 물론 겨울과 여름에 따라 1번 또는 2번씩 물을 주는데도 뿌리가 썩는 일 없이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꽃을 피운 화분들은 자리 배열에서 특전을 누릴 수가 있다. 바로 거실에서 잘 내다보이는 곳을 배정받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특전을 누리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꽃들이 철따라 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선인장의 종류는 무척이나 많다. 세계적으로 2,3천여 종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변종(變種)은 물론 품종(品種: 인위적으로 개량된 종)도 다양하게 개발이 되어 아기자기한 완상용 미니 선인장들도 허다하지만, 나는 그런 종류는 키워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선인장은 제주도 한림읍 월령리의 손바닥선인장(부채선인장)뿐이란다. ‘신선의 손바닥’이라는 뜻에 부합하는 모양새의 선인장은 바로 이 손바닥선인장이겠는데, 그놈은 나도 키워 보았다. 부스럼이나 종기, 타박상 등에 효험이 좋은 약재가 되기에 그런대로 애써 키워 왔었는데, 어느 겨울에 그만 얼어죽고 말았던 것이다. 꽃도 한 번 피워보지 못하고 말이다. 제주도에 갔을 때 옛적 인연을 생각해서 월령리엘 들러보았더니, 오호, 애재라, 꽃은 보지 못하고 ‘백년초(百年草)’라고 하는 열매만 보았다. 이 제주도의 손바닥선인장은 2001년 9월 천연기념물 제 429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손바닥선인장과 함께 동사한 선인장으로는 나뭇잎선인장에 속하는 꽃기린도 있다. 줄기에는 가시가 돋아 있고 나뭇잎도 달려 있으며 자잘한 꽃을 피우는 선인장 말이다. 신혼 초부터 보살펴 오던 놈이었는데, 그만 분당으로 오면서 제대로 관리를 해주지 못한 때문이다. 동사한 두 선인장에게 이참에 고백한다. ‘아수불살(我雖不殺) 손바닥선인장과 꽃기린이나(내 비록 ~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손바닥선인장과 꽃기린이 유아이사(由我而死: ~이 나로 말미암아 죽었도다.)’

지금 꽃을 피우고 있는 게발선인장은 편평한 모양의 잎처럼 생긴 줄기가 마치 게발처럼 마디를 이루면서 자라며 가시가 없는 선인장인데, 비슷한 종류로 가재발선인장도 있지만 요즈음에는 새로운 품종들이 많이 개발되는 바람에 엇비슷한 모양새의 것들이 많이 나와서 서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공작선인장은 공작의 깃털모양으로 줄기가 길고 평평한 모양으로 자라며 딱딱하지 않으면서 가늘고 작은 가시가 있어, 가시가 있다는 느낌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선인장이다. 그가 피워내고 있는 빨간 꽃은 무척이나 화려한 모습이지만, 가인박명이라고 했던가, 꽃이 오래 가지 못하는 흠이 있다.

같은 공작선인장 중에는 하얀 꽃을 피우는 놈도 있어서 그 이름을 ‘월하미인(月下美人)’이라 한다는데, 한 번도 키워보지 못하여 섭섭하다. 적당하게 밝은 달밤에 ‘월하미인(月下美人)’을 앞에 가져다 놓고, 화분 사이사이에 있는 과실주 항아리 중에서 오디술이나 복분자주 항아리를 끄집어내어 혼자서 주거니잣커니 하면 그 기분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선인장 진화의 막바지에 생겨난 기둥선인장도 한 식구로 지내본 적이 없다. 기둥선인장은 말 그대로 둥근 기둥모양으로 자라는 선인장이다. 선인장들은 대체로 그 잎이 퇴화되어 가시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수분의 손실이 최소화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다. 더구나 다육(多肉)구조로 되어 있어 그곳에 충분히 수분을 저장할 수 있어서 물을 너무 자주 주면 뿌리가 썩어 죽는 수가 많다. 생명력은 끈질긴 편이라서 줄기의 한 쪽을 뚝 따다가 심어놓아도 쉽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다.

대부분의 선인장은 그 수명이 수백 년 이상이다. 완상용으로 가꾸는 작은 선인장들도 보통 수십 년 정도는 너끈히 살아갈 수가 있으니, 물만 많이 주지 않으면 누구나 쉽게 가꿀 수 있는 식물이다.

온갖 종류의 선인장이 전 국토에 자라고 있는 멕시코의 국장(國章)에는 선인장 무늬가 있다. “선인장이 많은 곳에 나라를 세우라”는 아스떼까(Azteca)의 전설에 따라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앙증스런 콩알만 한 놈에서부터 30m가 넘는 거대한 모습의 선인장 등 무려 2000여 종의 선인장들이 각가지 꽃을 피우고 있을 멕시코가 보고 싶지만, 당분간은 참아야 한다. 작년만 해도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서 터키까지 다녀왔는데, 과욕은 금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선인장의 꽃말이 ‘정열, 열정’이라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분수를 지켜야 할 듯해서다.

한때 선인장이 전자파 차단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인기였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TV나 컴퓨터 모니터 위나 옆에 예쁜 선인장을 놓아두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런데 전자파는 직진성을 지니기에 TV나 컴퓨터 모니터와 사용자 사이에 놓아두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단다. 그저 전자파를 발생하는 기기 옆에 놓아두고, ‘전자파를 흡수해 준단다.’ 하는 생각을 반복 사용하여 자기최면 속에 빠져들면,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은 아닐까?

신선의 손바닥 같은 선인장을 가까이 두고 사랑하면서, 신선생활을 꿈꾸어 보면서 나는 오늘 하루도 살아가고 있다. (2012.6.10. 원고지 1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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