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22(쥐똥나무)

거북이3 2012. 8. 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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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제방(百花齊放) 22(쥐똥나무)

                                                                                                                                                             이 웅 재

5월 10일. 탄천을 산책하고 있노라니 어디서 향긋한 냄새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코끝을 간질인다. 라일락 향기와 비슷했다. 탄천 변에서는 라일락을 본 적이 없는데, 무슨 꽃의 향기일까? 궁금해 하며 좀더 걷다 보니, 아하,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떨기나무에서 피어나는 향기였다. 떨기나무라고 하면 보통 사람의 키보다 작은 나무로 알고들 있지만, 가끔은 이렇게 사람보다 큰 놈도 있었다.

무슨 나무일까? 얼핏 많이 보던 나무 같았으나 쉽게 나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동안을 그 감미로운 향기에 취해 있다가 문득 떠올린 이름, 그것은 ‘쥐똥나무’였다. 언젠가 사람 이름에  정(楨)자 쓰인 것이 있기에 아마도 ‘나무이름 정’ 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슨 나무를 가리킬까 하여 한자사전을 찾아본 적이 있다. 자전(字典)의 풀이는 ‘단단한 나무 정, 쥐똥나무 정’이라는 훈(訓)으로 풀이되어 있었다.

독립수로 자란 쥐똥나무를 보지 못하여 그저 여리고 약한 나무로만 알았는데, 나무의 성질은 결이 거의 없이 단단하여 도장이나 지팡이를 만들기도 한단다. 그러고 보니 쥐똥나무가 물푸레나뭇과에 속한다는 점도 납득이 되었다. 물푸레나무로는 야구방망이 등을 만든다고 하니, ‘단단한 나무 정’이라는 훈이 쉽게 이해가 되었다. 나무의 성질이 단단해서일까? 꽃말도 ‘강인한 마음’이라고 했다.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사연도 듣고 보면 단단한 마음가짐을 다짐한 나무라는 점을 잘 알게 해 주고 있었다.

첩첩산중 어느 마을에 아주 가난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하나 살았단다. 어느 날 산에서 내려와 대궐 같은 집을 지나게 되었다. 하도 큰 집이라 담장너머로 둘레둘레 살피면서 걷는데 고깃국에 하얀 쌀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맨날 푸르죽죽한 나물죽에 보리쌀이라도 섞이게 되면 목구멍이 즐거웠던 그 사람은 하얀 쌀밥을 보니 눈이 뒤집혀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 얻어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마냥 부잣집 담장에 붙어서 목구멍에 침만 삼키다가 돌아왔단다. 그날 이후 쌀밥만 눈에 삼삼하여 쌀밥쌀밥 하다가 죽고 말았다고 한다. 한평생 쌀 한 톨 먹어 보지 못하고 죽으면서 다음 생애에는 배곯지 않는 중생으로 태어나길 지극정성 소원했더란다.

그런데 하필이면 쥐로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손쉽게 쌀로 배를 불릴 수 있는 중생은, 애써서 노력해야 성취할 수 있는 부자보다는, 이집 저집 곳간 드나들며 쌀을 훔쳐 먹을 수 있는 쥐가 더 손쉬운 존재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디 사람들이 제 식량 축 내는 쥐를 그냥 둘 성싶은가? 결국은 쌀 도둑 생쥐는 제명대로 살지를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죽고 나서야 이곳저곳을 누비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일도 하지 않고 남이 애써서 장만해 놓은 쌀을 도둑질한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더란다. 크게 뉘우친 쥐는 죽기 전 쌀 훔쳐 먹고 싸질러놓은 똥을 들고 사람들 사는 울타리 나무로 서서 참회를 하기 시작을 했단다. 흰 쌀밥 같은 향기로운 꽃을 피우지만, 스스로 쥐똥 같은 작고 동그란 열매를 달고 서 있어서 나무이름도 쥐똥나무로 불리게 되었단다. 쥐똥나무의 사연은 그렇게 참회적이고, 그 흔들림 없는 참회의 굳건하고 곧은[貞] 마음이 바로 어떤 나무보다도 단단한 나무[楨]가 되었고, 꽃말마저도 ‘강인한 마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황칠네 http://cafe.daum.net/dlaandnd에서 인용하되 약간 변형하였음]

쥐똥나무는 내한성(耐寒性)과 내 공해성(耐公害性)이 강한데다가 토양도 비교적 가리지 않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아무데나 심어도 잘 자란다. 최근에는 개인의 집이나 공공건물에서는 물론, 특히 가로수와 가로수의 사이에 있는 차도와 보도를 구분해주는 쓰임새로 심어져 있은 것을 자주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보기 좋게 전체적으로 전지를 해 준 것까지는 좋은데, 단단한 나무로서의 수성(樹性)을 무시하고 너무 짧게 전지를 해 주다 보니 제대로 가지를 펴지도 못하고 수분을 빨아올려 저장할 수도 없게 되어 볼품없이 뼈대만 남아 있는 모습으로 자라거나 말라 죽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뭇가지에 백랍(白蠟; 깍지벌레)이 집을 짓기 때문에 수랍수(水蠟樹; 백랍=수랍)라고 하는데, 때문에 가끔 소독약을 뿌려줄 필요가 있으며, 한방에서는 그 열매를 수랍과(水蠟果)라고 하며, 남성의 정력에 좋다고 하여 남정목(男貞木)이라고도 한다. 상대되는 나무로는 여정목(女貞木)이라고 하는 광나무가 있다. 이름은 서로 상반되지만, 둘 다 같은 약효를 지니고 있다. 약효는 야생으로 자란 것이어야 좋다. 광나무는 쥐똥나무의 부드러운 잎에 비하여 잎이 단단하며 반질반질한 것이 광(光)이 난다고 해서 광나무이다. 쥐똥나무와 가장 큰 차이점은 상록수(常綠樹)라는 점이다.

쥐똥나무는 한국과 일본이 원산이라서 특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여름 밤 시골에서는 이 나무가 있는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그 나무의 향기를 모기들이 아주 좋아하여서 모기가 많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얼마간의 헌혈을 할 생각이 있는, 쥐똥나무와 같은 참회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즐겨 찾아도 좋겠지만 말이다. 북한에서는 이 나무를 조금은 점잖게 표현한 검정콩나무라고 부른단다.

10월쯤 되었을까? 인적이 드문 길가였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수라 할 수 있는 쥐똥나무 울타리에서 열심히 그 열매를 따는 여인들이 있기에 그 열매가 어디에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여인들은 그 물음에 대해서는 우물쭈물 “남자들에게 좋대요.” 하고는 열심히 딴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 여인 왈, “열매로 소주를 담가, 서늘한 곳에서 예닐곱 달 저장했다가 하루 한두 번씩 소주잔으로 마시면 남정네들에게 아주 좋은 약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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