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연암문학상 타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북이3 2012. 8. 18.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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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문학상 타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렇게는 말 못해』를 잘 읽었습니다. 22회 수필문학 하계 세미나에 참석을 하지 못하여서 연암문학상을 타신 것도 모르고 지낸 죄로 『그렇게는 말 못해』를 표지에서부터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었습니다. 아마 최근에 이처럼 수필집 한 권을 읽은 것은 처음이지 싶습니다. 물론 오 선생님의 남다른 필력(筆力) 덕분이지요. 아무리 잘 읽어보려고 해도, 작품의 내용이 어설프다면 중도에 책장을 덮어버릴 수밖에는 없지 않던가요?

첫 작품 ‘돌아간다’에서는 끝 대목이 저를 놓아주지 않더군요.

“치매, 분명히 멀리 돌아가는 길인 듯싶다. 나는 택시를 타고 싶다. 그런 행운의 반열에 들고 싶다. 그나저나 지금 어느 모퉁이쯤을 돌아가고 있는 중일까?”

일상생활에서도 선뜻 택시를 잡아타지 못하는 구세대 사람들, 우리는 늘 버스로 지하철로 돌아가고만 있지 않던가요? 우리 지공(지하철 공짜)세대들은 택시의 기본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던가요?

‘D데이’

“혼인날을 받아놓고 가슴 설레며 날짜를 세는 젊은이들은 세월 가는 것이 기쁘고 기다려지겠지만 노년에게는 하루하루가 서럽고 빠른 세월이 한없이 밉기만 하다. 언제인지 모르나 분명 가까이에 와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을 저승사자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이 글은 책의 말미에 덧붙는 주례사 평론이 아니라서, 하고 싶은 말 좀 다 하려고 합니다. ‘D데이’, 제목에서부터 냄새가 납니다. ‘D데이’, 젊은이가 썼다면 ‘D Day’라고 썼을 것이지요. 그냥 ‘디데이’는 이상해서 기껏 쓴다는 것이 ‘D데이’였겠지요? ‘D’자 하나도 한영 변형 키를 한 번 누르고 써야 하는데, 거기에다가 ‘Day’까지 쓰려면, 익숙해진 한글이 아니라서 귀찮은 것이지요. 늙은 티 좀 고만 냈으면 좋겠습니다.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것이, ① 손자, 손녀 얘기로 은근히 젊음을 그리워하는 얘기 ②90노모의 뒤치다꺼리를 비롯한 늙은 티내기 ③그리고 자연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씨였습니다. ‘자연’ 속에는 인생사의 ‘순리’도 포함됩니다. ①②번, 이것은 물론 ‘작정하고 흠집 내기’니까 노여워하지는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대상에 접근하는 면모가 그렇다는 얘기지 내용이야 흠 잡을 데가 없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이 글은 체계적, 논리적인 글이 아닙니다. 이 글은 ‘隨筆’ 곧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쓴 글입니다. 전체적인 글 자체가 작품집의 게재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는 점을 보아도 그 점은 이해가 가리라 여겨집니다. ‘아가에게’를 보며 말을 해 보겠습니다.

“아가야, 건강하고 손톱 하나까지도 온전히 잘생겨 주어서 고맙다. 잘 자라서 이 나라의 동량이 되어다오. 꼭 있어야 될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어느 자리에든 없으면 기다려지는 사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 부모에게 면류관이 되는 사람, 빛을 발하는 사람, 은은한 향훈을 지닌 멋진 사람으로 살아주어야 한다.”에서, “아가야~되어다오.”까지만을 빼고 나면, 그대로 오 선생님께서 지향했던 삶이요, 성취하신 삶이요, 앞으로도 계속 이루고 싶은 삶을 나열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훌륭한 삶을 살아오신 발자취가 은연중에 “아가야~되어다오.”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보인다는 말입니다.

‘회전문’을 보면, 좀더 명확해지지요.

“회전문이든 에스컬레이터든 이제 거의 무의식적으로 드나들고 오르내리며 잘 이용한다. 적절한 때 지극히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 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상사에서 끼어들 때와 아닐 때를 분별할 줄 알게 된 것과 이 적절한 때를 체득하게 된 때가 비슷하게 정비례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리를 떠야 할지 더 있어야 할지를 이제 조금 감은 잡은 것 같다.”

세상사에서 끼어들 때와 아닐 때를 분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범상한 사람으로서는 이르기 힘든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진정으로 존경스러운 삶을 살고 계십니다.

그런 분께서도 가끔은 ‘황후병’을 앓고 남편을 미워하시기도 했네요.

“행주를 짜야 밥상도 훔치니 왼손만으로 안 되고 빨래 하나를 널어도 양손을 써야 하니 황후 아닌 여염집 아낙에게 붙은 엄지손가락은 좀체 쉴 틈을 얻기 힘들다. 일에 묻혀 사는 신세가 가엾고 속상해진다. 순간 엄청나게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1백만 원짜리 가정부를 두고 살았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텐데 시집 같은 것 안 왔으면 이런 병 안 걸렸을 텐데 싶어 심통이 나기 시작한다. 남편이 공연히 미워지고 나를 망쳐 놓기라고 한 것처럼 원망스럽다.”

‘1백만 원짜리 가정부를 두고 살았으면’이라는 단서는 아무데나 붙이나요? 진짜 그렇게 하려고 했으면, 그 돈 그냥 내게 달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을까? 그런 게 우리나라의 평균 아내라고 하던데…. ‘황후병’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만 앓고 마는 이상한 병이라고만 느껴지는 것은 웬 일일까요?

‘남겨질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은 글 쓰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 가지고 있는 소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강산이 바뀌는 것을 많이 보지는 못할 터이니 마지막 고비라는 생각으로 정말 남겨질 글을 쓰고 싶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아니라 땅을 굳건히 밟고 서서 글을 써 보리라.” 지금까지 쓰신 글도 주옥 같은 명품들입니다. 그런데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쓰시는 ‘남겨질 글’, 앞으로 더욱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라산을 꼭 걸어올라 보겠다고 다짐해보지만 하룻밤 겨우 자고 회의에 끌려 다니다 가는 출장길이 대부분이어서 제주를 또 찾아야 할 명분의 끈 하나를 항상 남겨두고 사는 셈이다.”(‘제주를 생각한다’에서)

그렇습니다. 명분 하나쯤 남겨두어야지요. 저도 해마다 학생들 데리고 제주도엘 가도 한라산 올라갈 일이 없어서, 작심하고 마음에 맞는 몇 명이 작당을 해 가지고서야 ‘한 번 구경 오십시오’(1,950m)의 한라산엘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아주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작당’을 해 보시지요.

“고진은 길고 감래는 짧더라구, 나도 안다구요.”(‘정비례의 행운’에서)

7살짜리 손자의 말이 명문입니다. 시간의 길이를 단순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번 올림픽 때 신아람을 통해서 ‘1초’도 굉장히 긴 시간이라는 점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사격이나 양궁의 경기를 지켜보던 일을 생각해 보아도 1초는 굉장히 긴 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과녁을 향해 열심히 조준하고 숨을 멈추고 방아쇠나 활시위를 당길 때, 선수는 물론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시간은 멈춰 있지를 않던가요? 그런 시간을 거쳐서 금메달을 땄을 때도, 정작 시상대에 올라가 있는 시간은 별로 길지가 않게 느껴지고는 했지요.

“사흘이 멀다 하고 보는 아이들인데 명절에 자러 왔다고 이렇게 감격하고 있다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함께 있어 준다는 것, 관심을 갖고 배려해 준다는 것, 그것이 이토록 흐뭇하고 좋은 일인 것을 왜 노모는 계신다는 자체가 머리를 무겁게 한단 말인가? 효와 불효는 백지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를 일이다.”(‘함께 있다는 것이’에서)

함께 있어 준다는 것,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건 서로가 좋아하는 사이일 때의 일일 것입니다. 꼴도 보기 싫은 밉상이 함께 있어주려고 한다면 그것처럼 짜증나는 일이 또 있을까요? 백지 한 장 차이는 상황일 뿐입니다. 상황에 대한 느낌은 천양지차인 셈이지요. 백지 한 장 차이가 천양지차로 되는 것, 그것이 우리네의 삶이 아닐까요?

“원시인이 500일쯤 걸려야 왔을 거리를 5시간에 오는 세상에, 찜질 하다 덴 자리에 치약을 약이라고 펴 바른 한심한 아낙이 안전한 착륙을 빌고 있다. 그것은 사실 대단한 행운임을 알고 있기에 말이다. 첨단과 미개의 악수는 기대지 못해 꼿꼿해진 등이 대신 설명해주며 중국을 진하게 기억시키고 있다.”(‘첨단과 미개’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중국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길거리에서의 무질서를 비웃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학생들을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무시하지 말아라. 비웃지 말아라. 이들이 머지않아 우리를 따돌리려 들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때 우리나라가 짝퉁의 나라였지요. 그때는 미제(美製)를 ‘메이드제’라고 하며 최고로 떠받들었습니다. 지금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날개를 달았지요. 중국이 짝퉁의 나라로 손가락질을 받았었지요. 그러나 요사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어떻습니까?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요새 ‘메이드 인 차이나’를 대신하는 것은 ‘메이드 인 베트남’이나 ‘메이드 인 인디아’고 바뀌었지요. 얼마 안 있으면 그 ‘메이드 인 베트남’도 대우를 받게 될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세상은 눈알이 돌아갈 정도로 빨리 변화되고 있습니다. ‘첨단과 미개’가 손을 잡았으면, 그 미개는 곧 첨단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나로호’ 발사에 실패했는데, 중국은 달 탐사 위성인 ‘창어[嫦娥] 2호’를 성공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서남공정, 동북공정은 또 어떻고요? 중국은 정말 ‘진하게 기억’해야 될 나라입니다.

“어머니날 하루를 꼴 못 보는 아버지의 편견이 있는 한,”(‘어버이날 유감’에서)

저도 ‘어버이날’은 유감입니다. 그냥 ‘어머니날’로 두었어야 할 날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편 가르기를 하여서는 안 될 일이라 느끼는 것입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빠를 부탁해”라는 작품을 쓴다면, 그만한 인기를 얻을까요? 엄마는 엄마, 아빠는 아빠이지요. 그것을 서로 대비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부주의로 화상을 입었다.…욕심과 무식이 악수를 했으니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낭패였다.”(‘순리’에서)

‘첨단과 미개’의 악수처럼 ‘욕심과 무식’의 악수도 새로운 방향을 열어줄 수 있을 듯싶네요. 비커에 담겨진 변온 동물인 개구리가 밑에서 알코올램프로 서서히 열을 가해 주면 밖으로 튀어 나가지 못하고 비커 안에서 그대로 삶아져서 죽는다지 않아요? 요즈음 최대 이슈로 떠오르는 공해 문제가 그런 데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는 않을는지요.

“전통을 지키는 것은 귀중하고 좋은 일이다. 합리적으로 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이 둘의 가치를 조화롭게 잘 지켜 나가는 것이 삶의 질을 진정으로 높이는 일이다. 음력설 쇠기가 반드시 전통 살리기의 첩경일까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시점이다.”(‘신정 쇠기’에서)

글쎄요. 저는 오 선생님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귀중하고 좋은 일이다. 합리적으로 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라는 말마따나 두 가지를 다 지키면 될 것 같은데요. 노는 날도 더 많아지고. 우리 민족의 휴일, 과거 조선조 때보다 훨씬 줄었다고요. ‘삶의 질’을 아무리 외치면 무엇합니까? 일의 노예가 되어 있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휴일이 보다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식목일도 부활시키고, 한글날도 부활시키고, 학생의 날도 부활시키고…. 더 없나요?

“예약실을 찾아가 알아본 결과 친구네 결혼식은 다음주 5시인 것을 오늘로 착각하고 찾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결혼식 장소를 엉뚱한 곳으로 착각해서 헛걸음을 하더니 이번에는 날짜를 잘못 기억했으니 할머니 기억력은 70쯤 되는 것 같다는 일곱 살짜리 손자의 비아냥거림이 헛말은 아닌 것 같다.”(‘생각하기 나름’에서)

사람은 누구나 착각할 수 있답니다. 아니, 착각을 자주 하는 사람이 천재일 수 있다는군요. 그 착각 때문에 엉뚱한 실험을 성공으로 이끈 많은 얘기들이 있지 않습니까? 착각, 때에 따라서는 감미로울 수도 있고, 용기를 선사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재벌이라는 착각도 한 번쯤은 해 보고 싶고, 내가 유명 연예인이라는 착각도 때에 따라서는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요?

“남편이 술병을 들고 들어온다. 소주병을 미워하지도 못하면서 입에 붙은 핀잔 한마디 쏘아본다. 아예 그것하고 살라고. 술병을 사랑할 수는 없으니 그 쪽에는 계속 미움의 안경을 쓰되 들고 오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안경을 써야 하겠지?”(‘좋은 안경’에서)

요즘 저는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반 년쯤 못 마시고 지냅니다. 왜요? 건강 때문이지요. 새해 들어 정초부터 다리를 다치더니, 천당까지는 못 가보고 오백 당쯤 되는 곳엘 다녀오는 독감으로 고생을 하고, 요즈음에는 그놈의 대상포진 때문에 술은 입에도 못 댄답니다. 마셨다 하면 발진이 되었던 곳에 열이 나고 아파서요. 이러다가는 술을 끊게 되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미리 구호도 바꾸어 놓았지요.

“술은 인류의 적이다. 마셔서 없애자!”에서, “술은 인류의 적이다. 가급적 마시지 말자!”로요. 아직은 ‘가급적’이란 말을 사용하기로 했답니다. 그게 언제 ‘절대로’로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게 ‘절대로’로 바뀌어지면, 인생 종 치는 것이지요.

“염치없는 일이지만 제발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내가 좋다고 할 때까지만, 그만큼만 살다 갔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게 곱게 갔으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그만큼만 살다 갔으면’에서)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으신가요? ‘누구 한 사람이라도’가 아니라, ‘내가 생각할 때’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 같은데요. ‘내가 생각할 때, 아, 이 정도만 살았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때에 가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싶은데요.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가 케네디 대통령과 나란히 알링턴에 묻히던 날 공연히 서성이며 마음을 잡을 길 없었던 일이 생각난다. … 오나시스라는 생소한 글자들을 그의 이름 가운데 끼워 넣기까지 했던 여인 재클린, 그가 개인도 아닌 전임 대통령 부인의 자격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다니 꿈같은 이야기였다.”(‘법도’에서)

처음에 오나시스의 부인이었다가 뒤에 대통령의 부인이 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어떤 면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법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자신도 한국의 남성인 때문일까요? 시집가면 자신의 성(姓)마저도 빼앗아가는 서양의 풍속을 우리는 너무나 선망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온 집안의 경제권을 혼자 가지고서 ‘안방’을 차지하고 지내던 서슬이 퍼렇던 마님의 자리는 왜들 ‘모르쇠’로 일관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권리는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요즈음의 ‘삼식이’들의 비애는 왜들 애써 외면하는지도 역시 모르겠습니다. 임금은 그 어머니나 아내에게서 자유로웠던가요? 동전에도 앞뒤가 있습니다. 너무 한 쪽만 강조하는 것은 균형 잡힌 사고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요새 웬만한 음식점에 가 보면 남자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힘든 형편입니다. 웬만한 여행지엘 가 보아도 그렇습니다. 여성들이 힘든 삶을 살아온 것을 눈 감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편 가르기는 남성, 여성 어느 쪽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서 해 보는 소리일 뿐입니다.

“요즘에는 아예 식품점마다 떡국 떡을 조금씩 포장해서 팔고 있으니 가래떡을 뽑아다 쓰는 일이 옛 풍습으로 묻혀가는 입장이다. 한과를 만들어 본 것은 아주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지만 이제는 사다 쓰는 일도 점점 줄어든 형편이다.”(‘내년엘랑 가래떡을’에서)

글쎄, 그렇게들 미화합니다. 한과를 만들던 전통이 사라졌다고 아쉬워들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금도 집에서 가래떡을 만들고 한과를 만들라고 한다면, 과연 전통을 잘 지키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할까요? 분업화된 시대에는 한과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혹시라도 한과까지 집에서 만들라고 호통을 치는 남편이 있다면 그 남편,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여간 궁금한 일이 아닙니다.

“제주도 귀양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렀을 때 저것도 글씨라고 걸었냐며 호통을 치고는 일필휘지하여 즉석에서 바꾸어 걸으라 했다. 귀양이 풀려 돌아오는 길에 대흥사에 다시 들른 선생은 자신의 글씨가 부끄럽다며 먼저 것을 다시 걸으라 했다니 역경이 그에게 겸손을 가르친 셈이다.”(‘그날이 오면’에서)

바꾸어 걸라고 했던 사람도, 다시 먼저 것을 걸라고 했던 사람도 같은 인물이지요? 사람은 변하는 것입니다. 마음도 변하는 것입니다. 세상도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정말로 힘드는 일입니다. 그 힘드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고 하는 사람이란 종자는 정말로 알고도 모를 존재라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하늘길 가는 날 그날에야 모든 것 다 벗어던지고 맨얼굴, 맨머리, 제 마음으로 갈 것 아니겠는가? 가발도 필요 없고 진한 립스틱도 소용찮다. 힘들었으면 힘들었다고 한마디 유언으로 남기고 고즈넉이 떠나면 그만이다. 그 순간까지는 위장에 잡혀 살 수밖에 없다.”(‘위장’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을 의식하며 삽니다. 그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부럽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수년 전 여행길에 에디슨기념관에 갔을 때 너무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어 공연히 심술이 났던 기억이 새롭다. 전기를 발명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과문함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어지간한 것은 에디슨이 다 만들어 훗날 사람들은 무얼 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밤 벚꽃은 안개를 부르고’에서)

1,093개의 미국 특허를 가지고 있는 에디슨, 저는 전혀 그것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용하며 지내는 저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더욱 부러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위키 백과에서조차도 “실제로 그가 발명해서 특허를 냈다는 발명품들조차도 동료 연구원이나 부하 연구원의 발명을 훔친 부분이 굉장히 많고, 순수한 학자적 탐구심이나 양심보다는 제너럴 일렉트릭이라는 회사를 세워 돈을 버는 데 충실했던 상업주의자의 면모가 강하다.”는 평을 내리고 있는 에디슨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에디슨을 부러워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 마음이 착잡하기도 합니다. 그는 가족에 대해서 너무 소홀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첫째 아들 토머스 주니어는 가짜 건강기계를 만들어 팔다 고발당하는 등 아버지 이름을 빌려 사기나 치는 사기꾼이었고, 둘째 윌리엄은 하는 사업마다 망해서 매주 40달러씩 생활비를 대주어야 하는 처지였으며, 다만 셋째 아들 찰스 에디슨만이 정계로 진출해 훗날 뉴저지 주의 주지사가 되었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가장 친밀하다고 자부하던 그였지만, 그마저도 아버지 얼굴을 평생 봤던 시간이 채 1주일도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였으니 그런 아버지라면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요것들아 또 나가니? 끔찍이도 나돌아 다니지, 늙은이 혼자 두고 해도 너무 하는 것, 어희들은 모르지, 하루 종일 얼마나 심심한지 알기나 하니? TV 보고 있으라고? 무슨 말인지 들려야 재미가 있든지 말든지 하지, 그것도 또 톡 끄고 나가요. 들리지도 않으면서 괜히 전기 값만 축내느냐고?”(‘마음으로 듣는 소리’에서)

‘글로라도 써봐야지 속병 걸릴 것 같아 보낸다는 친구의 편지’가 일품입니다. 그러면서 한편, 저 같은 사람은 글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서 걱정인 처지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심심할 틈조차 없으니까요.

“인생에 연습이 있어 지금 새 무대가 열린다면 이제부터는 이런 일들도 잘 실천하면서 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연습도 없고 왕복도 아닌 편도 여행이니 제대로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다.”(‘다시 할 수 있다면’에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찌 생각하면 ‘편도 여행’이기에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도 또 때로는 지겹기도 했던 여행을 다시 ‘왕복’으로 되풀이해야 한다면 얼마나 짜증이 날까 하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왕복 여행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지금의 생활보다 더욱 바람직한 생활을 영위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지요.

이렇게 된 소리 안 된 소리로 어거지를 부리는 재미도 없을지 모르고. ‘어거지’로 썼더니 빨간 밑줄이 쳐지고 있네요. 알아요, 알아. ‘억지’라고 써야 한다는 것이죠, 컴퓨터 님. 하지만, 이런 때에는 ‘억지’라는 말보다 ‘어거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걸 어떡합니까?

“오래된 것, 버려도 되는 것, 오래 동안 안 먹는 것 등등 순서대로 버리듯이 머릿속에, 마음속에 틀고 앉은 것들도 똑같은 기준으로 순서를 정해서 미련 없이 꺼내 버리자, 말끔히 버리고 그야말로 적당히 가지고 살아보자. 냉장고야 고맙다, 네가 파업하지 않았으면 내 몸이 큰 파업을 하거나 아주 멈추어 버릴 때까지 미련하게 달리기만 했을 텐데 말이다.”(‘냉장고만 파업하나?’에서)

‘적당히 가지고 살아보자.’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입니까?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부터 버려야 할 것들을 그토록 가득가득 채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냉장고 속의 것보다도 내 방을 가득 채운 책들 좀 치우고 살아야겠는데 그것이 잘 안 됩니다. 퇴직할 때, 학교에 있던 책들은 모두 학교에다 기증을 해 버려서 가끔은 아쉬운 적도 있긴 하지만, 지금도 쌓이는 책들…. 정말 골칫거리입니다. 버리자, 버리자. 그런데 안 버려지는 겁니다.

“저 꽃들로 국화베개를 만들어 주면 남편이 어머님과 애기 잠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드디어 남편의 일갈이 있고서야 꽃타작은 끝이 났다.”(‘국화 베개’에서)

늘 ‘웬쑤 같다’고 입에 달고들 사는 남편인데, ‘국화베개’까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 머리는 아마 IQ 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제 오빠의 관심은 발이었고 이 아이의 관심은 먹을 것이었다. 발은 아래쪽에 그려 있어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았다지만 식탁 위는 너무 높아 눈높이에 맞출 수가 없다. 관심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손녀는 제 오빠보다 식탐이 좀 있는 편이다.”(‘관심’에서)

그렇습니다. 꼭 아이들을 통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꼭 보고 싶은 것들만을 봅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무리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바꿔야 합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보아야 할 것은 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한 쪽 면만을 보고 살아가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눈은 두 개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요?

“인도의 허황옥이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인도에서 가지고 와서 김해 일원에 심었다는 설 등 여러 의견이 있다.”(‘차향이 좋아서’에서)

처음 들어보는 얘기네요. 삼국유사 어느 대목에 그런 얘기가 나오던가요? 아마도 민담이 아닐까 여겨지는데, 좌우간 아직까지 그런 얘기가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 얼마나 무식했던가 하는 자책감이 앞섭니다.

“비가 올동말동한 날 아침, 우산통에서 이 키 작은 우산을 집으며 오늘 한 번 더 들지 뭐, 또 놓고 올지도 모르니까. 이런 푸념을 꽤 오랫동안 하고 있다. 이제 좀 잃어버리면 좋겠는데 건망증이 휴가를 갔나 보다. 올 여름 나의 계륵이 바로 이 우산이다. 문득 내가 혹시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계륵이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든다. 제발 그것만은 아닌 채 살다 갔으면 좋으련만.”(‘계륵’에서)

계륵은 그래도 아까운 정을 주고 있는 존재입니다. 춘천에 가면 ‘닭갈비’는 대접을 받습니다. ‘닭발’도 귀하신 존재로 치부됩니다. 좀 잃어버렸으면 하는 우산, 그러나 그 우산 덕에 비를 피할 수 있었던 때도 많지 않았을까요? 우리의 오 선생님께서는 욕심이 좀 많으신가 봅니다. 농담도 받아줄 줄 아는 분이라는 생각에서 아무 말이나 막 했는데…괜찮겠지요?

“나이 들면 서로 등 긁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데 효자손보다야 갈퀴손이 나을 테니 잠자코 살아보자, 남편의 리모컨인 내가 건강의 상징이라면 행복할 일 아닌가? 거동이 불편해지면 리모컨 노릇도 못 해 줄 것이니 제발 오래 오래 남편은 지금처럼 입만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내 건강이 허락받을 수 있기를 바라보자.”(‘그렇게는 말 못해’에서)

리모컨은 편리한 물건입니다. 꼭 필요한 물건이기도 합니다. 리모컨은 소중한 물건입니다. 자신의 존재의의를 알고 있는 오 선생님은 더욱 더 귀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연차가 운치 있고 좋기는 하나 저 고귀하게 생긴 연꽃송이에 차를 넣었다가 꽃잎이 닫히면 목을 똑 따서 보관했다가 사람들의 미각과 후각을 즐겁게 해준다는 사실이 또 내 비위를 건드린다.…돌아서는 내 시야는 온통 백련 밭이다. 하얀 연꽃이 구름처럼 피어있다. 사람에게 상상의 자유가 있음은 크나큰 축복이다.”(‘거기 연꽃은 거의 없었다’에서)

연꽃잎 하나라도 함부로 하기엔 너무나 인간의 욕심이 크다는 것, 자연을 사랑하고 순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씀씀이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게다가 끝 문장은 금상첨화이네요.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상상의 자유가 있음은 정말로 크나큰 축복입니다. 이 대목을 읽고 있는 제 눈 앞에도 온통 백련꽃이 피어나고 있으니까요.

“‘너 애기잖아’ 하면 정색을 하고 ‘나 어린이야, 4살이야’를 연발하는 아이가 4층인 우리 집에 올 때는 2층 초입에서 오똑 멈춰 서서 ‘나 4살이잖아?’ 하면서 어른을 올려다보고 배시시 웃는다. 아직 어리니 안고 올라가라는 무언의 명령이다.”(‘어깨를 펴자’에서)

정말 귀여운 아이네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입니다. 4살, 때로는 많기도 하고 때로는 어리기도 한 나이라는 아이의 말은 옳습니다. 4살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60세, 70세도 마찬가지이지요.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나이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는 것이 나이에 대한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어머님 생전에, 마지막 가시기 전에 한 말씀만 하시지 그러셨어요. 왜 이렇게 못 되게 구느냐고, 도리로는 다 해 주지만 네 마음에 품은 그 한 가지 불평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한 말씀만 어머님도 쏟아 놓으시지 그러셨어요.”(‘한 말씀만 하시지요’에서)

사람에게는 할 말이 있고 하지 못할 말이 있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지 않은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말을 하지 않았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지은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때에는 ‘억지’가 제격이지요. 표준어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기준임을 알면서도 한 말씀 하시지 않았다고 부리는 ‘억지.’ 그런 억지를 부릴 수 있는 점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는 말 못해』를 정말로 잘 읽었습니다. 가다가다 나름대로 ‘어거지’를 부려 보았지만, 그건 오 선생님을 좋아해서 부린 ‘억지’라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이 글은 체계적, 논리적인 글이 아니요, 이 글 자체가 하나의 ‘隨筆’임을 밝혀드리는 바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마니’(애들 흉내를 좀 내 보았습니다.) 쓰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2012.8.18. 거북이 이 웅 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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