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百花齊放) 25. 보리[大麥]
백화제방(百花齊放) 25. 보리[大麥]
이 웅 재
5월 11일. 서울비행장 후문 쪽에는 성남시에서 가꾸는 꽃밭이 있다. 거기에는 잘 자란 보리와 관상용의 양귀비꽃이 한창이었다. 예전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만 보리를 심었는데, 요즈음에는 이처럼 관상용 재배도 흔한 세상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꽃꽂이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보리는 인류의 아주 오랜 친구였다. 서기전 7,000년에 이미 야생종이 재배되었다고 하니, 사람들에게는 고맙고 고마운 존재였던 것이다. 바람결에 출렁이는 보리밭은 나름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기도 했고, 실제로 드넓게 푸른빛의 보리밭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풍경화의 소재이기도 하였다. 고어사전의 저자인 고(故) 남광우(南廣祐) 박사께서는 광화문에 있었던 생맥주 집 마담이 부르는 가곡 ‘보리밭’ 듣기를 즐겨하셨다. 그런가 하면 한흑구(韓黑鷗) 선생의 수필 ‘보리’도 잊을 수 없는 명편(名篇)이요,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寰)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라 읊었던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韓何雲)의 ‘보리피리’ 또한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어 주었던 보리와의 인연이라 하겠다.
보리는 가을에 심는 가을보리와 봄에 심는 봄보리가 있다. 수확은 6월 21일 하지 께에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을보리를 심는다. 옛날에는 햇보리가 나오기 직전이 가장 힘든 때였다. 집집마다 양식이 떨어져서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때가 바로 춘궁기(春窮期)요 맥령기(麥嶺期)였다. 우리말로는 ‘보릿고개’라고 하였다. 음력으로는 4~5월경을 이르던 말이었는데, 요즘 어린이들은 ‘보릿고개’가 어디에 있는 고개냐고 묻는 세상이 되었으니, 정말이지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보릿고개 무렵이면 학교에 갔다 오다가 보리밭에 들어가 일종의 보리 곰팡이 병에 걸린 깜부기를 뽑아서 먹기도 했고, 좀더 심하면 탱탱하게 영글어 가는 보리를 한 움큼씩 잘라서 보리서리를 하기도 했다. 보리밭 근처에서 삭정이를 주워다가 성냥불로 불을 지피고는 그 불에다가 보리를 적당하게 익혀서 손으로 비벼서 껍질을 후후 불어내고 익은 보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요기(療飢)는 물론 풋풋한 보리냄새가 입 안 가득 차게 되어 마음마저 저절로 풍성해졌던 것이다. 깜부기를 뽑아 먹었을 때나, 보리서리를 하였을 때나 입술은 시커멓게 물들게 마련이어서 근처의 개울가에 가서 씻어내어야만 했다. 운이 좋으면 잉어나 붕어, 메기를 잡아서 고기 천신까지도 할 수가 있을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난했던 시절의 낭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낭만으로 따진다면야 눈 맞은 처녀 총각의 보리밭 데이트가 최고였을 것이다. 사람의 키만큼 자란 보리나 밀밭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아주 좋은 데이트 장소였던 것이다. 보리밭 주인에게는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푹신한 보리를 깔고 앉아서 서로 눈 맞춤을 하는 일이란 낭만 중에서도 낭만이었던 것이다. 느닷없는 청춘 남녀의 등장에 애꿎은 장끼 까투리만 도망가느라 바쁘게 되었지만 말이다.
밀을 소맥(小麥), 보리를 대맥(大麥)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께서는 밀보다도 보리를 한 수 위로 보았던 듯싶다. 하긴 꽁보리밥도 오돌도톨해서 쉽게 목구멍을 넘어가질 않았지만, 밀밥은 더군다나 까끌까끌하고 뻑뻑하기까지 하여 더욱 맛이 없었던 것이다. 밀로는 누룩[麴]을 빚어 술을 담그는 용도로 많이 사용했던 것도 그러한 맛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 질 좋은 보리는 낟알을 싹틔운 다음 말려서 맥아(麥芽)로 만든다. 맥아는 맥주, 고추장, 엿기름, 식혜 등의 중요한 재료이다. ‘맥(麥’)자는 보리 이삭이나 알갱이를 지칭하는 글자요, 뿌리까지를 가리키는 한자는 모(麰)라고 한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을 듯싶다. 보릿잎을 넣고 끓이는 된장은 보리된장이라고 하여 시원한 맛이 느껴진다고 하였고, 된장의 맛을 내기 위하여 보리를 끓여서 된장에 넣는 집들도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인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타맥행(打麥行)’이라는 한시를 지었다. 그 끝 네 구절을 보자. ‘타맥’이란 ‘보리타작’이란 말이다.
그 기색을 살펴보니 즐겁기 그지없네.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으니,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 괴로워하며 벼슬길을 헤매리오.
보리타작이나 하는 생활이라도 벼슬길보다는 낙원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요사이 사람들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해서 안달인지를 모르겠다. 굳이 흠집을 찾아보자면 타작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곳이 낙원일 수 있겠지만, 그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는 타작할 때 날아와 목덜미에 붙어버리는 까끄라기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점이라고나 할까? 까끄라기란 벼나 보리 따위의 낟알 껍질에 붙어 있는 깔끄러운 수염을 가리키는 말이다. 땀이라도 난 목덜미에 그 까끄라기가 한 번 붙으면 따갑기가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떼어내려고 노력을 해도 쉽사리 떨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그 까끄라기를 가리키는 한자는 ‘까끄라기 망(芒)’ 자이니, 잘 알아두었다가 가까이 하지는 말 일이다. 아울러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는 말 하고도 친해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일 것이다.
요사이에는 가는 곳마다 보리밥집이 흔하다. 그렇게도 먹기 싫어하던 보리밥을 건강식이라고 다투어 먹으려고 하는 실정이니 세상, 차암 변해도 많이 변했다.
(2012.8.18. 1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