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제방(百花齊放) 28. 엉겅퀴
백화제방(百花齊放) 28. 엉겅퀴
이 웅 재
5월 17일. 야탑 10교 아래쪽 탄천산책로와 만나는 어름에 엉겅퀴 꽃이 피어 있었다. 엉겅퀴, 얼핏 그 이름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를 멈추고 엉기게 한다고 해서 엉겅퀴라고 부른단다. 그렇다면 꽃의 약성(藥性)으로 인한 명명법(命名法)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런데 하필이면 ‘퀴’자로 끝이 났을까? ‘퀴’자로 끝난 말은 얼핏 생각해 보면 ‘갈퀴’와 ‘바퀴’ 말고는 별로 없었다. 궁금해서 『우리말 역순사전』(유재원, 정음사, 1985.)을 찾아보았더니, 명사만 22개의 낱말이 있었는데, 그 중에 누구나 알 만한 낱말인 톱니바퀴, 쳇바퀴 등 ‘바퀴’가 붙는 말이 12개였고, ‘갈퀴’, ‘물갈퀴’ 2개에다가 ‘아귀’를 힘주어서 하는 말인 ‘아퀴’와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가리키는 ‘성가퀴’를 제외하면 나머지가 5개였다.
그 중 ‘저퀴’라는 말은 사람을 몹시 앓게 한다는 귀신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발떠퀴는 사람이 가는 곳에 따라 생기는 길흉화복의 운수로서, 그날그날의 운수를 가리키는 날떠퀴와 미신적인 관점에서, 무슨 일에 손을 대는 데 따르는 운수를 가리키는 말인 손떠퀴와 ‘떠퀴’를 공유하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부라퀴’였다. ‘부라퀴’는 ‘몹시 야물고 암팡스러운 사람’을 의미하는 말인데, 저퀴와 떠퀴, 부라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하던 말이라서, 요즘 유행하는 우리말 퀴즈 같은 데서나 나옴 직한 말이 아닐까 싶다. ‘엉겅퀴’덕분에 생전 처음 몇몇 단어들과도 해후를 하게 되었으니, 엉겅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엉겅퀴 꽃은 국화과에 속하는 꽃으로, 작은 꽃이 모여서 한 송이처럼 보이는 두상(頭狀)꽃차례를 이루는 통꽃만 가지고 있는 꽃이다. 마치 원형의 바늘겨레(바늘꽂이, 바늘방석)에 잔뜩 바늘을 거꾸로 꽂아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꽃봉오리는 흰색 털이 거미줄처럼 덮여 있다. 엉겅퀴는 풍매화(風媒花)로 씨를 바람에 날려 보내는 꽃이다.
엉겅퀴와 관련된 전설을 보자. 13세기 덴마크와 스코틀랜드가 전쟁을 벌였다. 덴마크는 스코틀랜드의 성을 포위하고 소리를 내지 않고 공격해 들어가기 위해서 신발들을 벗었는데, 주위는 모두 엉겅퀴 밭이었다. 어린 병사 하나가 맨발로 엉겅퀴의 가시를 밟고는 도저히 아픔을 참을 수 없어 비명을 질렀다. 이에 스코틀랜드 군사들이 적의 침투를 알아채고 총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에서는 ‘나라를 구한 꽃’ 엉겅퀴를 국화로 삼았다고 한다.
엉겅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해진다. 소를 키우며 우유를 팔아서 생계를 꾸려가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는 어느 날 우유를 팔아서 꼭 입고 싶은 자신의 옷과 식구들의 선물을 사려고 하였다. 기쁜 마음에 들떠있던 소녀는 잘못하여 길가에 피어있는 엉겅퀴 가시에 찔려서 들고 있던 우유 통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통 안에 들어있던 우유를 몽땅 엎질러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슬퍼하던 소녀는 그만 죽고 말았는데, 소녀는 죽은 후에 소로 태어났다. 그리고는 길가의 모든 엉겅퀴를 뜯어 먹었다고 한다. 억센 가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가 잘 뜯어먹는 까닭은 그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성모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뽑아 낸 못을 묻어버린 장소에서 피었다고 하여 그리스도교의 성화가 된 꽃이기도 하다. 꽃말은 ‘건드리지 마세요’라나. 가시 때문에 얼핏 친근미가 느껴지지 않는 꽃이지만, 실은 아주 착한 꽃이다. 우리말로는 조방가새, 항가새, 가시나물 등으로도 부르고, 약 이름으로는 대계(大薊), 자계(刺薊), 귀계(鬼薊), 야홍화(野紅花) 등으로도 부르는데, 간질환, 황달, 관절염의 특효약이라고 한다. 9월쯤 뿌리째 채취하여 그늘에서 말린 엉겅퀴를 끓여서 수시로 마시면 좋단다.
엉겅퀴는 무엇보다도 독성이 없어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꽃, 열매, 줄기, 잎, 뿌리 모두가 다 약재로 쓰일 수 있다. 쓴 맛이 좀 있어서 고혈압 환자라면 양파를 함께 넣어 즙을 내어 먹는 것도 좋으며 노인의 경우에는 30그램씩 생즙을 내서 먹으면 회춘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꽃이다.
밤나무 농사를 짓는 사람은 반드시 밤나무 숲을 엉겅퀴로 뒤덮게 할 일이다. 밤나무에 해로운 진딧물을 비롯하여 여러 해충들을 이 엉겅퀴가 유인하여 밤나무를 보호해 준다니 정말로 고마운 야생화이다.
꽃은 엉겅퀴를 닮았으나 날카로운 가시가 없는 산비장이가 있어 구별을 할 필요가 있다. 엉겅퀴보다 한 계절이 지나 늦여름에서 초가을까지 피는 꽃으로 조선시대의 무관인 비장(裨將)처럼 들꽃들을 지켜주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해서 산비장이라고 한단다.
(2012.8.29. 원고지 1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