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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2)수험번호 404번에다 점심은 빵 2개로

거북이3 2012. 9. 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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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2)

         수험번호 404번에다 점심은 빵 2개로

                                                                                                                                                               이 웅 재

MBC 지붕 위’와 결별한 나는 뒤늦게나마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나의 뒤늦은 공부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우선 내가 다니던 강문고등학교는,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명문 고등학교에 속하지만, 가수 조영남의 말로는 ‘깡패학교’, 소설가 이문열 씨도 ‘학교 환경도 좋지 않아서 석 달 만에 때려치웠다’는 학교였던 것이 그 첫 번째 근거요, 그것도 ‘야간’에 적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 그 두 번째 근거였고, 그 세 번째는 그때까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나는 평소에 입시공부를 위시한 모든 공부를 등한시했었다는 점이었다.

남들이야 무어라고 하든 말든 나는 시험에 필요한 참고서들을 엄선하여 샀다. 그리고는 한 달여 동안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를 한답시고 노력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는 승산이 없었다. 학교 자체가 옛날의 99칸 기와집이었고, 학교를 두르고 있는 담장은 6·25때 군데군데 허물어졌던 곳에 판잣집으로 막아 놓고 있어서, 늘 그 집들을 이용해서 땡땡이를 치던 버릇 때문에 도저히 공부가 되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9월 한 달을 허송세월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통보를 했다. 겨울방학이 되기까지의 3개월여 동안 대학입시를 위해 집에서 혼자 공부하겠노라고. 그렇게 해서 반드시 일류대학에 입학을 하고야 말 테니까 그 동안 출석을 좀 배려해 달라고. 담임선생님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한 놈이라도 말썽 부리는 놈이 줄어든다는 것이 반가우셨기 때문은 아닐까도 싶다.

나는 새로이 계획을 짰다. ‘제1회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최초로 시행되는 사지선다형 시험문제, 그것을 정복하려면 무엇보다도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 학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모든 과목의 책을 남아 있는 3개월여 동안 4번 이상 읽도록 시간 배정을 하였다. 첫 번째 독파는 한 달 반(45일) 정도, 다음번은 20일 정도, 그 다음은 10일 정도, 또 다음은 5일 정도, 총 80일 정도면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 나머지는 부족한 과목, 조금 어려운 대목들을 따로 보충하면 될 터이었다.

그게 가능하려면 책 읽는 방법을 새로이 창출해야만 했다. 그냥 읽기만 할 경우, 마지막 읽기의 경우를 놓고 본다면 어떻게 참고서 한 권을 5일 동안에 읽어 치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첫 번째 읽을 때,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라든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곳에는 밑줄을 그으면서 읽고, 두 번째는 그 밑줄 친 부분만 읽으면 되는 것이다. 처음 읽으면서도 쉽게 이해되는 부분 따위는 다시 읽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니, 그런 식으로 읽으면 첫 번째의 절반 정도의 시간으로도 충분히 읽어낼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두 번째 읽기 때에도 다시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부분 및 중요한 부분에는 새로이 밑줄을 쳐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방법은 가장 여러 번 읽은 부분,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읽은 부분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요 제일 어려운 부분이 되는 것이니, 효과적이지 않을 것인가? 어디 그뿐이랴? 책 한 권을 나무로 친다면, 가장 최근에 읽은 부분이 뿌리요, 그 전의 것이 큰 둥치, 또 그 앞의 것은 가지, 그리고 처음 읽은 부분은 잎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나무 하나의 형상이 제대로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제일 처음 읽은 잎 부분에서 출제되었을 경우를 생각하면, 전체의 나무 형상으로 보아 ‘그건 아마 이럴 것이다’ 라고 미루어 짐작해도 정답에서 그리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짧은 시간을 이용한 효과적인 학습방법이 바로 복습이 아니던가? 1시간 정도의 학습량을 예습하기 위해서는 3시간 이상이 소요되지만, 복습은 그와는 정반대, 3시간의 학습량도 1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무려 9배의 시간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학습 방법인 것이다. 석 달 동안 나는 단 하루, 중학교 때의 은사님이 수녀로 계시는 소사 쪽에 있었던 수녀원 구경을 하러 갔었던 일 말고는 일체 방구석에서 나가질 않았었다. 국문과를 지망했던 나는 당시로서는 금남의 구역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1962.1.16.그렇게 해서 치른 제1회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에서 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학과별 합격자 명단이 신문에 발표되던 날의 감격은 잊히지가 않는다. 전국 석차 20등 이내에 들었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그 해 대학별 입학정원이 서울대 20명, 연세대 30명, 고려대 40명, 이화여대 50명, 숙명여대 100명이 아니었었나 싶다.

하지만 내 앞에는 커다란 문제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건 바로 대학별로 실시되는 체능 검사였다. 체능검사가 총점 350점 중의 50점으로 과대하게 책정되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55kg을 넘지 못하던 갈비가 석 달 동안이나 두문불출했으니 건강이 말이 아니었는 데다가, 시험일이 코밑에 다가왔을 때에는 긴장이 풀려서였던지 지독한 감기까지 걸렸었으니…. 그러한 사정을 감안해서 연세대학교 쪽으로 원서를 내긴 했지만, 거기도 자신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본 점수밖에는 받지 못할 것 같았고, 그 점수로는 50점이나 되는 체능검사의 벽을 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낙방을 예고라도 하는 듯 수험번호마저 ‘404번’이었다. ‘404번’? 나는 나 나름대로 해석을 하여 보았다. ‘死’에서 다시 ‘死’하는 일은 ‘生’일 수밖에 없고, ‘404’는 4가 둘이니 ‘4땡’이고, ‘4×4’로도 통하니 ‘16’인 셈이요, ‘16’은 ‘섯다’에서 일곱 끗에 해당하는데, 일곱 끗이면 괜찮은 끗발인데다가, ‘16’은 또 ‘2×8’로도 분석이 되어, 바로 ‘이팔청춘’, 사람의 한 평생 중 가장 활기가 넘치는 때가 아니랴 싶었던 것이다. 이 도령과 춘향이도 바로 그 ‘이팔청춘’에 사단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해석이 멍석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남들은 부모님들이 따라와서 힘내라고 영양식들을 싸 와서 먹이는데, 나는 나 혼자였다. 집안 형편으로 보아 대학을 다닐 형편이 못 되는 판국에 부모님이 따라와 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도대체가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그래서 우물쭈물하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 오후 검사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무엇이든 먹지 않고는 오후 검사를 받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빵 2개를 샀다. 시험 때 빵을 먹으면 떨어진다고 하지만, 나는 내 몸의 선 모습 ‘1’에다가 ‘빵’ 2개, 그러니까 ‘00’을 합치면 ‘100’이 되지 않느냐는,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생각으로 그 빵을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2011.8.8. 원고지 1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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