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문턱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 30. 때죽나무

거북이3 2012. 12. 2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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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제방(百花齊放) 30. 때죽나무

 

                                                                                                                                              이 웅 재

 

5월 20일 오후 6시.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인순이 콘서트엘 가다가 아파트 앞 성남대로변에서 아까시꽃만큼이나 향기가 진한 때죽나무를 만났다. 그러지 않아도 5월은 신록의 달, 가장 청순하고 제일 눈부신 달이 아니던가? 예전에는 5월이면 이화여대에서 ‘오월의 여왕’, 메이퀸 선발대회가 있었다. 1908년에 시작되어서 일제에 의해 ‘자세의 여왕’으로 바뀌었다가 1947년 아펜젤러 교장의 환갑잔치와 더불어 부활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6․25동란으로 중단되었었다. 1956년 개교 70주년에 다시 개최되기 시작했으나 학생들이 성 상품화와 평등권 등을 위배하는 행사라고 반대하여 1978년에 완전히 폐지되었지만, 그러한 풋풋한 대회가 5월에 있었다는 점은 5월이 바로 계절의 여왕임을 증명해 주는 일이 아니었을까?

때죽나무 순백의 꽃들이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하늘을 향해 피는 것이 아니라 땅을 향해 피는 것은 그만큼 인간세상에 마음을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모양이 보기에도 매우 아름다웠다.

때죽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사연은 여러 가지가 있다. 땅을 향하여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수많은 열매의 생김새가 약간 회색으로 반질반질해서 마치 스님이 떼로 몰려있는 것 같다고 해서 ‘떼중나무’로 부르다가 음이 변하여 때죽나무가 되었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때죽나무는 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뀌처럼 찧어서 시냇물에 풀면 물고기들은 아가미가 마비되어서 순간적으로 기절해 버린다. 열매나 잎 속에는 작은 동물을 마취시키는 에고사포닌(Egosaponin)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고기를 ‘떼’로 ‘죽’여 잡을 수 있는 나무라 해서 ‘떼죽나무’라 했다기도 한다. 최근에는 때죽나무 열매를 이용해 어류용 천연마취제를 개발하여 특허등록까지 마쳤다는 신문기사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 줄기가 마치 때가 많이 낀 것처럼 검게 보인다고 해서 ‘때죽나무’라 했다고도 한다.

서양 이름으로는 snowbell이다. 꽃이 눈처럼 하얀 빛깔의 종(鐘)과 같이 생겼다는 데서 붙은 명칭이겠는데,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종낭’이라고 한단다. ‘낭’은 제주도 방언으로 ‘나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제주 방언으로 ‘족낭’이라 한다고 풀이하여 놓았다. 그러고 보면 꽃도 열매도 종(鐘)을 닮았다. 바람이라도 불면 댕그랑댕그랑 향기로운 종소리라도 들려줄 듯싶다. 그래서 ‘문향(聞香)’이란 표현이 생겨났을까?

에고사포닌은 물에 풀면 기름때를 없애 주는 성분이 들어 있어서 세제(洗劑)가 없던 시절에는 때죽나무 열매를 찧어 푼 물로 빨래를 했다고 한다. 비누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독성 때문일까? 동학혁명 때에는 화약이 부족하자 농민들이 때죽나무 열매를 빻아서 화약에 섞어 쓰기도 했으며, 독화살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단다.

제주도의 지표면은 투수성(透水性)이 강한 현무암(玄武巖)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서 웬만큼 비가 내려도 대다수의 물이 지하로 빠져들기 때문에, 물을 구하기가 힘이 든다. 논 농사를 하기 힘든 연유이기도 한데, 식수마저도 귀해서 옛날에는 비가 올 때, 지붕이나 나뭇가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지붕의 처마를 통하여 흘러내리는 빗물은 ‘지신물’이라고 했고, 때죽나무 가지를 머리댕기처럼 띠[茅]로 엮어 ‘촘’을 만들고 그 밑에 ‘항’을 놓아 물을 모으는 것을 ‘촘항’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여 받은 물은 ‘참받음물’이라 했다. 샘물은 길어다가 저장해 두고 며칠이 지나면 변질이 되었으나 ‘참받음물’은 받아서 석 달 이상이 되어도 샘물 이상으로 맑고 물맛이 좋았다고 한다.

나무의 속성이 10여 m 정도 이상은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건축용 목재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목재는 나이테 무늬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와서 장기알, 얼레빗, 목기류, 지팡이 등이라든지 우산이나 양산 또는 농기구의 자루 따위를 만드는 용도로 주로 쓰였으며, 가지는 흔히 물푸레나무처럼 회초리로도 사용했다. 꽃에는 꿀이 많아서 아까시나무와 마찬가지로 밀원수종(蜜源樹種)으로 치부되었다. 한국의 아까시 꿀은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그 아까시 꿀보다 더 향기로운 꿀이 바로 깊은 산골의 계곡 물이 흐르는 곳에 많이 자라고 있는 때죽나무에서 채취한 꿀이다. 아까시 꿀은 꽃과는 달리 향기가 별로 나지 않지만, 이 때쭉나무 꿀은 은은한 향이 상당히 진하게 우러나는 까닭에 아까시 꿀보다도 인기가 높다.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상큼한 레몬향이 짙어서 향수의 원료로도 사용되고, 열매의 씨에는 지방이 많아 기름을 짜서 등유 대용으로 사용하거나 머릿기름으로도 이용했다.

민간에서는 인후통이나 치통이 있을 때 이 열매를 씹으면 통증이 가라앉는다고도 하지만 에고사포닌은 적혈구를 파괴할 수도 있으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이밖에도 때죽나무의 효능은 통풍성(痛風性) 관절염과 신경통, 타박상이나 골절상 등에 효력이 있고, 뱀 물린 데 짓찧어 붙이기도 하였으니 여러 모로 쓸모가 많은 나무라고 하겠다. 열매는 9월쯤에 익는데, 껍질이 터져서 종자가 나오면 그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이웃마을 갑순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었다.

내한성과 바닷바람에 잘 견디는 내조성(耐潮性) 및 내공해성이 있으며, 병충해에도 강한 편이라서 공원의 조경수나 가로수로도 각광을 받지만, 건조에는 조금 약한 편이라서 다소 습기가 있는 땅을 좋아한다. 따라서 나무에는 수분 함량이 적은데다가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불을 지필 때 싸리나무와 더불어 젖은 나무라고 하더라도 연기가 나지 않으면서도 잘 타는 나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불을 처음 피울 때 불쏘시개로 안성맞춤인 까닭이다.

한국(중부 이남)·일본·필리핀·중국 등지에서 분포하며, 실생(實生)은 가을에 씨앗을 채취하여 2년 간 노천매장 후 파종하면 발아율이 70%에 육박하고, 자연 낙과(落果)하여 발아한 어린 나무를 뽑아다 육묘(育苗)하여도 쉽게 번식시킬 수가 있고, 고농도의 호르몬 처리를 하면 삽목으로도 증식이 가능하며 발근율도 높은 편이다. 꽃말은 겸손이다.

(2012.12.27. 17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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