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엄마 아빠, 지금 싸우는 거 맞아?

거북이3 2014. 4. 4. 21:45

     엄마 아빠, 지금 싸우는 거 맞아?

                                                                                                                                                                                이 웅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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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밥상머리에서 시작되었다. 평안했던 가정은 급기야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차근차근 내막을 살펴보자. 하지만, 그건 애초부더 ‘차근차근함’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처음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그 ‘화기애애’가 무너진 것이다.

저녁밥을 먹는 시간이었다. 밥상은 푸짐했다. 식구는 셋이었다. 남편, 아내 그리고 10살 난 아들, 그렇게. 그러니까 아주 단출한 식구끼리의 즐거운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밥상머리에는 단란함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듯했다.

남편의 젓가락이 콩나물 무침을 집어 들었다. 아내의 젓가락도 따라서 콩나물 무침으로 향했다. 남편이 말했다.

“왜 이렇게 짜? 나, 고혈압이라는 거 몰라?”

아내가 그 콩나물 무침을 입으로 가져갔다.

“내 입엔 괜찮은데….”

이번엔 남편이 배추김치 한 쪽을 집었다.

“이건 왜 이렇게 매워?”

얼토당토않다는 모습으로 아내가 말한다.

“당신, 평소엔 매운 거 좋아했잖아?”

“그래도 정도껏이지, 정도껏!”

아내는 어이가 없었다. 전엔 안 그랬다. 웬만한 불평 따위는 아예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래, 그것 때문일 거야.’

아내는 퇴근하는 남편을 전철역까지 마중을 나갔다. 집으로 오는 사이에는 백화점이 하나 있다. 별 생각 안 하고 아내는 백화점으로 들어섰다. 백화점을 통해서 가면 집까지의 거리가 조금 단축이 되기도 해서 늘 그런 방법으로 집까지 오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 날씨도 그렇고 해서 스카프나 하나 사면 어떨까 하여 명품 스카프를 파는 곳으로 들어서 보았다. 엘르 스카프, 피에르가르뎅 스카프 등은 1만 원대였다. 그 정도라면 하나쯤 사도 될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것들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하여 몇몇 매장을 둘러보았다.

이름이 조금 생소해진다고 여겨지는 스카프들은 가격이 예상 외로 비쌌다. 루이가또즈가 24만 원이나 37만 원. 내친 김에 도대체 얼마만큼 비싼 것들이 있나 보기 위해 버버리 매장엘 들러 보았다. 헤리티지 체크 캐시미어 스카프에 붙은 정가표가 KRW 630,000에서 KRW 940,000. KRW가 무슨 뜻이냐고 점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Korean Won이란다. 그러니까 한화(韓貨) ‘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입이 벌어진 채 다물어지질 않았지만, 내친 김에 도대체 얼마짜리까지 있을까 생각하며 좀더 고급스러운 스카프들을 구경하여 보았다. 실크폴카도트스퀘어란 상품은 자그만치 KRW 1200,000이었다. 120만 원? 더 이상 놀라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는 그 스카프 앞에서 한 동안 넋을 잃고 바라다보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보아도 그건 고급스러워 보였다. 저런 정도 하나쯤은 사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스카프 하나에 120만 원, 저런 걸 넋이 나간 듯 쳐다보고 있는 아내가 점차 한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곤 묵묵히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내는 조금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당신, 평소에는 하지 않던 웬 반찬투정이야?”

남편이 대답했다.

“평소에는 그냥 꾹 참고 먹어 주었던 거지.”

“뭐? 꾹 참고 먹어줘?”

아내도 꼭지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꾹 참고…….”

겉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남편도 지지 않았다.

“그러면, 먹지 않으면 되겠네.”

아내가 비아냥거렸다.

“그래, 앞으론 안 먹었으면 해.”

“그건 무슨 말이야, 나하고 안 살겠다는 거야.”

아내가 드디어 쌍심지를 돋우었다. 아들이 끼어들었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

남편은 그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렸다.

“그래. 우리 이젠 이혼하자구.”

“이혼?”

“그래, 이혼.”

아내도 지지 않았다.

“좋아, 이혼해.”

사태는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신,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부자한테 시집갔더라면 아까 그 비싼 스카프도 목에 걸고 멋진 삶을 살았을 텐데……. 미안하다.”

남편은 진심으로 말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내가 말했다.

“당신도 참 멋진 사람이었어!……. 내게는 과분했었지.”

사태가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빠, 지금 싸우는 거 맞아? ” (2014.4.4. 1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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