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따윈 없어도 괜찮아
고향 따윈 없어도 괜찮아
이 웅 재
추석은 내게 막무가내로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추석은 3일 동안의 연휴를 즐길 수가 있으니, 직장인들이 얼마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날이던가? 금년엔 월요일이 추석이 되는 바람에 본래 휴일인 일요일을 대신하여 수요일이 대체휴일로 지정이 되는 바람에 일, 월, 화, 수 나흘 동안이 휴일이 되어 버린 데다가 토요일에도 휴무를 하는 기업체들에서는 닷새까지도 쉴 수 있게 되는 바람에 아예 신바람들이 났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주눅이 들어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떠들어대지 못하던 사람들은, 이참에 국내가 아닌 외국으로 여행들을 떠나느라고 여간 부산스럽지가 않았다.
우리네 엄마 아빠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는 말을 들먹이며, 추석이 얼마나 좋은 명절인가를 새삼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으나, 이젠 그런 말은 젊은 층에게는 먹혀들지가 않아 허탈한 심정마저 느껴야 하는 실정이다. 그건 내가 생각해도 60년대, 아니 좀더 늦게 잡아 주어도 70년대까지에나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었던 말이지 싶다. 먹고 사는 것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요즘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은 이제 용도 폐기해야 할 말이라 여겨진다.
고향집엘 가느라 10시간이나 고속도로 위에서 짜증나는 시간을 보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추석, 짜증낼 일이 그렇게도 없던가? 열 시간 아니라 스무 시간, 서른 시간이면 어떤가?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춘절(春節) 때 고향엘 가려면 4~5일 걸리는 일도 흔하다지 않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하니, 우리의 10시간 정도로는 ‘택도 없는 일’이 아닐 것인가?
10시간을 가지고 불평불만인 우리 님들, 나 같은 사람도 한 번쯤은 생각해 주심은 어떨는지요? 나 같은 사람?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인데? 나 같은 사람이란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10시간 정도를 가지고 불평불만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부러워서다. 뭐가? 고향엘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신은 왜 고향엘 못 가는데? 조상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라도 지어서? 에이, 농담일랑 그만두시지요. 제가 어디 그럴 위인이나 됩니까?
나는 고향엘 갈 수가 없다. 왜? 내 고향은 바로 강원도 통천(通川)의 정덕(貞德) 마을이기 때문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고향까지의 10시간을 두고서 짜증내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복에 겨운 사람들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도 고향엘 갈 수가 없다. 갈 수가 없는 곳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다. 관동팔경이 시작되는 총석정(叢石亭), 그것이 보고 싶어 제주의 ‘주상절리(柱狀節理)’도 여러 번 찾아가 보았다. 화산폭발로 분출해 나온 용암이 식으면서 기둥 모양으로 굳어졌다는 주상절리, 총석정도 아마 그러한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만 해볼 뿐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평소 아버님에게서 들었던 얘기인 듯싶은 ‘알섬’엘 한 번 가보고 싶은데, 통일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알섬, 온갖 새들이 날아와 알을 낳는다는 곳. 그래서 그곳에 가면 웬만한 새알들은 몽땅 맛볼 수도 있으련만……. 아, 그곳엔 여자들은 출입금지란다. 아니,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다고 한다. 여자가 배를 타고 나오면 그 배는 난파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곳에는 여자들이 귀했었나 보았다.
추석이 되어도 나는 고향엘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대신 시집 장가간 아들딸들을 불러 모은다. 아들들에게서는 아직 친손자 친손녀가 출생되지 않았지만, 딸에게서는 외손녀, 외손자가 있어서 그 애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면서 고향에도 가지 못하는 서글픈 마음을 추스른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외손녀가 제 외숙모에게 말한다.
“할머니, 내 얘기 좀 들어봐.”
웬 할머니? 그러니까 조금 전에는 내 아내에게 얘기를 걸었던 것이다. 그것을 외숙모도 좀 들어달라고 한 말인데, 그만 말이 헛나온 모양이다. 그 소리를 들은 며느리가 머쓱해한다.
“내가 왜 벌써 할머니야?”
아들놈도 참견한다.
“그럼, 나는 할아버지게?”
모두들 웃음이 터졌다. 사단을 일으킨 당사자인 외손녀는 더욱 자지러지게 웃는다. 평소에는 ‘외숙모’라는 호칭을 잊지 않고 잘 사용하던 아이다. 제 생각에도 그 엉뚱한 발화(發話)가 어이가 없게 느껴졌나 보다. 한참을 웃던 아이가 얼굴을 찡그리고는 두 손으로 턱을 감싸더니 불쑥 또 한 마디 한다.
“너무 웃어서 턱이 아파요. 입도 찢어지는 것 같고…….”
얼마나 웃었으면 턱이 아프고, 입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까? 고향에도 가지 못하는 서러움이 그만 아이의 해프닝으로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는 외손자가 끼어들었다.
“누나, 어떻게 웃으면 턱이 아프고 입이 찢어지는 것 같아?”
저도 한번 그렇게 실컷 웃고 싶었던가 본 모양인데, 그 소리에 외손녀는 사그라들던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터뜨린다. 정말로 아픈가 보았다. 웃음을 참기 위해 앉아 있던 사람들을 피해서 베란다 쪽으로 가는 걸 보면……. 그러더니 깜짝 놀라서 또 한 마디 큰 소리로 내뱉는다.
“할아버지, 저기, 저거. 달팽이 좀 봐요.”
우리 집 베란다에는 화분들이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가끔 민달팽이가 나오는 수가 있어서 잡아 버리고는 했다. 그런데 어떻게 달팽이를 알고 있을까? 딸이 한 마디 한다.
“집에서 달팽이를 키워 봤어요.”
그래, 그랬구나. 외손녀, 외손자 덕에 나는 고속도로에서 10시간씩이나 걸리는 고향 따윈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4.9.16. 원고지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