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집
단골집
이 웅 재
성석제는 ‘천국의 다른 이름 단골집’에서 ‘내 기준에 단골 음식점은 최소한 다섯 번 이상 반복해서 간 곳’이라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 이후 삼십대 중반까지 거주하던 서울 독산동의 골목 안에 있었던 ‘뚜리바분식’이 가장 오래인 단골집이라면서, “뚜리바가 프랑스어이며 천국을 의미한다는 ‘설’이 있는데 프랑스어로 천국은 ‘Paradise’이니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말했듯이 ‘단골집’ 하면 주로 음식점을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단골술집이야 음식점에다가 편입시킨다 치더라도 단골양복점, 단골이발소(요새는 남자들도 주로 헤어숍엘 다니지만), 단골약국…등등 손님을 상대하는 직종이라면 어디든지 ‘단골’이라는 말을 붙일 수가 있을 것이다.
단골의 사전적 정의는 ‘늘 정하여 놓고 거래를 하는 곳이나 사람’이다. 단골집이란 한 번이나 두어 번 갔던 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요, 단골손님이란 어쩌다 한 번 찾아드는 사람은 아니다. 따라서 단골이 되었다는 것은 주인과 손님 사이에 여러 번의 마주침이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서로 간의 ‘정(情)’이 생겼을 것이다. 뭐 요란뻑적지근한 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찰진 새알만두와 같은 정이랄까? 몇 번 씹을 것도 없이 목구멍 속으로 쏘옥 빨려 들어가 버리는 새알만두의 맛, 약간은 아쉬운 듯하면서도 감질이 나는 맛을 가져다주는 정, 말이다.
명동의 단골 양복점엘 가면 양복점 주인이 허리를 재면서 말한다.
“배가 너무 나왔어요, 배가.”
조금 무례한 듯싶은 언사는 그가 내 오랜 친구이기 때문이다. 요즈음에 단골 양복점엘 다닌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런 연유이다. 그는 내 초등학교 동창이다. 내가 주경야독 고학을 하고 있을 때부터 그와 나는 명동바닥에서 함께 지냈다. 내가 대학교 시절에는 손님이 맞추었다가 찾아가지 않은 양복을 내 몸 치수에 맞게 손질을 하여서는 내게 선물하기도 했던 친구라서, 최근까지도 나는 가끔 그의 양복점을 찾는다. 물론, 아이들 결혼식이라든가 하는 일이 있을 때에 한해서 말이다.
그에게 양복을 맞추는 때에는 꼭 세 번 같이 술자리를 가진다. 그도 나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양복의 치수를 재는 날, 나는 그에게 예약금을 건넨다. 그러면 그가 “한잔 해야지.” 하며 그의 단골음식점으로 간다. 예전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셨지만, 최근에는 끽해야 쐬주 각 일병(各一甁)이다.
두 번째는 가봉(假縫)하는 날이다. 이날엔 내가 낸다. 음식점은 같은 곳으로 간다. 말하자면 단골양복쟁이를 끌고 그의 단골음식점으로 가는 것이다. 단골이 중복되니까 술을 마시는 도중 말도 많아진다.
“아줌씨, 전번보다 요맨콤 이뻐져뿌렸네.”
아줌씨는 ‘별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싫지는 않은 듯 계란말이며 나물 등속의 밑반찬을 한두 접시 더 가져다준다. 그게 바로 새알만두의 맛인 것이다.
세 번째는 옷을 찾는 날이다. 그날은 다시 양복쟁이가 낸다. 나는 늘 그렇게 1:2의 술좌석을 가진다. 그래도 그는 싫어하지 않는다.
“다음번에도 꼭 나한테 와서 양복을 맞춰라.”
“이 양복 구멍이 뻥뻥 뚫어지도록 입을란다.”
“그래, 구멍이 뚫어지면 내가 기워줄게.”
그리고는 한 동안 서로 연락이 끊긴다.
단골이용원에는 한 달에 두어 번 간다. 이용사는 젊은 여성이다. 여기서는 서로 간에 말이 없다. 그저 눈짓 몸짓으로 의자에 앉고, 목을 쳐들고 고개를 숙이고 할 뿐이다. 그래도 주인 여자는 내 취향에 맞게끔 뒷머리를 바싹 쳐 주고, 앞머리가 흘러내려오는 것도 가위질로 쌍둥 잘라내 준다. 그렇게 머리를 커트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머리를 다 깎고 나면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민다. 여인은 2천 원을 거슬러 준다. 내가 이용원 문을 밀고 나온다. 여인이 처음으로 말한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생각한다. ‘왜 또 오세요 라는 말은 안 하는 것일까’하고. 아마 굳이 오라고 하지 않아도 머리가 길게 자라면 저절로 오게 되겠지 하고 생각해서일까 라고 속으로만 짐작하면서 간단하게 대답한다.
“예.”
음식점 얘기는 양복쟁이 얘기와 함께 비벼서 해 버렸으니까 이제 술집 얘기 하나만 더 하겠다. 젊었을 적에는 단골 술집도 많이 있었다. 봉급날에는 지난달의 외상값을 갚느라고 갔다가는 코가 비뚤어져서 돌아오곤 하였다. 외상값을 갚는 날에는 술집 마담도 신이 나서 이것저것 서비스 안주도 가져다주고 정성을 다한다. ‘아쉬운 듯하면서도 감질이 나는 새알만두의 정’이 오락가락한다. 나는 기고만장이다.
“서비스가 뭐 이래? 내 이 집 다시는 오나봐라.”
“어디, 안 오고 배기나 봅시다.”
말과 함께 서비스 안주가 또 나온다. 할 수 없다.
“여기, 술 한 병 더!”
그러다 보니 또 꼴까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튿날부터는 다시 가서 한 달 내내 외상을 지고 온다. 그런데 요즘엔 달라졌다. 술집만은 단골집을 안 만들기로 작정을 하였다. 이건 마누라의 바가지 때문도 아니다. 언제라도 외상을 먹을 수 있는 단골술집이 이제는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14.11.8.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