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둔덕 밑으로 밀어낸 자전거
자동차를 둔덕 밑으로 밀어낸 자전거
이 웅 재
열다섯 살 무렵이었던가? 나는 그때 한참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요새 같으면 어린아이들도 자전거를 잘 타는 아이들이 많지만, 그때에는 자전거 자체가 흔치 않았을 때였다. 시골에서는 더욱 그랬다. 내가 살던 동네는 ‘방고개’, 지금은 강남구 세곡동(細谷洞)에 편입된 곳이지만, 당시에는 ‘깡촌’이었다. 동네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하나 있었다.
늦가을이었다. 사건이 터지던 그날에는 오래간만에 동춘서커스가 찾아와서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프리미엄조선’의 2014.07.05 자 신정선 기자가 쓴 기사를 보면 동춘이 배출한 스타들로서는 이봉조로부터 황해, 허장강, 이주일, 배삼룡, 서영춘, 남철, 남성남, 정훈희, 장항선, 하춘화…. 등이 있다고 했다. 그 동춘서커스가 공연을 한다니 온 동네가 시끌벅적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친한 친구와 함께 자전거 한 대를 빌려 타면서 공연을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우리는 복정리까지 가는 일직선의 도로를, 서로 교대로, 한 명은 운전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뒤쪽에 타고서, 몇 차례 왕복을 하기로 하였다. 길은 복정리까지 집 한 채도 없이 논과 밭만 있는 허허벌판이었다. 길은 벌판으로부터 4~5m쯤 높게 위쪽으로 돋우어진 둔덕길이었다.
고즈넉한 가을날,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우리는 신나게 달렸다. 하늘에 떠 있는 조각달도 우리의 자전거를 따라오고 있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두어 번 정도 갔다왔다 한 다음, 내가 운전할 차례였다. 공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나는 조금 서두르며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뒤쪽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쳤다. 길은 자동차라도 서로 교차하여 지날 수 있을 만큼 넓었기에 별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은 바로 우리 자전거의 뒤쪽으로만 따라오는 것 같았다. 좌측으로 비키면 좌측으로, 우측으로 비키면 우측으로. 자전거에서 내려 자동차가 지나기를 기다렸더라면 좋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 정도면 나도 자전거를 잘 타고 있는 것 아니겠어…….’ 하는 자존심, 아니 자만심 때문에 좌로 우로, 우로 좌로……. 드디어는 길 정중앙쯤에서 꽈다당! 자동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우리는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얼핏 본 자동차의 모습은 동춘서커스 못지않았다. 자동차는 둔덕 아래로 기우뚱하며 날고 있었다. 아찔했다. 순간, 자동차는 다시 평형을 찾으며 도로 아래쪽 논바닥으로 처박혔다. 자동차에서 여러 명의 군인들이 뛰어내리더니 “저놈 잡아라!”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속수무책, 우리는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
“어, 어? 아직 중학생들이잖아?”
그들은 실망하는 눈치였다. 분위기로 보아 우리가 청년이었더라면 아마도 흠씬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그들은 창곡동에 있던 ‘육군행정학교’의 군인들이었다. 서커스를 보러 오던 것 같았는데 공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자 우리처럼 속력을 내어 달렸던 모양이다. 속도가 없었더라면 그 스리쿼터는 전복되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게다가 운 좋게도 논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자동차도 멀쩡하였다. 길 한복판에서 자전거와 부딪치게 된 운전수가 핸들을 꺾었던 모양인데,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두들겨 패는 대신 자전거를 압수했다.
“너희들, 동네에 가서 우리 자동차를 꺼내 달라고 해라. 그때까지 자전거는 압수다!”
당연한 조치였다.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우리는 끽소리 못하고 동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무슨 수로 자동차를 꺼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니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바래 버려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부모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자전거 값을 물어주는 쪽이 더욱 편한 해결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서커스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공연장 앞을 얼쩡거리기만 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떼의 군인들이 공연장 쪽으로 몰려오더니 ‘아까 그놈들 어디 있어?’라고 떠들며 우리를 찾고 있었다. 처음 우리는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숨어 있었다. 그런데 보니까 그들은 예의 스리쿼터를 타고 왔을 뿐만 아니라, 그 자동차 위에는 우리의 자전거도 실려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흠씬 얻어터지더라도 자전거를 찾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싶어서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참으로 신사적이었다. 선선히 우리의 자전거를 내어주면서 앞으로 조심하라는 몇 마디 꾸중만 하고 ‘사건’을 종결시켜 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서커스 구경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건이 해결된 터라 우리까지도 뒤늦게 서커스 구경을 하였던 기억이다.
이튿날, 우리는 현장 답사를 해 보았다. 그곳은 온통 진흙 투성이였다. 자동차는 논바닥 여기저기에 베어놓았던 볏단들을 가져다가 바퀴 밑을 받치고 논바닥에서 빠져나와 근처에 있던 농로를 통해서 도로로 올라왔던 모양이었다.
그것이 내가 세 번째 죽을 뻔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 (14.12.22.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