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용상(龍床)에 앉아보니…

거북이3 2015. 1. 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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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상(龍床)에 앉아보니…

                                                                                                                                                 이 웅 재

  나는 매일 용상에 앉는다. 용상에 앉을 적마다 세월이 정말로 고맙다는 생각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 일이던가! 용상에 앉다니? 그건 모든 죄악 중에서도 으뜸인 대역죄가 아니었던가?

  1980년대 중반, 만혼의 가난한 서생이 결혼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탁자와 의자를 장만하게 되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아내와 함께 간 곳은 논현동의 어느 가구점, 고급 가구들이 가게마다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화사하고 으리으리한 것, 조촐하고 아당진 것, 중후하고 무게가 느껴지는 것 등등이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이것저것을 보러 다니느라고 다리도 아프고 눈도 피곤해질 즈음, 내 눈을 확 끌어당기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용무늬의 원목 가구였다. 튼실하면서도 조각이 아기자기한 것이 무척이나 호감이 갔다. 탁자 하나에 의자가 다섯이라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우리 식구는 나와 아내, 그리고 살림 밑천으로서의 맏딸, 그 아래로 출생 시간이 33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쌍둥이 아들, 모두 다섯 명이었던 것이다.

  양쪽 팔걸이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두 마리가 전방을 응시하고 있고, 팔걸이에 이어진 둥그렇게 생긴 등받이의 앞쪽 부분은 용틀임 비늘의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의자 바닥과 둥근 등받이를 이어주는 등받이 판에는 아가리를 떡 벌린 사자 두 마리가 위 아래로 조각되어 있었고, 그 주위에는 불로초로 보이는 풀잎들이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꼭대기 부분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고 있는 치우(蚩尤)처럼 보이는 형상이 전체적으로 투각(透刻)되었다. 또 팔걸이 아래쪽은 매화로 여겨지는 그림이 양각(陽刻)되었다. 조각 하나하나는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조금씩은 차이가 나는 모습이다. 예컨대 다리 4개의 발쪽에 해당하는 부분도 발이 향하고 있는 지점이 각기 동서남북으로 돌출되어 있는 형태 등이 그렇다.

  과학의 발달로 얼마든지 같은 모습으로 제작해낼 수가 있을 것이요, 때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내는 일도 가능했을 텐데, 이 의자는 자세히 보면 한두 군데가 다른 게 아니다. 직접 손으로 조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는 연유이다. 타원형으로 생긴 탁자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맨 위쪽을 덮은 유리판 아래로는 꿈틀거리는 용 두 마리가 자웅을 겨루듯 사납게 엉킨 모습이 양각되어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조그마한 액세서리들을 넣어둘 수 있게끔 공간이 비어 있었다. 가구점 주인은 이것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했다. 한양대학교의 어느 교수님께서 직접 오랜 시간 각고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분 성함을 적어놓지 못해서 지금은 무명씨의 작품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 의자와 탁자를 보는 순간 속된 말로 뿅 갔다. 더 이상 다리품을 팔지 않고 그것을 사기로 무언의 의기투합이 이루어져서 거금 150만 원을 주고 계약을 하고 말았다. 몇 달치 봉급으로도 좀 벅찼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 몇 년 후에는 다른 물건들을 사려고 논현동을 비롯해서 장안평의 고가구점들을 돌아다녀 보았는데, 그랬다. 용틀임 무늬의 탁자와 의자를 딱 한 번 더 보았다. 전체적인 형태는 거의 같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중에 본 그것은 우리가 샀던 것에 비하면, 여엉 아니었다. 그것은 각 부분들, 그러니까 팔걸이라든가 팔걸이에서 이어지는 등받이의 둥근 테, 다리 등의 굵기부터 아주 가냘파서 도대체가 용상으로서의 격조가 느껴지질 않았다. 그것으로 인하여 나의 용상은 더욱 더 용상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용상에 앉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보고 나에게 복종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니,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나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혼자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시간에는 예전 왕들이 따르던 왕도는 어떤 것이었을까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서, 왕 노릇 하기도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라고 추단해 보기도 하고, 내가 왕이 되지 않기를 천만 번 다행이라고 안심하기도 한다.

  구양수(歐陽脩)가 자신이 지은 문장의 상당수를 ‘삼상(三上)’, 즉 마상(馬上), 침상(枕上), 칙상(厠上)에서 구상했다고 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왕이 되어보지 못해서 그렇게 말했음에 틀림없다. 만약 그가 왕이 되어 보았더라면 그 삼상에 ‘용상’ 하나를 더 포함해서 ‘사상(四上)’을 말했어야 한다. 용상에 앉으면 모든 게 달라진다. 저절로 매사 신중하며 모든 측면을 계산하게 된다. 왕은 만기(萬機)를 주관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도 만(萬) 가지 기틀[機]이 생기는 자리, 온갖 정사(政事)를 다스려 나가야 하는 자리가 왕이 아니던가? 생각이나 행동거지 하나하나도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되는 자리가 왕의 자리이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왕자와 거지』에서 말했다.

  “내가 왕이 되면 저들에게 빵과 잠자리만 줄 게 아니라 책을 통한 가르침도 받게 하겠다. 정신과 마음이 굶어죽는 판에 배만 불러서 뭐하겠는가?”

  그렇다. 왕은 그래야 왕이다. 백성들이 의식주로 어려움을 겪게 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도 올바르게 지니도록 만들어 주고, 마음도 인정이 뚝뚝 흘러넘치도록 풍요롭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술에 많이 취했을 때라든가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어수선할 때에는 용상에 앉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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