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가리[백화제방(百花齊放)14]
박주가리[백화제방(百花齊放)14]
이 웅 재
한여름 탄천을 걷다 보면 별 모양의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덩굴을 지천으로 볼 수가 있다. 활짝 핀 꽃의 꽃부리 안쪽에는 부드러운 털이 소보록이 나 있어 어찌 보면 불가사리와 같은 모양으로 보인다. 이는 ‘고마리’의 꽃을 쏙 빼닮은 박주가리 꽃이다.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박주가리는 박주가리 과에 속하는 다년생 덩굴성 식물이다. 보통 덩굴의 길이가 3m 내외로 자라는데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우윳빛의 흰 진액이 흘러나온다. 그래선지 영어 이름도 ‘Milkweed’다. 일반적으로 흰 유액이 나오는 식물들은 몸에 좋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 편이다. 씀바귀나 민들레, 고구마나 상추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박주가리의 이 흰 액에는 약간의 독성이 들어 있어서 날것으로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 수가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랄 수가 있다. 어떤 식물이 화학물질을 발산하여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작용을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이라고 한다. 개망초는 뿌리에서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타감물질(他感物質)을 배출하여 다른 식물의 방해 없이 군락을 이루어 내는 생태파괴종의 대표적인 식물이다. 박주가리의 이 흰 진액도 일종의 타감물질이다. 소나무, 편백나무 등에서 나오는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것도 그러한 타감물질(他感物質)의 배출 현상인데 그것이 우리 인체에는 오히려 좋은 영향을 주는 현상일 뿐이다.
박주가리의 이 타감물질을 잘 이용하는 곤충이 있다. 노린재나 진딧물 종류, 그리고 왕나비애벌레가 그렇다. 왕나비를 보면 애벌레 시절에 이 박주가리의 잎을 갉아먹고 자라면서 박주가리의 독이랄 수가 있는 타감물질들을 자신의 몸속에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나비가 된 후에 이를 이용하여 천적인 새들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고 한다.
하수오는 동의보감을 보면, 중국에서 하씨(何氏) 성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먹고 머리카락이 검어졌다고 하여 하수오(何首烏)라고 했다 한다. 그는 60세에 장가를 갔고 100살이 넘게 살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백수오(백하수오) 제품의 대부분에 이엽우피소(耳葉牛皮消) 성분이 들어 있었다고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뿌리로만 보면 서로 많이 닮아 있어서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박주가리의 다른 이름으로는 새박덩굴, 약재로서는 나마(蘿藦), 그 열매는 나마자(蘿藦子)라고도 부르는데, 혈압을 낮추고 어혈을 풀어주며 무엇보다도 음위증(陰痿症: 발기부전증)에 효과가 뚜렷하며, 흰 유액은 독사나 독충에 물렸을 때 바르기도 하고 또 손발에 난 사마귀에 바르면 사마귀가 없어진다고도 한다.
박주가리의 열매(씨방)는 완전히 익기 전 푸르스름할 때 그 껍질을 까면 하얀 속살이 나온다. 고구마나 호박 비슷한 맛이 나면서 아삭아삭해서 그런대로 씹을 만하여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한다. 그 어린 순은 독성이 약해서 나물이나 쌈으로도 먹고, 씨방으로 술을 담가 먹어도 좋다.
덩굴식물은 그 감아 오르는 방향이 제각기 다르다. 등나무[藤]와 칡덩굴[葛]을 보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고 오른다. 그래서 그 둘이 함께 자라게 되면 그야말로 갈등(葛藤)을 일으킨다. 그런데 나는 놈들이 어느 쪽으로 감고 오르는지를 아무리 애를 써도 늘 혼란스러워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좌등우갈(左藤右葛)’로 알아두면 혼동할 일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좌(左)는 왼쪽 곧 시계방향으로 감고 올라가는 것[左券: 왼쪽감기]이요, 우(右)는 그 반대를 가리키는[右券:오른쪽감기] 말이다. 인동초와 박주가리는 좌권이요, 나팔꽃과 메꽃은 우권이다. 더덕이나 환삼덩굴처럼 따로 정해진 방향이 없이 제멋대로인 놈들도 있다.
익은 열매는 저절로 갈라지는데 그 안에 하얀 솜털이 달린 씨앗이 있어 바람이 불면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아간다. 때문에 그 꽃말이 ‘먼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 솜털로 도장밥이나 쌈지를 만들어 사용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