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14) 裏齋日記
(거북이 14)
裏齋日記
이 웅 재
이왕 거꾸로 간 김에 한 번 더 과거로 돌아가 본다. 1963년,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숭인기독청년면려회에서 프린트 판 85p.의숭인기독청년면려회(1963.12.25.)에서 프린트 판 85p.의 “가나안” 제4호(1963.12.25.)를 발행하였다. 필경 글씨체를 보니 절반 이상이 내 필체였다. 청년회(약칭)의 임원 조직표를 보니 내 이름은 없었다. 원래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초등학교 시절에는 전체 학생회장을 하지 않겠다고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나는 당연히 어떠한 감투도 마다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필경과 등사로 봉사하였던 모양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당시 청년회의 회장은 나보다 몇 년 선배였으며 나와는 상당히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것은 어쨌든 그 회지의 pp.55~59에 ‘裏齋日記(이재일기)’ 가 있었는데, 그것이 내 풋내 나는 문학청년 시절의 글이었다. 李雄宰란 이름 석 자도 무거워서 가운데 글자를 빼어 버리고 ‘裏齋(이재)’를 필명 비슷하게 쓰고 있었던 때였다. 그 일기를 한 번 읽어 보자.
원래의 글에는 행 구분이 너무 많아서 여기서는 웬만한 것은 사선(/)으로 구분하고, 가끔 이해를 위한 설명을 ( )안에 첨부해 둔다.
裏齋日記
×월 ×일(金) 흐림
「期待」란 單語./ 요건 참 妙한 거다.
뭔가 울렁이는 가슴을 부여안게 만들어 놓고는 현재가, 目的地인 미래와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을 때는 고 「期待」란 놈은 곤히 잠든 아가 손에서 과자부스러기를 야금야금 씹어먹는 새양쥐마냥 얌체같이 時間이 꿈틀 움직일 때마다 쥐구멍으로 재빠르게 피해가고 있는 그런 거.
뭐 빠리 유학생이라던가./ 7年이라나 10年이라나 세느江을 내려다보며 어쩌면 「自殺이란 單字밖에 生覺해 보았을지도(‘본 적이 없었을지도’라야 말이 통하는데)」모르는 어느 詩人을……. 鍾声이(왼손인지 오른손인지 팔이 하나 없는 미술 지망생의 친구)와 함께 그가 잘 아는 画家 某氏의 소개로 그(‘어느’가 좋을 듯) 「꽁생원」의 詩画 展을 돕기 위해 滿員 Bus에서 부비적 거렸건만.
Napoleon은 「不可能」이란 말을 그의 辞典에서 빼어버렸다지만 난 「期待」란 단어를 削除키로 心中 決定하고 그의 下宿을 나섰다.
아마 詩画展은…. 綴字法을 無視한, 한술 더 떠 시궁창에 버려진 뜸물속에 국수 오라기가 서로 얽혀지듯 엉뚱한 「造語」. 문제는 「造語」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쓰는 게 더욱 탈이지.
気分은 살얼음 얼 온도를 훨씬 지난 零下 二0度./ 「極東寒波」라도 그리 고약진 않겠더라만.
鬱憤은 Milk로./ 더욱 茶房 안은 한적은 한데도 소란하더군.
―어디로 가십니까?/ 타박타박 옮기는 발걸음 위에 던져진 質問.
― 누구시오?/ ― 나요./ ― 나라니?/ ― 내가 납니다.
아항?/ 그렇지 내가 나지./ 자식 제기랄./ 내가 나다 인마./ 내가 나란 말야./ 속과 겉의 문답이었구만.
― 글쎄 어디로 갈까?/ 발길 닿는 데로./ ― 運転을 해야지. 그렇지 않음 交通에 걸려./ ― 그럼 가까운 데루./ ―서울大 앞 2層서 소리만 지르는 美術家 아가씨?/ ―냇물마냥 흐르고만 싶었던 그미에게로?/ ―모두 過去./ 現在로 가자./ ―ing루 말야.
文理大 앞엔 英文學者 李敭河 氏 葬禮式에 모인 사람들로 가득.…(중략)…
×월 ×일(수) 맑음
―講義시간./ 맨 앞자리./ 교수의 肉声이 고개 위에 떨어진다. 天國에 대한 正義가 만원 Bus 속에서 끈적이는 찝찔한 땀모양, 前身의 맥을 탁 풀어제치며 졸음을 수반한다. 이젠 숫제 교수의 눈총이 머리 위에 점박힘을 인식한다. 하지만 눈은 主覌이 있다고 버티며 자꾸 아래로 감기우려고만 한다..…(중략)…
×월 ×일(토) 맑음
山을 돈다./ 300만(당시 서울 인구) 人波에 메마른 시가에서 숲의 신선함을 찾고자 山을 돈다.
山은 쓸쓸하다./ 그러나 決코 不幸하진 않다. 公園이란 곳은 모두 「이런 群像」으로 呼称되는 者들만이 모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모두 오만하지 않다. 다소곳한 마음들의 아름다움은 山만이 안다.
山은 그래 오늘도 서 있다. 거드럭대는 者들은 물러서라! 아름다운 하늘빛 설계를 꾸미는 젊은 恋人들에게는 山은 자애로운 미소를 던진다. 수풀은 그 연인들의 대화를 듣기를 즐겨한다. 도란도란 하는 얘기는 숲을 잠들게 하고 있다. 꾸벅꾸벅 졸다가 저녁이 된다. 노을이 뜬다. 연인들은 가버리고 그들이 앉았던 따뜻한 자리만이 남았다. 山바람은 그걸 쓰다듬어 보고 수풀은 연인들이 가버리고 나서 쓸쓸하다. 거기엔 밤의 공포가 있는 것이다. 그래 山은 밤마다 늙어만 간다. 나도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炭燹(탄선: 이런 낱말이 있었나)의 孤兒에게는 시커먼 타다남은 시가지의 고층건물들의 우뚝 막아선 콩크리트壁 , 荒凉한 廢墟에서 그 壁에 막혀 쓰러지며 突出口를 찾고 그 꽃도 피지 않은 오욕의 大地 위에서 人肉의 生을 씁스름한 내음으로 맡아가며 그래도 山을 닮아가야겠다.
(15.8.28.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