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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메르스

거북이3 2015. 12. 2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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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메르스

                                                                                                                               이 웅 재

   크리스마스가 코앞인 12월 23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렇게 요란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종료된 날인데 말이다. 2015년 5월 20일 바레인에서 귀국한 첫 번째 감염자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대한민국은 온통 난리가 났었다. 방역망은 뻥 뚫리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기침을 하는 사람을 있으면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사방 팔방으로 흩어졌다. Middle East를 Korea로 바꾸어 ‘KORS’라고 해야 한다는 말까지도 생겨났다. 186명이 감염되었고 38명이 숨졌던 메르스, 딱 218일을 앓았다고 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너 때문에 많은 것을 배웠다. 고맙다, 메르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제일 먼저, 나는 총리가 왜 필요한지를 처음으로 알았다. 중앙일보에서 이훈범이 말한 “아무리 변변찮은 총리라도 있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터다”(15.6.13.26면 오피니언)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총리 인준을 계속 거부하고서도 메르스 사태를 질타하는 야당에 대해서 신물이 난 것도 당연지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매사 ‘컨트롤타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겸하여 뼈저리게 느껴 보았다.

   다음, 나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후진국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신물이 났다. “괜찮겠지, 나 하나쯤이야”하는 지도자급 인사들의 골프 회동은 워낙 지체 높으신 분들이 하시는 일이라서 나무라기가 힘들었지만, “출근하기 싫어서” 메르스에 감염됐다고 거짓말을 한 20대 여인 때문에 보건당국이 ‘발칵’ 뒤집혔다는 조선일보 기사(2015.06.13.)를 대하고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마 반발하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들만 사람이냐, 나도 사람이다, 어쩔래? 할 말이 없다. 아직도 후진국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세 번째, 나는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기압차를 이용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유출을 막는 시설이 되어 있는 ‘음압병실(陰壓病室)’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을 난생 처음으로 들었던 것이다.

   아울러 나는 ‘병원에서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을 때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병동 전체나 일부 병실을 의료진, 입원 환자와 함께 봉쇄하는 것을 가리켜 코호트(cohort) 격리’라고 한다는 것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알고 나면 뿌듯한 느낌이 들어야 할 터인데, 이 경우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러면서 왜 사니?’ 하는 물음만 수십 번도 더 하면서 지냈다.

   다음으로, 병원은 결코 순례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배우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는 ‘연때’를 무척이나 중시한다. 연때가 맞아야 시집 장가도 가게 되고, 연때가 맞아야 취직도 되고, 아, 무엇보다도 연때가 맞아야 병도 쉽게 고쳐진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을 순례한다. 느긋하게 한 병원엘 계속해서 다니질 못한다. 자기가 찾았던 병원 의사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돌아다니다 보면 연때가 맞는 곳이 생긴다는 철석같은 믿음, 그 때문에 환자들은 이병원 저 병원, 병원을 순례한다. 그게 메르스 확산의 주범이기도 했었단다. 성지가 아닌 병원을 왜 순례하는가? 그런 순례자를 맞는 병원도 문제였다. “아, 그 병원에서는 그런 치료만 해 주었나요? 그러면 안 되죠. 앞으로는 저희 병원만 믿고 오세요.” 환자와 의사, 죽이 맞아도 보통 맞는 게 아니다. 그래서 병원은 순례지가 되었었다.

   또 하나,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세계는 1일 생활권이 틀림없었다는 점도 확실하게 확인할 수가 있었다. 메르스의 ‘메’자만 들먹여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판국이니, 나무란다고 될 일인가? 한창 우리나라 경제를 신나게 만들어 주던 유커들이 하루아침에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었다. “왕서방 님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한때 ‘짝퉁 왕국’이었던 중국, 이젠 한 사람 한 사람이 고귀한 분들이신데, 어떻게 해야 이분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있을지? 마지막 판세를 뒤바꿀 수 있는 묘수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나 할까? 환자와의 직접 접촉 장소인 ‘병원’ 아닌 곳에서는 전염이 안 된다구요.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그런 소리는 우리 내국인에게조차 먹혀들지 않는 말들일 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건 좀 뜻밖의 소득인데, 정말로 메르스가 고마운 가장 커다란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언데 그렇게 요란뻑적지근하게 서두를 장식하고 있을까 여기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다, 나는 팔불출이 되기로 했다.

   평소에는 늙은이들만 살고 있는 집에 전화 올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메르스가 유행이 되고 나서는 전화통에 불이 난 것이다.

   “엄마, 오늘 밖에 나가지 말아요.”

   “아빠가 오늘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다든데….”

   “안 돼요. 엄마가 아빨 외출하지 못하도록 꼭 붙들어 두세요.”

   미안합니다. 한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여러분들,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놈의 핸드폰이란 건 왜 생겼는지…. 수시로 확인 전화가 오니 거짓말인들 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그래, 내가 졌다.’ 불만 섞인 목소리로 대답은 해 주지만, 실은 기뻤다. 기쁘기 그지 없었다. 부모 유산을 일찍 상속받기 위해 살인마저 대수롭지 않게 행해지는 ‘시상’인데…. 돈 한 푼 보태주는 일 없는 엄마 아빠를 그토록 챙겨주고 걱정해 주는 아들 딸이 있다는 것,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제일 마음 뿌듯한 일이었다. (15.12.25.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