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7) 대영박물관, 술도 마실 수 없는 디오니소스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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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문화 체험기 7)
대영박물관, 술도 마실 수 없는 디오니소스가 안타까웠다
이 웅 재
그런데 ‘해’는 왜 ‘sun’이라고 하느냐고? 그건 ‘해’는 고유명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sun’은 대문자로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 생각해도 그렇지 않은가? ‘해’와 동등하게 생각되는 ‘달’이나 ‘별’을 고유명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면서 ‘해’를 고유명사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편인데, 잘못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해’란 우리 태양계에서만 하나일 뿐이지, 더 넓은 우주라는 개념에서 보면 여럿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지 않은가?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시의 수호신인 처녀신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으로 그 신전 안에 있던 많은 조각상들이 뜯겨간 것이다. 조각상들은 대체로 머리가 없는 것들이 많은데, 전쟁에서 이기면 상대국 신들의 목을 베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만히 보니 그들 가운데 머리가 온전한 신이 하나 보이는데 술의 신 디오니소스란다. 그런데 그는 머리는 온전하지만 술을 마실 수 없도록 손목이 잘라지고 없어서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집트에서 약탈해간 ‘테베(Thebes)의 미라(일명 불행의 미라)’나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를 제공해 주었던 로제타스톤(Rosetta Stone) 같은 유물들은 모두가 그러한 전리품들이 아니던가? 로제타 스톤 바로 옆에 보이는 고대 이집트의 최절정기인 제 19왕조의 3대 파라오(Pharaoh: 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 ‘람세스 2세’의 흉상은 오른쪽에 구멍이 하나 나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것은 나폴레옹 원정대가 운반하려고 뚫어놓은 것이라는데 정작 소유주는 영국이 되어 버렸다. 일설에는 모세의 출애급 시 모세를 잡으러 쫓던 파라오가 람세스 2세라고도 한다. 홍해가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바람에 모세를 잡지 못했던 람세스 2세는 이제 구멍까지 뚫린 채 ‘대영박물관’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대영박물관’의 전시물들은 자국인 영국과 관련된 유물들이 별로 없는 실정이 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박물관(Smithsonian Institution)’은 전시품만 모두 1억 4천만 개로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지만, 거의가 기증받은 물건들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약탈한 물건들을 전시하는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유럽의 박물관들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그러한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영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다. 운영은 기부금으로 충당한단다. 그것 가지고도 부족해서인지 이곳에서는 사진을 찍어도 무방하다. 만지지만 말라고 한다. 그런다고 해서 약탈된 문화재들이 영국의 것으로 되지는 못할 텐데 말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집필을 하던 공간이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여기에서 집필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곳은 공산주의자들이 성지로 여기고 있는 곳이란다.
“일행을 잃었을 때는 이리저리 찾으러 다니지 말고 잃어버린 그 자리에 꼼짝도 말고 있으라고 했잖아요?”
동선(動線)을 되짚어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는 주문이었을 텐데, 그 목소리에는 내가 ‘대영박물관’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짜증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가 재치 있게 그런 분위기를 눙치고 있었다.
“박물관이 살아있으니까 그랬겠지요. 앞으로는 잘 해 나갈 거예요.”
우울한 얘기만 한 것 같아서 앞서 한번 언급했던 빨간 공중전화 부스 사진 하나를 소개하면서 이번 꼭지를 끝맺는다. 사진을 찍었던 장소는 어느 강변이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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