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26) 구멍이 뿅뿅뿅 뚫려 있는 콜로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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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문화 체험기 26)
구멍이 뿅뿅뿅 뚫려 있는 콜로세오
이 웅 재
4/24 (금) 오후 비 잠깐.
오늘도 식사는 6시, 출발은 7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던가? ‘부지런하라’는 것을 강조하여 아침형 인간이 되라는 말이겠는데, 속담 종류가 대부분 그렇듯이 100% 옳은 말은 아니다. 벌레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벌레는 새에게 잡아먹히기 위해서 일찍 일어난 꼴이 되지 않는가? 나 같은 늦잠꾸러기가 만약 벌레였다면 그야말로 다행 중의 다행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해외여행에서는 아무래도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기다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될 것이 틀림없으니, 불평불만 붙들어 매고 가이드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올리브 밭이 펼쳐진다. 더러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검은 색 그물이 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저건 지난 가을 올리브를 수확할 때에 쳐 놓았던 그물이라고 한다. 저렇게 그물을 쳐 놓고 나무를 흔들어서 열매를 떨어뜨려야 상하지도 않고 또 쉽게 모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저런 수확과 관련된 일 말고는 거의가 기계로 작업을 한단다. 하기야 약을 뿌려주는 일도 거의 없다니까 일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처럼 장마철이 있으면 장마가 그친 후 병충해가 따르게 마련이라서 농약을 쳐 주어야 하겠지만 이곳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니, 이곳 농부들, 얼마나 편할까 싶다. 서유럽 쪽에서는 사과를 먹을 때도 껍질째 먹고 있었는데, 그게 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배나 계란을 먹는 것을 보면 소주잔 같은 작은 그릇에 넣고서 숟가락으로 파먹고 있었다. 계란의 경우에는 살짝 덜 익혀서 파먹는다.
가이드는 어제 내가 소매치기를 당할 뻔했던 얘기도 해주면서 조심들을 하란다. 그리고는 내가 계속 메모를 하는 것을 보더니, 프랑스의 빵 크루아상(croissant) 얘기를 꺼낸다. 밀가루 반죽에 칼집을 깊게 내고 그 사이에 버터를 넣어 돌돌 말아서 초승달 모양으로 만든 빵을 크루아상 빵이라고 하는데, 지방분이 많으면서도 짭짤하고 담백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빵이다. ‘크루아상’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빵을 프랑스 고유의 빵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는 이슬람 제국에서 먹던 빵이란다. 이슬람의 오스만 왕조가 오스트리아(Austria: ‘Aust’는 ‘동쪽’, ‘ria’는 나라, 곧 ‘동쪽의 제국’이라는 뜻)를 침공했을 때 빵도 함께 전해졌고, 루이 16세의 왕후가 된 오스트리아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의해 프랑스에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백과사전이나 요리책에서 보듯 기록과 정리를 잘해 놓기 때문에 웬만한 것들은 프랑스에서 생겨난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콜로세오(Colosseo) 가는 길은 차가 무척 막혔다. 길 양쪽으로는 저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옛날 아파트 옥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안테나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도로 중앙은 광고판을 세워 놓았거나 주민들의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로마는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온다고 하여 지하주차장이나 지하철도 별로 없는 실정이라서 도로가 이렇게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세워져 있는 차들을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 마티즈 급의 작은 차나 자전거 따위가 많았다. 주차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때문이리라.
먼저, 기독교를 공인하여 성인으로 추앙받는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의 개선문에 도착했다. 여기엔 황제의 전투장면을 보여주는 부조상(浮彫像) 따위가 많았다. 1960년에는 로마올림픽 마라톤 결승선이 되기도 했던 이 개선문은 파리 개선문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조금 더 가니 콜로세오가 나타났다. 콜로세오는 ‘거대하다’란 말에서 온 말로 영어로는 콜로세움(Colosseum)에 해당하는 원형 경기장이다. 서기 80년에 완성된 이 경기장은 티투스(Titus) 황제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10만 명의 노예를 끌고 와서 세웠다고 한다. 이 경기장은 황제나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이나 여성, 노예들까지도 이용할 수 있었던 건물이기는 하였지만, 건축 당시의 많은 인명 희생을 위시해서 검투사들의 목숨을 건 경기, 맹수와의 싸움 등으로 피를 많이 흘리게 되었던 곳이다. 이 경기장의 건축 양식은 현재 축구장의 원형이 되었다고도 한다. 현재 이 콜로세오는 원형의 틀만 유지하고 있을 뿐, 여기저기 많은 대리석의 잔해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되어 버렸다. 15세기 이후 로마의 집권자들이 이곳의 자재를 마음대로 가져가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건물을 짓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물을 보면 온통 구멍이 뿅뿅뿅 뚫려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마도 전쟁 때 총을 맞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옛날에는 총이 없질 않았는가? 그 구멍들은 대리석에 박혀 있었던 보석 따위를 빼어가서 저처럼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설명이었는데, 어안이 벙벙해서 입이 떡 벌어졌다. 가이드가 말한다. 제복 입은 사람의 사진은 찍지 말라고. 돈을 내란다는 것이다. 벌어졌던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는다. (16.3.6. 1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