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27) 로마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잃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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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문화 체험기 27)
로마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잃은 것만 같았다
이 웅 재
콜로세오 근처에는 대전차경기장이 있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25만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장방형으로 된 길쭉한 건물이 있었던 경기장이었다. 로마의 건국 신화에서는, 경기장의 오른편에 팔라티노(Palatino) 언덕이 있었고, 여기서 쌍둥이 형제인 레무스(Remus)와 로물루스(Romulus)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나중에 세력 다툼을 벌이다가 로물루스가 형인 레무스를 죽이고 마을을 세운 것이 로마의 기원이라고 한다.
당시 로마에는 여자가 드물어서, 로물루스는 나중 대전차경기장이 세워진 이곳에서 큰 파티를 열면서 인근의 사비니(Sabine) 사람들을 딸과 아내까지 동반하여 초청을 하였단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자 로마 사람들은 사비니 여인들을 습격, 강간하고 남자들은 쫓아버렸다. 로마인들과 함께 살게 된 여인들의 지위는 노예와 다름이 없었다고 하였으니, 피로 얼룩지게 된 대전차경기장의 탄생은 당연한 결과이었으리라.
유럽인들,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이 골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역동적인 운동, 예컨대 산악자전거나 축구 등을 좋아하는 일 역시 이와 같은 역사와 연관이 있는 일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잊기 위해서, 아니, 25인승 이상의 버스가 진입할 수 없는 거리라서 우리는 1인당 60유로씩을 내고 벤츠 투어를 하였다. 벤츠이기는 했지만, 영업용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승차감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길치’인 나는 거기가 거기 같았고, 여기가 여기 같아서 한마디로 무엇을 어떻게 보았는지 뒤죽박죽이었다. 그저 벤츠를 타고 ‘장정 4명의 어깨 넓이’인 로마의 골목골목을 ‘어정쩡하게 거들먹거리며’(?) 누볐다는 것밖에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다음, 우리는 영화 “로마의 휴일”의 무대였던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스페인 광장’은 과거 이 근처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광장 위쪽에는 종루 2개가 양쪽으로 솟아 있는 데이몬티(dei Monti) 성당이 있고, 그 앞에는 오벨리스크(Obelisk : 그리스어로 ‘쇠꼬챙이’라는 뜻의 방첨탑[方尖塔])가 서 있으며, 거기서부터 스페인 계단이 넓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오벨리스크는 4각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높고 좁으며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다가 피라미드를 닮은 상층부를 지닌 기념물이다. 고대에는 한 덩어리의 암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방첨탑은 태양 숭배 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문양을 새겨 놓았다.
스페인광장은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내려오는 장면으로 유명해져서 관광 명소가 되어 요즈음에는 금싸라기 땅이 되었단다.
광장 앞쪽에는 바르카차(Barcaccia) 분수가 있다. 바르카차는 ‘낡은 배’라는 뜻으로, 옛날 인근 강물의 범람으로 이 광장이 물에 잠겼던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낡은 와인 운반선 한 척이 광장에 남아있었고, 그것을 본떠서 만든 분수란다. 얼핏 보면 물고기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어서 로마에 현존하는 300여 개의 분수 중 가장 큰 규모이자 제일 아름다운 분수라는 트레비(Trevi) 분수로 갔다. 그 이름은 ‘세 갈래길(Trevia)’에서 온 것이라고 하는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 그리스에서는 넵투누스[Neptunus], 영어 명으로는 넵튠[Neptune])이 마차를 타고 있는 모습 아래쪽으로 잔잔한 바다와 파도치는 바다를 상징하는 수반(水盤)이 있었다고 한다. ‘있었다고 한다’라고 표현한 것은 나는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왜? 안타깝게도 분수는 공사 중이라서 흰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 가서는 동전을 던져야 한다. 한 번 던지면 로마엘 다시 올 수 있고, 두 번이면 사랑에 빠지게 되고, 세 번은 그 사람과 결혼이 성립된다든가……내용은 말하는 사람마다 제멋대로 조금씩 변형되기도 한다지만, 나에게는 로마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은 것만 같았다. 분수에 던져지는 동전만 1년에 몇 억 정도라는 ‘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동전이 다 모여드는 분수를 보고 싶었는데 ‘허당’이었다. 가이드의 말을 빌리면, 요즘 이탈리아 동전은 한국에서 도안을 만드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티칸에서 찍어내는 것도 그렇고, 헬멧도 한국의 것을 선호한다고 하니,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만세’다.
분수는 못 보았지만, 그 앞쪽에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는 ‘트레비 카페’가 있어서 거금 2.5유로씩을 내고 사 먹어 보았다. 물론 화장실은 ‘떳떳하게’ 공짜로 다녀왔음을 첨언한다.
(16.3.7. 15매, 사진 4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