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서유럽 문화 체험기 34) 돈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예술을 후원한다

거북이3 2016. 4. 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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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럽 문화 체험기 34)
              돈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예술을 후원한다                                                                                                                                             이   웅   재

 

  4/26 (일) 아침 안개. 비 온다고 하더니 흐리기만 함.
  오늘은 피렌체(Firenze)의 날이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Toscana) 주의 주도(州都)로 아르노(Arno) 강의 양안(兩岸), 구릉지역에 위치한다.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고 한다. ‘피렌체’란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영어로는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가 기원전 59년 아르노 강가에 식민지를 세울 때,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명명하였는데, ‘플로’는 ‘꽃’을 의미하는 말로 ‘플로렌티아’란 ‘꽃피는 마을’이란 뜻이란다. 이름처럼 르네상스의 본고장, 르네상스의 꽃이 피어난 도시라고들 한다. 아름다운 도시답게 부호들의 별장도 많으며 세계 10대 청정지역이다. 지금도 피렌체는 ‘문화의 도시, 양반(귀족)의 도시’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컬한 점은 피렌체가 부유해진 것은 군수물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점이다. 돈을 벌게 해준 병사들은 가죽치마를 입었다고 했다. 바지보다는 활동성이 좋기 때문이었다. 사실 신체 구조상 치마는 남자들이 입는 것이 좋고 반대로 바지는 여자들이 입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것은 어쨌든 그 병사들이 쓰는 투구를 보면 전쟁 중인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가 있었다고 했다. 전쟁 시에는 투구에 말꼬리 장식을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그 장식을 빼어버렸다고 하니, 말꼬리는 전쟁을 의미하는 물건이었다고 하겠다.
  돈은 권력을 낳는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전쟁 지향성을 호도하기 위해서 예술을 사랑하는 체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한다. 피렌체에 많은 예술가들이 모였고, 예술의 도시, 문화의 도시로 알려지게 된 원인(遠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돈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예술을 융성케 하고, 전쟁이 사라진 후에는 예술만이 남는다. 그리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을 영웅시하여 그들을 찬양하는 시를 짓고, 소설을 창작하며, 연극을 만든다. 그들이 평화를 쟁취하여 주었다는 구실을 내세워서 말이다.
  가이드의 말이 미국에서 9․11사태 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물었단다.
  “꼭 가보고 싶으신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대답은 하나는 나라, 다른 하나는 도시였는데 그게 바로 스위스와 토스카나였단다. 이탈리아는 관광 수입을 위한 홍보를 별로 하지 않는 나라, 배짱 튀기는 나라인데도 꾸역꾸역 관광객들이 제 발로 찾아들 온단다. 유물과 유적이 많고, 뛰어난 예술가들이 살았고,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많아서다. 길가에는 서양 개나리, 아까시 나무와 개양귀비가 많았다.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오늘은 일요일, 관광객들을 위해 화물 트럭 운행을 금지시키는 날이란다. 우리의 운전기사가 차내의 온도도 잘 맞추지 못했더니 가이드 해바라기정이 수다를 떤다.
  “운전수가 어리바리하네요. 그러나 마음씨는 착한 듯해요. 손을 보니까 반지도 없는 걸 보니 결혼도 안 한 듯하네요. 그런데 사장 아들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실망이에요. 사장 아들은 연신 여기저기 전화해대고 받고 하느라고 바쁜데 그렇진 않잖아요? 하지만 뭐, 얼굴도 잘 생기고, 그만하면 울 엄니도 합격점을 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갑자기 현지 가이드 함이 마이크를 잡아 뺏는다.
  “새로 들어온 뉴스, 운전수 오른 손에 반지가 있어요. 결혼했다구요. 애들도 셋이나 있다지요, 아마. 그 정도면 부부간 금슬도 좋은 편이지 않나요?”
  해바라기 정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줄은 알지만, 심심치 않아서 좋았다.
  피렌체에는 골목이 많다. 골목이 많으면 얘깃거리도 많다. 골목 하나하나마다 제 얘깃거리, 제 비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골목은 그래서 은밀하다. 골목은 따라서 짜릿하다. 골목은 때문에 재미있다. 그러한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서 베키오(Vecchio) 궁전으로 갔다. 현재 피렌체의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베키오’라는 말은 오래되었다는 뜻이란다. 오래된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주고, 그러한 마음으로 구석구석을 살피면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 보인다.
  베키오 궁전 앞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모조품이 서 있다. 원본은 미술관으로 옮겨지고 원본이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모조품은 원래의 진품을 대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모조품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서 나는 그 다비드 상을 아주 세밀히 관찰했다. 눈앞에 진품이 없으니 얼마나 진품의 면모를 갖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모조품이 그대로 진품이었다.
  그 앞쪽이 시뇨리아(Signoria) 광장이다. ‘시뇨리아’라는 말은 남성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남자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되어서 그 남자들이 모여서 투표하는 광장이라는 의미로 붙은 명칭이란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남아 선호 사상이 꼬리를 내리고 여아를 선호하게 되었단다. ‘시뇨리아’라는 광장의 명칭도 앞으로는 여성과 관련된 다른 말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광장의 왼쪽으로는 이곳을 지배했던 메디치(Medici) 가문의 코시모(Cosimo) 1세의 청동 기마상이 있고, 그 오른쪽 광장 중앙쯤에는 바다의 신 넵튠(Neptune)의 분수가 있다. 트레비 분수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넵튠을 여기에서 만나보게 되니 반가웠다. 넵튠도 나를 반길까? 그런데 넵튠의 시선은 나에게로 향하지를 않고 있었다. 내가 제작자였다면 쳐다보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넵튠의 시선 처리를 해 주었을 텐데, 아쉬웠다.
             (16.4.5. 15매, 사진 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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