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문화 체험기 37)카사노바는 탄식의 다리를 두 번 건넜다
서유럽 문화 체험기 37. 카사노바는 탄식의 다리를 두 번 건넜다.hwp
(서유럽 문화 체험기 37)
카사노바는 탄식의 다리를 두 번 건넜다
이 웅 재
시원하게 배설을 하고 나니, 따끈한 차라도 한 잔 마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뺐으니까 채워넣자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두리번거리다가 노천에 의자가 놓여진 ‘Florian(꽃과 같은)’이라는 카페를 발견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카페는 1720년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카페로 괴테, 바이런, 나폴레옹, 루소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애용하던 곳이었다. 카사노바는 당시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을 허용하던 이 카페를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커피가 처음 들어온 곳도 베네치아란다. 아쉬운 대로 사진만 한 장 찍고 돌아서는데, 얼굴을 온통 하얗게 칠을 한 집시(Gypsy)가 눈에 들어왔다.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서는 빨간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이곳 베네치아는 역시 가면의 도시였다.
‘가면’은 베네치아의 명물이다. 여기서 판매되는 가면들은 거의가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들이라서 똑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엄격한 신분 사회였기에 2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면 축제 ‘베니스 카니발’ 기간만큼은 누구나 평등하게 축제에 참여하기 위하여 중세의 복장을 하고 가면을 쓰고 참가했단다. 귀족들, 심지어는 총독까지도 자신의 신분을 숨길 수가 있어 자질구레한 예의 따위를 접어둘 수가 있었다. 연애를 하기에도 좋아 향락문화가 발전하여 고아원이 많이 생겼다던가?
‘Florian’의 맞은편에는 가면을 비롯해서 유리 제품이나 액세서리, 옷 가게 등이 주욱 이어져 있었으나 역시 문을 열고 있는 가게는 많지가 않았다. 여성 분들은 그런 가게들에 관심이 많아서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도 그 뒤를 따라다녔더니 다행스럽게도 사진 몇 장이 남았다.
베네치아를 베네치아답게 기억하는 방법에는 곤돌라(gondola)를 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곤돌라는 ‘흔들리다’라는 뜻을 지닌 말로, 작은 케이블카(cable car)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곳의 명물인 작은 배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곳의 교통수단은 주로 이 곤돌라와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Vaporetto)인데, 좁은 골목길(물길)을 다니려면 곤돌라가 제격일 뿐만 아니라, 빠질 수 없는 관광 수단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곤돌라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면 어쩌지요? 좁은 골목길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며 위태로워 보여서 물어 보았더니, ‘놀라지 말고 까치발로 서면 됩니다.’ 하는 답이 돌아왔다. 허리 정도까지만 물에 잠긴다는 것이다.
앞뒤가 뾰족한 이 곤돌라는 원래 장례용으로 사용하던 배였는데, 이곳의 세력이 쇠약했을 때 인근 여러 도시에서 몰래 침입하여 처녀들을 강제로 납치해 가는 일이 자주 벌어졌고, 그럴 때마다 이곳 청년들이 납치된 처녀들을 구출하느라고 이 곤돌라를 사용하였단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곤돌라 사공은 남성이었다. 이를 부당하다고 소송을 걸어 승소한 여성이 한 사람 있어서 여성 곤돌리에(Gondolieri: 곤돌라 뱃사공)가 딱 한 사람이 생겨났다. 이 곤돌라는 예약 없이는 탈 수 없을 정도로 인기란다.
곤돌리에는 최고의 인기 직업이다. 관련 학교를 수료하여야 함은 물론 최소 4개 국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다가 이곳 베네치아에서 태어나고 또 살고 있어야만 한다. 가격도 만만찮아서 고급 승용차보다 비싸고, 곤돌리에의 수입도 괜찮다고 한다. 한때에는 만여 척이 넘는 곤돌라가 있었고, 그 색상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너무 사치스러워 검은색으로 통일시켰다고 한다.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의 수많은 다리 중에서 총독부가 있었던 두칼레 궁전과 피리지오니 누오베(Prigioni Nuove) 감옥을 연결했던 ‘탄식의 다리’를 지날 때에는 다시 한 번 카사노바를 생각하게 되었다. 탄식의 다리는 두칼레 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던 죄수들이 감옥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면서 큰 한숨을 내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다리를 거쳐 감옥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그 누구도 다시 나오지 못했는데, 카사노바가 5년 만에 유일하게 탈옥을 해서 유명해진 다리다.
베네치아는 자동차가 없다고 해서 청정 도시로 생각하기 쉽지만, 수상 도시이다 보니 안개가 심하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의 높이가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해마다 몇 cm씩 아드리아 해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그래서 1층에 커다란 부표를 달아놓은 집들도 볼 수가 있다. 비가 많이 내릴 때에는 해수면이 급속히 상승해서 성 마르코 광장이 물에 잠기기도 한단다. 더구나 주택가 사이의 수질은 거의 하수도에 가까운 형편이다. 기온이라도 올라가면 냄새는 더 심해지고 모기마저 번식하여 여름에는 상당히 고역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베네치아 시민들의 자부심은 상당한 편이라서, 최근에는 집값이 뛰어올라 웬만한 집은 10억이 훌쩍 넘어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은 신시가지로 나가고, 과거 거상들이 거주했던 저택들은 부유층의 거주지로 탈바꿈을 했다.
베네수엘라(Venezuela) 라는 국가 이름도 이 베네치아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미 대륙의 이름이 되었던 아메리고 베스부치(Amerigo Vespucci)가 아마존 강 유역을 탐사한 후 북상하다가 호수 위의 수상 가옥에서 생활하는 원주민들을 보고서, 수상도시 베네치아와 닮았다고 하여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으로 ‘베네수엘라’라고 명명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나라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에펠탑이나 피사의 사탑 근처처럼 소매치기가 들끓는 곳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베네치아는 여러 모로 매력적인 도시였다. (16.5.1. 15매, 사진 8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