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문화 체험기

(발칸 문화 체험기 4) ‘속 썩이는 사람’이 따로 있나

거북이3 2016. 7. 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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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칸 문화 체험기 4)

                             ‘속 썩이는 사람’이 따로 있나 

                                                                                                                                                이 웅 재


   4/14(목) 아침 보슬비.

   아침 식사를 하려고 호텔 식당엘 갔더니, 어제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내가 반가워서 그쪽 자리로 가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서로 담소하였다.

   아내가 말했다.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면서요?”

   그렇다. 비엔나커피는 아메리카노에 하얀 휘핑크림이나 생크림을 얹은 커피로 정식 이름은 아인슈패너 커피(Einspanner Coffee)다. 옛날 마부들이 주로 마시던 커피란다. 마차에서 내려 카페로 들어가는 것이 번거로워서,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생크림을 듬뿍 얹어 쉽게 쏟아지지 않게 만든 커피를 마신 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아인슈패너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라는 독일어라고 한다.

   “그래도 비엔나커피를 달라고 하면 준다던데요.”

   그렇게 비행기의 옆자리에서 지낸 인연으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 보니 아침 식사 시간이 즐겁게 지나갔다. 이제는 숙소에 올라가 짐을 가지고 나와서 블레드(Bled) 섬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짐을 끌고 호텔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다시 그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내도 아주머니도 반가운 기색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 이국땅이라서 조그마한 인연이라도 매우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빨리 와요. 옆자리에 앉아서 가자구.”

   아내의 걸음이 빨라졌다. 아내의 걸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빨라 보이지 않는데, 한동안 걷다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뒤쳐진다. 그러니 다리까지 아픈 나야 그 빠른 걸음을 뒤쫓아 가기에만도 바쁘다. 빨간 색의 버스다. 허겁지겁 짐칸에 짐을 싣고 버스에 오른다.

   “어서 오세요.”

   젊은 아가씨가 반긴다. 누구지? 가이드인가? 우리 가이드는 남자였는데…. 그리고 어제 호텔로 오는 도중 현지 가이드는 없다고 한 것 같았는데…. 아내는 그 아주머니가 앉은 비교적 앞쪽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뒤를 한 번 돌아다보았다. 나도 따라 돌아보았다. 의외로 남자들이 많았다. 다시 젊은 아가씨가 버스의 앞자리에 와서 서더니, 인원 파악을 한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내도 이상한 모양이었다.

   “아가씨는 현지 가이드인가요?”

   아내가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는 인원 파악에 골몰한 나머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응? 2명이 많은데….”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아내가 다시 물었다.

   “여기 KRT인가요?”

   여행사 이름을 묻고 있었다. 그리고서는 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벌떡 일어섰다.

   “여보, 우리 잘못 탔어요!”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우리 둘은 후다닥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기사에게 사정사정하여 짐을 다시 꺼내고는 호텔 쪽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우리 팀은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같은 빨간색 버스지만, 앞 유리창에 우리 가이드 이름이 또렷하게 씌어 있는 버스였다. 그걸 못 보고 엉뚱한 차를 탔던 것이다. 문제라면 비행기 옆자리의 그 늙수그레하면서도 마음씨 너그러워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이유 없이 친근미를 풍기는 아주머니가 그저 반가워서 앞뒤 가리지 않고 따라 나섰던 것인데, 아마 그 아주머니도 우리를 마음 편하게 보았었기에 “빨리 와요.”라고 우리를 반겼던 것일 터였다.

   그 아주머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는 어쩌면 겹치는 여정도 있을 법한데, 더 이상 만나게 되는 일이 없었다. 악연이었을까, 선연(善緣)이었을까? 앞으로의 삶의 여정 중 혹시라도 어느 길목에서 또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이 남아 있을까? ‘속 썩이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만일, 우리가 그 아주머니가 탄 버스를 타고 떠났더라면, 그보다 더 ‘속 썩이는 사람’이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그런 사정 따위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이드는 한창 신나게 안내를 하고 있었다. 서양 음식은 대체로 짜서 물을 많이 먹어야 하는데, 이곳의 물에는 석회질이 많이 섞여 있어서, 반드시 생수를 먹어야 한단다. 그리고 어차피 사 먹어야 할 형편이라면, 가급적 버스 안 냉장고에 있는, 기사가 판매하는 생수를 사 ‘드시면’ 고맙겠다고 한다. 요 부분에서는 분명히 ‘드시면’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상하게도 그 표현이 늘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모두는 가이드의 그 말을 따라 ‘착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새로 갈아탄 우리의 버스는 신형으로 깨끗하고 무척 좋았다. 기사는 더 좋았다. 시간만 나면 버스를 닦아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무리 바빠도 절대로 100km를 넘어 달리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13시간 이상은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때로 장거리 운행을 하여야 할 경우에는 교대로 운전을 할 기사가 동승하기도 한단다. 우리나라의 경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장거리 운행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많은데, 이곳의 기사들에게 배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변의 나무들에는 마치 무슨 열매라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시커멓고 둥근 덩어리들이 많이 보였다. ‘겨우살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구하기 힘든 생약 재라서 남아나지를 않았을 터인데…, 아까웠다. 아마도 언젠가는 저것들도 어떤 약삭빠른 한국인의 손에 의해 남아나지 않을 날이 오지는 않을까? (16.6.30. 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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