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문화 체험기 9)기도를 드릴 땐 반드시 눈을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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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문화 체험기 9)
기도를 드릴 땐 반드시 눈을 뜨고…
이 웅 재
동굴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앞쪽의 기념품 상점도 들러보고 ‘화장(化粧)’도 한 다음, 크로아티아(Croatia)의 오파티아(Opatija)로 이동하기 위하여 버스에 올랐다. 국경 근처에 이르니 오른쪽으로는 무덤이 보이고, 집들은 다른 곳에 비해 고급스럽게 보이는 것이 상당히 부촌인 듯싶었다. 국경을 지나는 일은 후진국일수록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담당하는 직원이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더욱 힘들다고 한다. 공산주의 시대의 권위의식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여권을 걷어가는 국경의 경찰관들을 두고 가이드는 말했다.
“저분들, 시간관념이란 게 없어요.”
기분에 따라 국경을 넘으려는 관광객들을 마냥 기다리게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 기사나 가이드들은 눈치가 빨라야 한다. 여권을 거두어 갈 때 급행료를 끼워 준다든가 최소한도 맥주 두어 캔이나 생수 두세 병쯤은 들고 따라가 주어야 한다.
그 소릴 듣고 걱정하는 손님들에게 다시 한 마디 한다.
“한국인에게는 비교적 관대하게 대하는 편이니까 너무 걱정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요즘 들어 부쩍 한국 관광객들이 여기 발칸반도 쪽으로 많이들 온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화된 모양이다. “꽃보다 누나”가 방영된 이후로는 더욱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졌단다. 좌우간 가이드는 그렇게 손님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었다. 그런 재주가 없으면 ‘가이드’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으렷다?
크로아티아에서의 현지 가이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 영어를 사용한단다. 왜? 한국어를 모르니까. 한국인 자체가 별로 살고 있지를 않아서 한국인 가이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코트라(Kotra) 국가정보’의 2012년의 통계로는 일시 체류자를 포함한 총 교민수가 40여 명에 불과했다니 당연지사라 할 일이다. 예전엔 공산국가였는데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전 때문에 아주 위험한 곳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모든 제도 따위가 미비해서 영주권 발급 등 외국인 포용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보니, 한국인들의 이주가 거의 없는 실정일 밖에….
크로아티아는 허브의 천국이란다. 나중 두브로브니크의 스르지 산에 올라보니, 여기저기 야생 허브가 널려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잡초라고도 볼 수 있는 야생초들이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허브라니? 아무래도 이건 하늘의 축복이 아닐까 싶다. 그걸 시기해서인지 한때는 공산주의의 질곡 속에서 지내다가 최근에는 내전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이제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거부들이 즐겨 찾는 휴가지로 변모했다니 다행스럽다.
허브는 로마 시대부터 진귀한 약재로 사용되었다. 허브가 지천인 곳이지만 일반 작물의 재배는 부적합하단다. 농지에는 잔 돌이 많아 그것을 주워낸 다음, 기껏 올리브나 포도 따위나 재배할 수가 있는 토양이라고 했다.
가이드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곳의 성당에 가서 기도를 드릴 일이 생기는 경우에는, 눈을 감지 말고 기도를 드리라고 한다. 만일 눈을 감았다가는 옆에 놓아둔 물건들을 ‘하느님이 가져가신다’는 것이다. 덧붙여 항상 쓰리꾼을 조심하라고 했다. 대부분의 쓰리꾼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흑인들이거나 무시무시하게 생긴 사람들이 아니고, 예쁜 백인 여자들인 경우가 많으니 그 점도 잊지 말란다.
한 동안은 현금 가지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이곳 쓰리꾼들의 좋은 먹잇감이었지만, 요새는 좀 달라졌다고도 하였다. 요즈음은 중국인들이 호구란다. 그들은 보통 500유로짜리를 가방 가득 넣고 다니면서 비싼 시계도 한꺼번에 여러 개씩을 사면서 카드 아닌 현찰을 선뜻 내 주느니만큼, 쓰리꾼들의 입맛에 딱 맞는 ‘손님’이 된 것이다. 그런 가방 하나만 슬쩍 ‘치기’를 하면 4~5억쯤 버는 일은 다반사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을 터였다.
누군가가 물었다.
“이곳에서 한식당을 차리면 괜찮지 않나요?”
“에이구, 무슨 그런 말씀을…. 금방 망해요. 여기저기가 개발이 되는 통에 장사가 좀 되어가나 보다 하면, 새로운 도로가 뚫려 주차장이 몽땅 수용되기도 하는 등, 얼마 전에도 한 친구가 식당을 차렸다가 그 바람에 망했어요.”
별 무리 없이 국경을 넘어선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 풍경은 잔잔한 바다의 연속이다. 섬이 많아, 그 섬들이 먼 바다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에 여기 바다에는 파도가 거의 없이 잔잔하다. 그래서인지 버스가 구불구불 돌아갈 적마다 나타나는 마을은 하나하나가 아기자기하게 보이는 절경이었다. 아무 곳이나 조금씩만 개발을 하면 훌륭한 관광지가 될 것 같았다.
약 1시간 30분쯤 달려서 아드리아(Adria)
해 연안에 있는 휴양도시 오파티아엘 도착했다. 겨울에도 평균 4.7 °C 정도의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으며, 주변의 다른 해변 마을에 비해 강우량이 적고, 습하지 않으며, 일조량도 비교적 많은 편이라서 최상의 휴양지가 된 곳이다.
Hotel Bristol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고 나니 오늘 관광은 끝났다는 신호인지 다시 실비가 내린다.
(16.9.11.15매, 사진 1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