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문화 체험기

(발칸 문화 체험기 11)바다 오르간 소리를 듣다

거북이3 2016. 9. 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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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문화 체험기 11)

           바다 오르간 소리를 듣다

                                                                                                                                                  이 웅 재

   한동안 자다르로 가는 도중의 마을 풍경에는 바다가 빠지지 않았다. 처음엔 보기 좋았던 풍경들이었지만, 차츰 면역이 되어갈 즈음 버스는 산을 타고 오르더니 톨게이트로 진입한다. 안내판들에서 본 바로는 2000m쯤 되는 곳이었던가 싶은데, 웬 톨게이트일까? 알고 보니 여기부터는 해안도로가 끝나고 고산지대의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지점이었다.

   고속도로로 진입을 하고 난 후로는, 멀리 보이는 산과 산 사이로 흐르는 구름의 변화에 눈길을 주고 지내었다. 고도가 오르면서 구름은 점차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구름은 버스를 휘감기 시작했고, 구름과 버스는 한 덩어리가 되었고, 이제 버스는 구름 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들은 새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아니었다.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암(砂巖)이란다.

   버스의 왼쪽으로 달리고 있는 승용차들에게도 눈길을 주어 보았는데, 달랐다.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세단(sedan) 형이 아닌, 트렁크 룸의 높이가 높은 왜건(Wagon) 형이었다. 원래 왜건은 서부영화에서 흔히 보아 왔던 포장마차다. 그것을 닮은 왜건형 자동차는, 차체 뒷부분의 짐칸을 크게 늘려 뒤가 펑퍼짐한 형태의 자동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건형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유는 첫째로 그 외형에 있다. 얼핏 생계를 위한 짐차나 심지어는 장의차로까지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체면치레의 사고방식이 원인인 것이다. 둘째, 왜건 형 차량은 가격이 비싸다. 공간이 넓어야 하니 차량 제조에서 재료비가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변해 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차량에 많은 짐을 싣고 다니는 여행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 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이유는 배달 서비스가 잘 되어 있는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등 비교적 덩치가 큰 상품들도 모두 배달 및 설치를 무료로 해주고, 심지어는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의 잡화들까지도 웬만하면 다 배달을 해 주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는 6‧25의 폐허에서도 짧은 시일 내에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룩해 올 수가 있었지만, 유럽에서는 배달비 따로, 설치비 따로인 까닭에 웬만한 것은 모두 구매하는 사람 자신이 운반하고 설치해야 하니, 왜건이 선호될 수밖에는 없다. 요새 한국 기업들이 유럽에 나가서 성공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상품의 배달, 설치는 물론 전화만 하면 득달같이 방문해 주는 A/S 덕분이 아니던가?

   높은 지대라서 그럴까?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도 듬성듬성했다. 더군다나 산지인 때문에 가끔 늑대나 곰 등이 나타나기도 할 터, 때문에 집집마다 개를 기르고 있단다. 가족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개는 고맙기 그지없는 존재다. 따라서 그들은 개를 식용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중국인이나 한국인들이 ‘멍멍탕’을 최고의 보양식이라며 즐기는 행태를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4시간을 달리고 나니, 너도 나도 그만 배가 푹 꺼져버렸다. 금강산도 식후경, 그래서 자다르(Zadar)에서의 첫 행사는 먹을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K Hotel에서 현지 식(食) 뷔페로 뱃속에 점을 찍었는데 이제까지의 현지식 중에서는 가장 훌륭했다.

   자다르는 로마제국 시대부터 문헌에 나오는 고도(古都)다. 중세에는 슬라브의 상업·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달마티아의 주도(主都)이기도 했다. 우리는 ‘자다르’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바다 오르간’ 소리를 들으러 갔다. 가는 도중에는 포구에 정박해 있는 ‘SILBA’라는 크루즈 선(船)을 보기도 하고, ‘태양에게 건네는 인사’라고 부른다는 태양열 발전을 하고 있는, 전체 모양이 원형으로 되어 있는 열전지판을 밟아보기도 했다. 그 전지판은 밤이 되면 형형색색의 조명을 비춰 준다고 한다. 그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패키지여행을 하는 우리의 처지로서는 언감생심이었다.

   드디어 바다오르간 소리가 들리는 곳엘 당도하였다. 오르간은 보이질 않았다. 육지와 맞닿은 바다 75m 길이에 설치된 수직으로 박아 놓은 35개 파이프에 파도가 부딪힐 때마다 바람이 불어 넣어졌다가 빠지면서 흘러나오는 소리, 그것이 ‘바다 오르간’이란다. 바다 위쪽으로는 계단이 여러 개 있고 그 계단의 측면으로는 오르간의 건반을 닮은 휘파람 구멍이 나 있으며, 또 그 위쪽 인도 쪽에도 둥그런 구멍이 뚫어진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공기가 빠져 나오면서 소리를 낸다고 한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자다르에 희망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크로아티아의 천재적 설치예술가 니콜라 바시츠(Nikola Basic)가 2005년 세계 최초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오늘 자다르에는 바람이 조금 세게 부는 편이라서 바다오르간 소리도 다른 날보다 잘 들을 수가 있었는데, 그 소리는 고래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고 했으나, 나는 여지껏 고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서, 고작 ‘아하, 고래가 바로 바다 오르간의 원조로구나!’하고 감탄할 수 있는 일이 전부였다.

   이거 하나 보려고 자다르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실미도”의 촬영지에도 영화 촬영 때의 세트들을 모두 없애 버려서 볼 게 없는 섬이 되어버리질 않았던가? 얼마 전에 방영되어 호평을 받았던 “태양의 후예” 촬영지의 세트들도 한때 다 헐어 버리더니 다시 복원을 한다고 야단들이다. 매사 주먹구구식으로만 일 처리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16.9.17.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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