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해안 산책로 ‘바우길’에 없는 것은

거북이3 2016. 11. 4. 22:18

      해안 산책로 ‘바우길’에 없는 것은

                                                                                                                                              이 웅 재

   오래간만에 반가운 길을 걸었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이 길을 걷게 된 운이 따른 것은 ‘수필문학 추천작가회’에서 주최한 2016년도 사화집 출판기념회에서 사화집 평설을 맡게 되었던 때문이었다. ‘바우길’은 표준어가 못 된다. ‘바위길’이라고 써도 북한어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윗길’이 표준어다. 그런데 우리는 ‘바윗길’도 ‘바위길’도 아닌 ‘바우길’에 순치(馴致)되어 있어 그것이 더 정답게 느껴진다. ‘위’라는 2중모음, 게다가 사이시옷까지 덧붙어 있는 ‘윗’은 단순무식한 ‘우’에서 풍겨지는 푸근한 정이 느껴지질 않는 것이다. 해서 그 이름부터 내 마음에 쏙 들어와서 더욱 정겨웠다.

   정동진 옆 선크루즈 호텔 오른쪽에서 시작되는 ‘해안 산책로 바우길’은 정동진~심곡항을 잇는 2.9km의 길이었다. 약 70여억 원을 들여 조성되었다는 이 길은 이달 17일 처음으로 개통되었단다. 지난달인 9월 26일에도 정동진엘 갔었으나 개통되기 이전이라서 아쉬움만 더해주던 길이었다. 뜻하지 않게 이번에 그 길을 걷게 되었으니 기분이 날아갈 듯하였다.

   ‘바우길’ 하면 생각나는 길이 있다. 바로 우이령(소귀고개) 길이다. 이 길에는 이서향 작사, 이흥렬 작곡의 ‘바위고개’라는 노래가 얽혀 있다.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사건 때 이용되었던 길이라고 해서 한동안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던 길이다. 이 길 중간쯤에는 도봉산의 걸출한 바위로 된 봉우리 오봉이 곁에 있어, 등산객의 눈을 시원스럽게 만들어준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로 시작되는 ‘바위고개’는 이 오봉을 바라보며 읊조렸던 독백은 아닐까 싶다. 끝자락에는 연산군의 묘도 있다.

   얘기가 그만 ‘사천으로 빠졌다’. 예전에는 ‘삼천포로 빠졌다’고 하였는데, 바로 그 때문에 ‘삼천포’가 ‘사천’으로 통합이 되어 버렸으니, “사천으로 빠졌다”라고 할밖에….

   잘 정비된 나무계단(데크) 길은 새로 설치된 것이라서 무척 깨끗하고 깔끔했다. 처음엔 그 길을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우리와 반대로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은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었다. 다시 이 길을 돌아와야 한다면 우리도 저렇게 힘들어 해야할 터였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길이 끝나는 심곡항에서 관광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기에, 이 길을 다시 거꾸로 올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동해안을 방비하기 위한 군사지역이라서 예전엔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곳이다. 과학이 발달하다 보니, 적의 침투 같은 위험요소도 대부분 첨단 탐색 장비로 관찰이 가능하게 된 때문에 이렇게 우리가 이 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데크 길은 해안선을 따라서 이리 구불, 저리 구불 무한한 변화를 연출하며 이어지고 있었다.

   왼쪽으로 보이는, 해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고 큰 바위들에 부딪쳐 철썩철썩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파도는, 다음 순간 그 바위들에서 물거품을 만들어 내면서 주르르 미끄러져 내린다. 때로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서 튕겨지는 물방울들이 가끔 우리의 얼굴을 슬쩍슬쩍 때리기도 하였다.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의 시선은 저 멀리 동해의 끝자락을 향해 무한대로 확장되어 가기도 했고, 투구를 쓴 채로 이 땅을 침범하려는 적들을 향해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조국을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투구바위의 모습도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데크 길은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해안 단구를 비교적 그 높낮이를 고루어 주면서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으로 산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기도 하였다. 오른쪽 낭떠러지 바위 위에 위태롭게 보이면서도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나 향나무 등의 나무들도 사람들로 하여금 꿋꿋하고 든든한 믿음을 느끼게 만들어주어 반가웠다. 심곡항 근처에는 구명이 숭숭 뚫린 모습의 바위도 있었으며, 그 옆으로는 내 별명을 닮은 거북이 모양의 바위도 있어서 기분이 흐뭇해지기도 하였다.

   해국(海國)도 반가웠다. 며칠 전 우리집 베란다에서도 그 개화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100원짜리 동전만한 연한 보라색 꽃이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모습이 아주 산뜻하게 보였다. 한 가지, 잎 주위는 끈적거리는데다가 대낮에는 얼핏 시들시들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렇게 바우길을 즐기고 있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보통은 1시간가량이면 걸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되었는데, 파도가 외쳐대는 소리도 들어주어야 하고, 기암괴석들이 저마다 자랑하고 있는 멋진 폼도 보아주어야 하고, 어느 곳보다도 더욱 싱그러운 공기도 들여마셔야 하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오래도록 기억 속에 저장하기 위한 사진도 찍어야 하다 보니, 시간이 늘어나고 불어나고 해서 1시간 30분도 넘게 지체되었던 것이다. 단순한 시간 초과라면 다음 일정을 조금씩 단축하든가 하면 해결될 수가 있는 일이라 하겠으나, 이건 그렇게 넘겨버릴 수 없은 상황에 처하게 되어 버렸다. 소변이 마려워지게 된 것이다.

   점심 시간에 농주를 마신 것이 문제였다. 술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 문우들이 너도나도 다투어 권하는 바람에 사양 않고 넙죽넙죽 받아 마셨던 터, 그것이 내 속을 썩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화장실은 안 보였다. 더러 조그마한 가건물이 있어 반가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건 군사용 초소든가 아니면 시설 점검을 위한 간이막사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참는 수밖에.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비교적 용변을 잘 참을 수 있는 동물이라는 점을 이번에 확실히 확인하였다. 그러한 능력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나중 문우 황장진 씨에게서도 확인한 바였으니, 틀림없는 진리일 것이다.

   해안 산책로 ‘바우길’에 없는 것은 ‘화장실’이었다. (16.11.4. 15매)